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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남편폭력 신고하자 경찰 “참아라”
흉기에 딸 다친뒤에야 늑장 출동

등록 2012-06-25 21:33수정 2012-06-25 22:30

가정폭력 무대응 경찰 “자성하라” ‘한국여성의 전화’, ‘여성폭력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가정폭력 무대응 경찰 규탄 및 가정폭력 척결촉구 등을 요구하며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가정폭력 무대응 경찰 “자성하라” ‘한국여성의 전화’, ‘여성폭력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가정폭력 무대응 경찰 규탄 및 가정폭력 척결촉구 등을 요구하며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여성단체 ‘112전화 부실대응’ 사례 발표
두들겨 맞고 경찰서에 왔는데
“부부가 알아서 풀어라” 내쫓아
집기 부수는 등 난동 부려도
“물리적 폭력 없어” 그냥 철수도

동거남의 폭행을 112에 신고한 여성이 경찰의 ‘오인신고’ 처리로 더 심각한 폭행을 당한 사건(<한겨레> 23일치 1면, 25일치 14면) 이후, 가정폭력에 대처하는 경찰의 안이한 태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오원춘씨 사건 이후 결성된 ‘여성폭력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행동’(여성폭력 공동행동)은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정폭력이야말로 살인을 부르는 범죄”라며 “경찰청의 5대 폭력 집중단속 대상에 포함시켜 적극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경찰에 도움을 청했으나 방치되거나 무시당한 사례를 모은 자료집도 발표했다.

자료집을 보면, 2010년 9월 서울 수서경찰서는 남편의 폭행을 호소하는 ㄱ씨의 신고를 두 차례나 무시한 뒤, 남편이 휘두르는 흉기에 딸이 다친 뒤에야 현장에 출동했다. ㄱ씨는 결국 상담기관을 찾아와 “평소에도 남편의 폭언과 폭행을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사건이 일어나야 개입할 수 있다. 그 정도는 심한 것이 아니니 아줌마가 참으라’고 말하곤 했다”며 경찰의 무성의와 무능을 성토했다.

가정폭력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경찰의 태도는 폭력사태에 대한 노골적 무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남편의 폭행을 피해 서울 강동경찰서를 찾은 ㄴ씨는 “부부 문제니까 부부가 알아서 하라”는 경찰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급하게 경찰서를 찾아온 ㄴ씨에게 경찰은 심지어 “아줌마는 여기가 부부싸움 하는 덴 줄 아느냐”며 내쫓기도 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ㄴ씨의 절박한 심정은 그가 상담기관에 남긴 진술에 담겨 있다. “내가 남편을 죽여서 경찰서까지 질질 끌고 가야 그 사람들이 심각성을 알 것 같아요.”

자료집에 실린 사례를 보면, 어지간한 피해 신고에도 경찰이 꿈쩍도 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ㄷ씨는 밤마다 쏟아지는 남편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두려워 지난해 7월 강동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은 “남편이 칼로 위협하거나 망치로 때린 적이 있어야만 잡아넣을 수 있다”고만 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ㄹ씨도 2010년 12월 남편의 폭행을 경찰에 7차례나 신고했지만 경찰은 “상황이 가볍다”며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ㄹ씨의 남편은 상점의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4주 이상 진단을 받은 물리적 폭력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는 말만 남기고 철수했다.

이밖에도 경찰이 가정폭력 신고를 외면·무시·방치한 20여건의 최근 사례를 모아 발표한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장은 “가정폭력을 막기 위한 법과 제도는 있으나 경찰의 관점이 문제”라며 “가정폭력은 인권 문제임에도 여전히 경찰은 사소한 집안일로 치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찰은 각종 가정폭력에 대해 ‘흉기를 사용하는 수준의 중대 상황이 발생할 때’만 개입해 접근 금지 등 임시조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에선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정폭력이 누적되면 심각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고, 극단적으로 여성이 대항적 반응으로 남편을 살해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폭력 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에서 △가정폭력 신고 때 즉각 현장 출동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체포 우선주의 및 구속수사 원칙 도입 △상담을 조건으로 가정폭력 가해자를 기소유예 처분하는 제도 폐지 등 관련 대책을 즉각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여성단체들은 여성폭력 공동행동을 중심으로 ‘가정폭력 처리 불만 신고센터’를 만드는 등 경찰이 체계적·실질적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전사회적인 시민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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