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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러 유라시아 대장정 1만2천km를 가다

등록 2005-07-31 19:37수정 2005-08-22 14:28

세이푼 강가에서 애국가를 부르다
광복 60돌을 맞아 북방 통로를 개척하는 한-러 유라시아 대장정이 지난달 22일부터 시작됐다. 현대자동차의 테라칸을 이용해 모스크바와 부산·블라디보스토크를 각각 출발한 동서 양쪽 대장정팀은 시베리아 험로 1만2천㎞를 달려 9일 바이칼 호수에서 만난다. 한민족의 뿌리로 알려진 바이칼 호수에서 유라시아 포럼과 바이칼 천지굿을 펼친 뒤 광복절에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한민족평화네트워크, 문화방송 등과 함께 이번 대장정을 주최하는 〈한겨레〉는 장정이 끝날 때까지 3~4차례에 걸쳐 대장정 소식을 전한다.

동쪽 원정대가 2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가는 초원지대를 지나고 있다. 안관옥 기자
동쪽 원정대가 2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가는 초원지대를 지나고 있다. 안관옥 기자



동쪽원정대, 연해주 우수리스크 통과
이상설 기념비 앞에 서 “동해물과~”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 12시간 달려

“선두차량 천천히 …, 차량 간격 유지하세요. 오버!”

27일 낮 12시. 동쪽 대장정팀의 차량 12대가 자작나무 숲이 우거진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고갯길을 숨가쁘게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 5분이 멀다 하고 오갔던 무전기 교신음은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120㎞ 구간에선 좀처럼 터지지 않았다. 고려인들이 겪었던 강제 유배와 독립투쟁의 한 많은 역사를 더듬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고갯길로 들어서기 20여분 전에 시베리아횡단철도가 통과하는 라즈돌로예역(일명 한마당역)에 들렀다. 이 곳은 고려인의 추방과 유랑이 시작됐던 현장이다. 부근에서 농사를 짓던 고려인들은 1937년 10월 추수 직후 이유도 모른 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삶터에서 유배당한 이들은 혹한과 주림에 5분의 1이 죽었다. 당시 3살 이하는 대부분 숨졌을 정도여서 요즘도 고려인 사회에서는 70살 전후 또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원들은 철도역에서 진혼굿을 올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30분쯤 달린 대원들은 세이푼강가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 유허기념비 앞에 국화꽃을 들고 섰다. 이 곳은 그의 주검이 화장돼 뿌려진 곳이다. 그는 “나라를 빼앗긴 죄인이 어떻게 조국에 묻히겠는가”라며 화장 뒤 유골을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한러 유라시아 대장정 동쪽팀 대원들이 26일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립 극동대학 한국학대학을 방문하고 있다. 안관옥 기자
한러 유라시아 대장정 동쪽팀 대원들이 26일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립 극동대학 한국학대학을 방문하고 있다. 안관옥 기자


쓸쓸한 유허비 앞에 꽃을 바친 뒤 애국가를 합창했다. 푸른 벌판의 빈 하늘로 나지막이 노랫가락이 퍼지는 순간에도 강물은 무심하게 흘러만 갔다.

29일 아침 미하일로프카군 고려인 우정마을을 떠난 원정대차량 12대는 오후 3시30분 희뿌연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연해주의 최대 화력발전소가 있는 루츠고르스크를 지났다.

이날의 목적지인 하바로프스크까지는 627㎞. 출발 뒤 3시간 동안은 시야에 아무런 걸림이 없는 대평원이 펼쳐졌다. 바다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3호차 조원인 김봉준 화백은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다”며 “대지에 엎드려 깊이 절하고 싶은 심정” 이라고 뭉클한 감동을 표현했다.

마침내 12시간 만인 밤 9시 아무르강(흑룡강)이 흐르는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했다. 이곳저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늦은 저녁 식사를 들며 보드카로 건배를 했다. 이제 러시아인도 가기 어렵다는 하바로프스크~치타~울란우데의 험로에 도전해 유라시아의 통로를 열자며 ….

하바로프스크/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서쪽원정대, 둘쨋날 니즈니 노보고로드에
한복 곱게 입은 고려인 극단에 피로가 싹

23일 한국을 떠난 서쪽 대장정팀이 도착한 모스크바는 활력과 불만이 공존했다.

서울 대학로에 해당하는 아르바트 거리에서 만난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28·러시아 국립과학기술연구소 근무)는 “고르바초프는 벌려놓은 것은 많은데 이룬 게 없고, 주정뱅이 옐친은 모든 것을 망쳤지만, 푸틴은 러시아를 새롭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는 이반(22)은 “러시아는 5살까지는 살기가 좋은데 그 뒤부터는 고달프고 스무살이 넘으면 할 일이 없다”며 “푸틴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언론 조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화려하게 올라가는 고층건물과 그 앞에서 구걸하는 소년의 대비처럼, 러시아 사람들의 현실인식은 이렇게 나뉘어져 있었다.

고려인 등 러시아인 8명과 한국인 18명 등 모두 26명으로 구성된 서쪽 대장정팀은 25일 출발지인 모스크바를 떠나 다음날 러시아의 3대 도시인 인구 400만의 니즈니 노보고로드에 도착했다. 18세기 민란의 주역 스탠카라친의 무대였던 볼가강과 오카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도시다. 러시아 최초로 자동차를 생산했고, 러시아 3대 문호로 칭송받는 막심 고리키의 고향이다. 고려인 2000여명이 살고 있다.


니즈니 노보고로드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고려인 극단의 문화행사가 피로에 지친 장정팀을 위로했다. 한국말은 모르지만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고려인 3세들이 선보인 고전무용과 사물놀이는 고려인과 한국인을 하나로 이어주는 고리였다.

러시아 유일의 고려인 출신 국회의원인 장 류보미르(46)는 “대장정이 러시아 곳곳에 흩어진 고려인들을 새롭게 잇고 러시아-한국 양국 국민이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작지만 큰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흘째인 27일 차량은 카잔을 향해 끝없이 펼쳐진 전나무숲 사이로 곧게 뻗은 길을 내달렸다. 푸르른 전나무와 흰색 자작나무 숲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곳에는 광활한 누런 밀밭과 녹색의 옥수수 밭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카잔으로 가는 국도는 구간마다 군데군데 깊게 패었다. 아예 차선도 없었다. 함께 가는 러시아인 볼로자(58)는 “도로공사가 차선까지 관리할 여력도 의사도 없다”며 “이 때문에 교통위반 시비가 끊일 날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6시 서쪽팀은 레닌과 고리키가 젊은 시절을 보낸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수도 카잔에 닻을 내렸다.

카잔/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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