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지역 여상에서 1990년대 반도체 성장기 인력 집중 채용… 기숙사 생활해 인사·노무관리도 쉬워
지역 여상에서 1990년대 반도체 성장기 인력 집중 채용… 기숙사 생활해 인사·노무관리도 쉬워
속초상고, 성수상고(춘천), 광주여상, 송정여상(광주), 강경상고(충남), 서천여상(충남), 대전여상….
군산여상만이 아니었다. 삼성전자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혹은 퇴사 뒤 백혈병·뇌종양 등이 발병한 이들 가운데는 강원·충청·호남 지역 상업고등학교 출신이 많다. 17~18살 어린 나이에 가족과 고향을 뒤로하고 경기도 기흥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으로, 충남 천안·탕정 삼성전자 LCD 공장 등으로 떠났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황유미씨는 속초상고를 나왔다. 졸업을 몇 달 앞둔 2003년 10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했고, 2005년 6월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22살이 되던 2007년 3월 백혈병으로 숨졌다. 황씨와 같은 조를 이뤄 일했던 이숙영씨는 광주여상을 나왔다. 이씨도 18살인 1994년 기흥공장에 들어왔다. 백혈병을 이기지 못하고 2006년 8월 숨졌다. 1987년생인 박지연씨는 강경상고 출신이다. 200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 2010년 3월, 23살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졌다.
예나 지금이나 상고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반면 학생들이 갈 수 있는 직장은 ‘제한’돼 있다. 이름 있는 대기업 사무직 취업문은 좁다. 지역의 한 상고 교사는 “그런 곳은 인문계로 말하면 서울대 들어가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했다. 여상 출신들에게 반도체·LCD 공장의 오퍼레이터(생산직 작업자) 자리는 ‘괜찮은 일자리’라고 한다. 삼성의 경우 연간 280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교사들은 “1990년대에 반도체 바람이 불어 여성 인력을 많이 필요로 했고 학생 취업도 많아졌다”고 했다. 1992년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디램반도체 시장 세계 1위에 오른다. 이해 64메가디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데 이어 1994년에는 256메가디램, 1996년 1기가디램, 2001년 4기가디램을 만들어냈다. 또 다른 교사는 “충청·강원·전라도 지역은 수도권이나 경상도 쪽과 달리 학생들을 받아줄 만한 산업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 인근 반도체 공장들은 필요한 인력을 이 세 지역에서 수혈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인사·노무 관리도 지방 중소 도시 출신들이 편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오퍼레이터들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같이 올라온 친구들은 공장·라인·근무시간에 따라 쪼개졌다. 쉬는 날에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숨진 황유미씨는 노래방에 가서 몇 시간씩 노래를 불렀다고 일기장에 썼다. 군산여상을 나온 정애정씨는 “시골 부모님들은 기숙사가 있다고 좋아하셨지만 기숙사는 사원 관리용으로도 이용됐다. 벌점 등을 매겨 해당 부서에 통보했다”고 떠올렸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 오퍼레이터를 뽑으며 ‘지원 기준’으로 고교 성적 상위 60%, 전 학년 결석 5일 이내를 건다. 지각·조퇴를 3번 하면 1번 결석한 것으로 처리한다. 성실성을 보는 것이다. 상고의 취업 담당 교사는 “업체들은 기존에 입사한 학생들의 근무실적을 보고 입사원서를 더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는 애플의 아이폰 등을 만드는 ‘폭스콘’ 공장이 있다. 50만 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일하는 ‘폭스콘 시티’다. 2010년 젊은 신세대 농민공들이 폭스콘 공장 기숙사에서 뛰어내리는 자살 사고가 속출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가혹한 군대식 노무관리가 비극을 불렀다.
전태일이 안쓰럽게 바라보던 여공들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런가.
<한겨레21>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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