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공정위 앞 도로 막은 김용태씨
지난 3일 아침 6시30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공정거래위원회 앞 10차선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다. 느닷없이 25t 트럭이 도로 한복판을 가로막았다. 운전자는 차 열쇠를 뽑아 들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꿈쩍하지 않는 거대한 트럭 때문에 오가는 차량 수백대가 멈춰섰다.
3시간여 뒤, 운전자 김용태(50·사진)씨는 경찰에 자수했다. 김씨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바로 입건됐다. 몇몇 언론은 출근길 교통 혼잡 상황을 중심으로 사건을 짧게 보도했다.
“처음엔 떨렸어요.” 사건 이후 만난 김씨는 “트럭 시위를 결행하기까지 많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저질렀어요.” 김씨는 충남 천안에서 ‘ㅁ샘물’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 김씨는 어느 대형 샘물업체 영업사원이었다. 수완이 좋아 ‘생수 영업왕’으로 통했다. 2005년 전재산을 털어 ㅁ샘물 회사를 차렸다. 지리산 암반수를 직영공급하는 방식으로 연매출 10억원대의 탄탄한 중소기업을 키웠다. 수도권 남부지역부터 충청 북부지역까지 거래처를 늘렸다.
2007년 초 대기업인 ㅈ음료 관계자가 김씨를 찾아왔다. “ㅁ샘물 대신 ㅈ음료 상표를 붙여 같은 물을 계속 팔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김씨는 거절했다. 이후 ㅈ음료 관계자들이 김씨와 계약을 맺고 있던 대리점 사장들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대접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1년여 지난 2008년 7월, 김씨와 계약을 맺고 있던 대리점 10곳 가운데 8곳이 한꺼번에 “ㅁ샘물 유통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해왔다.
그들 모두 ㅈ음료와 5년간 장기계약을 맺었다. 첫 1년 동안 18.9ℓ짜리 정수 한통당 622~771원에 공급하겠다는 조건이었다. 통상적인 대리점 공급가는 2000~2500원이다. 시장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저렴한 액수를 제시하며 ㅈ음료는 김씨의 거래처를 뺏어버렸다.
김씨는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에 ㅈ음료의 ‘부당 염매(싸게 팔기) 행위’를 신고했다. 공정위는 2010년 9월17일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ㅈ음료의 공급가격이 제조원가에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없고, 시장 내 유사한 관행 또한 인정된다”는 게 공정위 결론이었다.
김씨는 지난 2월 공정위 본부에 다시 신고했다. 사건은 아직 계류중이다. 그런데 지난달 사건 처리 전망을 문의한 김씨에게 공정위 관계자는 다시 한번 절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ㅈ음료가 1년간 낮은 가격으로 공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가격을 정상화하면서 5년 동안 평균 공급가격은 제조원가 이하가 아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전례 없는 도심 트럭 시위로 짧게나마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김씨는 이후 고향인 천안에 내려가 있다. 해결된 일은 없고 김씨의 한숨도 여전하다. “1년 동안 ‘출혈 공급’을 해도 버틸 수 있는 대기업 때문에 중소업체는 어렵게 일군 시장을 고스란히 뺏기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꼭 그렇게 시위를 해야 했을까. “서울시민들에게는 죄송한데, 방법이 없었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공정위가 대기업 편을 들 것만 같아서….” 메마른 목소리로 김씨가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ㅈ음료가 염매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일종의 판매촉진 전략 정도로 판단한다”며 “현행법은 모든 염매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ㅈ음료 쪽은 “싼 가격에 공급받으려던 대리점들이 자발적으로 ㅁ샘물에서 우리 쪽으로 계약을 바꾼 것”이라며 “처음 1년간 싼 가격에 샘물을 공급하는 것은 다른 대기업들도 다 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지난 3년 동안 김씨는 공정위는 물론 감사원·청와대·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여러차례 진정과 신고를 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ㅁ샘물은 폐업 직전에 내몰렸고 김씨의 집은 두달 전 경매로 넘어갔다. 김씨가 뛰어들었던 국내 생수시장의 87%는 ㅈ음료를 비롯한 8개 대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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