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맹학교 6학년 김민석군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서 지팡이를 이용해 홀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연습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시각장애 민석이의 힘겨운 학교밖
공사장·불법주차에 움찔… 5분 거리 40분 진땀
유도블록 끊겨 방향 잃고
보도의 말뚝에 부딪혀 ‘쿵’
전혀 못보는 사람 10만인데
보행지도 교사는 300명뿐
공사장·불법주차에 움찔… 5분 거리 40분 진땀
유도블록 끊겨 방향 잃고
보도의 말뚝에 부딪혀 ‘쿵’
전혀 못보는 사람 10만인데
보행지도 교사는 300명뿐
시각장애인들은 다섯개의 다리를 갖고 있다. 두 다리와 두 귀, 그리고 하얀 지팡이다.
김민석(13·서울맹학교 6학년)군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시신경이 위축되는 병을 안고 태어난 민석이는 부모님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언제까지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다닐 수는 없다. 자신의 두 다리로 홀로 걸을 나이가 됐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 6학년 2반 아이들이 지하 강당에 모였다. “오늘은 좀더 멀리 가볼 거예요. 집중 잘해야 해요.” 지도교사가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하얀 지팡이를 잡은 민석이는 이제 학교 안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다닌다. 하지만 초·중·고 과정 12년의 보행교육이 끝나야 익숙한 장소를 혼자 찾아갈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제 교문 밖으로 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민석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며 교문 밖으로 향했다. 땅 위 4~6㎝ 높이로 아치를 그리며 지팡이 끝 부분을 땅에 두번 두들기며 걷는다. 이를 ‘2점 촉타법’이라 한다. 지팡이가 왼쪽으로 가면 오른발이,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갈 때는 왼발이 나가야 한다. 발뒤꿈치가 땅에 닿는 동시에 지팡이 끝도 땅에 닿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균형이 한쪽으로 쏠려 똑바로 걷기가 어려워진다.
“차 소리 잘 듣고, 집중해!” 교문을 나서자 지도교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칫 주의력이 분산되면 큰 사고가 난다. 아이들은 발끝과 지팡이 끝에서 전해지는 촉감으로 도로의 상태를 판단하고 주변 소음에 집중해야 한다.
긴장했는지 민석이는 교문 앞에서 방향을 잃었다. 유도블록에서 벗어난 것이다. 유도블록은 인도 가운데 노란색으로 표시된 울퉁불퉁한 표지석이다. 시각장애인들은 그 위를 걸으며 자신이 인도 위에 있음을 인식한다. 선형 유도블록은 진행 방향을, 점형 유도블록은 횡단보도·문·갈림길 등 상황 변화를 알려준다. 점형 블록 앞에서 반드시 멈췄다가 다음 진행 방향을 결정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노후된 유도블록이 많아 시각장애인들은 종종 방향을 잃는다.
“민석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지도교사가 물었다. “벽을 찾아야 해요.” 민석이는 벽 쪽으로 손을 뻗는다. “먼저 지팡이를 대야지.”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한다. 하지만 앞에 위험물이 있을 경우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팡이를 먼저 대라고 교육한다. 지팡이로 벽을 툭툭 친 민석이는 옆걸음으로 유도블록을 다시 찾아갔다. 횡단보도 앞 점형 블록 위에 섰을 때에야 민석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맹학교 앞은 이면도로다. 교통량이 적어 신호등이 따로 없다. 일반인들은 눈 감고도 건너지만 아이들은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해 차 소리를 들어야 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지도교사들의 긴장감은 더 고조됐다. 아이들이 길을 건널 때 “손 들어야지!” 하는 고함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곧이어 또 장애물이 나타났다. 하수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유도블록은 끊겼고, 공사장 소음이 아이들의 청감을 방해했다. 민석이는 당황해했다. 저도 모르게 하수도 펌프 쪽으로 손을 뻗으려는 순간, 교사의 제지로 위험한 상황을 피했다. 다른 아이들도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이런 상황이 제일 위험해요.” 6학년 2반 담임인 임동규 교사가 걱정 어린 눈으로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공사장을 벗어나자 인도에 불법주차된 차들이 민석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인도에 주차된 차는 유도블록을 끊어 놓는다. 지팡이가 차의 범퍼 밑을 짚어 차를 인식하지 못한 아이들은 느닷없이 부딪혀 놀라거나 다친다. 불법주차를 막기 위해 보도에 설치한 ‘볼라드’도 시각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육중한 쇳덩어리는 아이들의 정강이와 급소를 향하고 있다. “아이들이 불법주차된 차를 발견하면 지팡이로 내리치는 경우도 있었어요. 아이들 입장에선 정말 화가 나거든요.” 임 교사는 불법주차된 차를 바라보며 씁쓸해했다.
이날 민석이는 비장애인들이 5분이면 다녀올 거리를 40분 동안 걸었다. 몸은 땀으로 젖었다. 강혜진 보행지도사는 “시각장애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헤맨다고 함부로 손을 잡아끌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방향감각을 잃어 더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땐 반드시 다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행교육을 받지 못한 시각장애인은 거리를 걷지 못한다. 민석이처럼 보행교육이 절실한 전맹 시각장애인은 전국에 약 10만여명이다.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보행지도사는 300여명뿐이다. “외계인을 발견하기 위해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민석이가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장애물들은 너무나 많아 보였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