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오후 서울 시립용산노인복지회관에서 이정안(75)씨가 대학생 자원봉사자에게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배우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서울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 스마트폰 사용법 강의실에서 만난 어르신들
스마트폰 사용, 5만원 요금 부담되나 일상생활 편리함 매력
서울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 스마트폰 사용법 강의실에서 만난 어르신들
스마트폰 사용, 5만원 요금 부담되나 일상생활 편리함 매력
“내가 빨간 원피스 입고 왔는데 왜 아무도 얘길 안해~”
‘멋쟁이’ 안명자(68)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옷매무새를 한 번 가다듬었다. “어때~?” 지난달 8일 서울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 3층 강의실에 모인 이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예뻐요!” 분홍색 메니큐어를 곱게 칠한 안씨의 손톱이 반짝였다.
멋쟁이의 ‘품위유지’를 위해 스마트폰은 필수다. “어떤 폰을 가지고 다니느냐가 나를 결정하는 것 같아. 소위 말해서 ‘난 척’ 좀 하는거지.” 강아지 ‘부주’ 사진이 바탕화면에 깔린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안씨가 말했다. “남의 꺼 보다가 샘이 난” 안씨는 “노인네들이 그게 뭐가 필요해…. 전화만 잘 쓰면 되는데”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지난해 여름 스마트폰을 샀다. ‘공짜폰이라더니 기계값도 나오고, 셀카찍기도 어려운 구닥다리 폰’이라며 서운해 하다가도 “다른 사람 사진을 더 많이 찍어주라는 뜻인가 보다”라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품위유지엔 돈이 든다. 안씨는 휴대폰 요금으로 기계값 포함, 매달 5만여원씩 낸다. 예전보다 1만~2만원이나 많은 금액이다. 3세대(3G)망을 너무 많이 써서 7만~8만원씩 낸 적도 있다. 그때만 해도 와이파이를 몰랐다. 스마트폰 사용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돈이다.
스마트폰 구입의 또 다른 장애물은 자식이다. 구수정(60)씨는 6개월간 딸을 조른 끝에 얼마전 3G 스마트폰을 쟁취할 수 있었다. 혼자 가서 스마트폰을 살 엄두가 안났기에 애들과 함께 스마트폰을 사러 가려했다. 구씨는 “주변에 보면 다들 스마트폰인데 나만 너무 옛날폰이라 다른 사람 앞에서 꺼내기도 부끄러웠다”면서도 “‘엄마가 무슨 스마트폰이냐’라는 딸 때문에 그동안 살 엄두를 못냈다”고 말했다.
구씨는 그 동안 한 번도 특정 휴대전화를 사고 싶단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빠듯한 살림 탓에 휴대전화는 늘 ‘공짜폰’이었다. 기존에 쓰던 폰도 3년이나 쓴, 부품 생산이 끊겨 애프터서비스도 못 받던 구형 전화다. 그러던 구씨의 지난해 가장 큰 목표는 스마트폰 사용이었다. “다들 ‘씩씩’ 슬라이드 넘기는 걸 보니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나도 하고 싶어졌죠. 그런데 ‘전화 못 받으면 어쩌지’, ‘문자 못 보내면 어쩌지’하는 생각에 일하면선 살 엄두를 못냈어요.” 스마트폰을 구입한 결정적인 계기는 동생들이 스마트폰 없는 자기만 빼고 카카오톡으로 대화한다는 사실이었다. 구씨가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가장 먼저 한 일도 카카오톡 설치였다.
“기자양반, 카카오톡 전화 왜 난 못 쓰는지 그거 기사 좀 써줘.”
‘대학생 선생님’에게 ‘네이버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다운 받는 법을 배우던 양철화(75)씨가 인사를 건네는 기자에게 한 첫마디였다. 그 틈을 타 다른 어르신이 “내 선생님이 왜 거기가 있어. 이리로 와야지”라며 양씨를 경계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뭘 그렇게 열심히 배워?”라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용산노인복지관이 마련한 에스케이티(SKT) 대학생봉사단의 스마트폰 수업에 앞서 스마트폰 공부에 열의를 불태웠다.
양씨의 최근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카카오톡 전화, 보이스톡 사용이었다. 4만5000원 요금제를 쓰고 있는 양씨는, 5만4000원 요금제부터만 사용 가능한 보이스톡을 쓸 수 없었다. 베트남에 있는 딸과 평소에도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던 양씨에겐 탐나는 기능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다 이거 쓴다잖아. 우리나라 참 빨리변해. 시대가 변하는데 따라가야지.” 그러나 양씨는 스마트폰을 사긴 했어도 쓸 줄을 몰라 그동안 전화기능만 써왔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의지로 복지관에 수업을 건의 했다. 강남구 대치동에 살면서 용산구까지 그는 1주일에 한 번 있는 강의에 참석 중이다. “인터넷 보니까 늙은이 조건이라는게 있더라고. 퇴보하고 낡은 생각 갖고 있고 그런거. 다 끝났다고 손 놓고 있으면 그렇게 돼.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생각해야지. 그래야 마음도 젊어져.” 양씨의 스마트한 삶의 유지비는 6만여원. 매달 70여만원씩 받는 국민연금덕에 자녀들에게 손 벌릴 필요는 없다고 한다.
용산에 양철화씨가 있다면 마포엔 박지연(64)씨가 있다. 박씨는 엘티이(LTE) 스마트폰을 산 지 2~3개월밖에 안됐지만 지도로 길을 찾아 다니고, 교회에서 성경·찬송가도 스마트폰으로 보고, 에그몬앱을 통해 큐아르(QR) 코드를 찍어 원산지도 꼼꼼히 챙기는 스마트한 할머니다. “우리 교회에 대학 교수들도 있지만 물어봐도 몰라. 들고만 다니더라고. 내가 주변에서 제일 잘 쓰지.”
우등생에겐 꼼꼼한 필기와 질문을 필수. ‘환경설정-무선네트워크-데이트 네트워크 설정-접속허용 한다’, ‘카카오톡에 큰 사진 보기 카카오톡-오른쪽 상단-앨범에서 선택-사진 선택-확인’ 등 수첩에 메모가 빽빽하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질때 까지 휴대전화 가게를 돌아다니며 물어보기도 수차례. “똑같은데 맨날 가면 미안하잖아. 그래서 “여기서 산 건 아닌데”, “우리 아들이 사다줬는데”라고 하면서 동네 가게 바꿔돌아가며 하나씩 물어봤지.” ‘스마트폰 삼천지교’다.
때론 박씨는 다른 노인들의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여보세요? 잘 들립니까?” “아…. 끝만 잘 들리는데…. 안되나? 박지연씨 맞아요? 들리다 안들리다 해.” 박씨와 나란이 앉은 서안석(75)씨는 몇번째 보이스톡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 시립마포노인종합복지회관에서도 보이스톡은 단연 인기. 지켜보던 다른 할아버지도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건넨다. “앱을 깔아야 나오지…. 깔지도 않고 어떻게해.” 박씨는 카카오톡 앱부터 다운받았다.
스마트폰은 자아실현의 수단이기도 했다. 서안석씨가 스마트폰으로 가장 많이 쓰는 앱은 사전이다. 영어, 중국어, 한자 공부를 하는 서씨에게 스마트폰은 젊어 못 다 배운 배움에 대한 꿈을 실현시켜준 고마운 도구다. 컴퓨터는 전혀 못하는 서씨에게 손가락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정보 접근성을 낮춰줬다. 자주 쓴다는 한자 앱을 보여주며 서씨는 “한글로 그냥 가관이라고 하면 뭔 뜻인지 모르지만, 한자로 가관이라고 하면…. 보이지? 뜻글자라서 배우는 맛이나.” 충남 아산에서 평생을 농부로 살았던 서씨는 농사짓고 자식 키우느라 옛날엔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도 “글 배워야 무슨 소용 있겠냐”면서도 “공부 만큼 재미있는게 없다”며 늦깎이 공부를 하고 있다. 흘러간 옛 노래를 듣는 즐거움은 덤이다.
“전화만 하면 되는데 늙은이들이 그게 왜 필요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공원에서 만난 노인 4명은 모두 일반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010 번호를 쓰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고 세명이 011, 018, 019를 사용하고 있었다. 018 번호를 고수하고 있는 구기준(76)씨는 “지금 휴대전화도 2년째 쓰고 있는데 앞으로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생각이 없다”며 “우리같은 사람들이 사용할 줄도 모르고 무엇보다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은퇴한 구씨는 동네 주민들과 공원 등을 나다닐때면 길거리에서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걷는 젊은이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집에 손자, 손녀가 와도 그것만 두들기고 있으니 쯧쯧…. 책이라도 읽고 있으면 이뻐보일텐데 와서 얘기도 않고 스마트폰만 해. 처음엔 하지 말라고 얘기라도 했지만 그래도 하니까 이젠 별 말 안하게 돼.” 곁에 있던 박아무개(79)씨도 거들었다. “함께 사는 애들이 스마트폰쓰는데, 편리해보이긴 해도 그것만 하고 다니니까 다른걸 안해. 집에 같이 있어도 대화도 안하고. 걸어다닐때도 그것만 보고 다니니까 땅 보고 걸어다니는 것 같잖아.” 스마트폰을 불통의 상징이됐다.
김대봉(81)씨는 “스마트폰을 왜 안쓰느냐”는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도 필요를 느낀 적 없었기 때문에 갖고 싶다는, 써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갖고 있는 휴대전화를 쓰면서도 ‘불편’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네 명 중 스마트폰을 써보고 싶다고 한 사람은 류아무개(74)씨 뿐이었다. “아무리 가르쳐줘도 기억력이 나빠지니까 배울 능력이 안되서, 자신이 없더라고. 쓰면 좋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말야.”
‘스마트폰=편리하다’는 공식에 동의하지 않는 건 홍아무개(69)씨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버스를 기다리던 홍씨는 버스가 일찍오든, 늦게오든 개의치 않아했다. 정류장의 다른 젊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버스앱으로 자신이 탈 버스가 언제오는지 확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기다리면 언젠가 올텐데 1분 1초가 무슨 차이가 있어? 언제오는지 모를 때도 잘 타고 다녔는데 뭐.” 그래서 그는 스마트폰 사용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 “난 지금도 편해. 만약 불편했다면 스마트폰을 썼겠지. 만약 필요했으면 배워서라도 했을거야. 요즘 그런거 가르쳐주는 곳이 많거든. 못 배워서가 아니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 이아무개(75)씨도 “스마트폰이 사람을 바보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 집 전화번호도 못 외우는데다, 사람이 점점 기계에 매여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의 가장 큰 벽 중 하나는 바로 비용이다. 5월 휴대전화비로 그가 낸 돈은 6370원. 은퇴 뒤 수입없이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 9만원으로 사는 이씨에게 몇 만원 이상씩 내야 하는 스마트폰은 아예 고려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한국방송통신위원회의 ‘연령대별 스마트폰 가입자 통계’를 보면 2011년 9월 현재 어르신(60대 이상) 스마트폰 사용 인구는 60만9000명이다. 전체 스마트폰 가입자 1881만7000명의 3%에 불과하지만 2010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증가율은 20~30대보다 높다. 이미 젊은 층의 스마트폰 사용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아직 사용율이 낮은 60대 이상의 고령층에 주목하고 있다. 엘지유플러스(LGU+) 관계자는 “20~30대보다 비율이 많이 낮지만 고령화사회와 함께 전체적으로 실버 계층의 중요성은 늘어나고 있다”라며 “은퇴 뒤에도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 기계값이나 요금제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케팅도 활발하다. 실제 이동통신사들은 지난해부터 월 1만원대에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 노인 전용 요금제를 출시했고, 스마트폰에도 큰 글씨 기능이나 쉽고 편리한 프로그램이 설치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올 초 발표한 ‘2011 장노년층 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도, 설문에 응답한 전국 만 50세 이상 가구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3472명 중 46.8%가 스마트폰 이용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유는 ‘일상 생활의 편리함’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231명에게 스마트폰 이후의 삶의 변화를 물으니, △일상생활의 편리함(50.6%) △새소식 접근성(42.9%) △더 많은 정보·지식 습득(40.7%) 순으로 답했다. ‘자기계발’을 꼽은 이들도 28.6%였다. 지난 2008년 최재성 연대 교수(사회복지학과)의 ‘노인 정보화 교육의 성과 연구’에서도, 조사에 참여한 285명이 정보화 교육 덕에 ‘시대에 뒤지지 않는 자부심’(194명), ‘자신감’(187%) 등을 얻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정보화가 인터넷뿐 아니라 스마트폰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된 것에 비춰보면, 스마트폰 사용은 노인들에게 자존감 향상 효과도 어느정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미령 대구대 교수는 “자기 나이를 실제 나이보다 적게 인식하는 노인들에겐 젊은 세대에게 뒤지지 않게 살고픈 욕구가 있다”라며 “스마트폰 사용으로 시대에 뒤지지 않으면서 고급 정보를 습득하고 친구·가족들과 연결돼있다는 사회 소속감과 자기 만족감을 얻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노인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보화진흥원 조사 참여자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비용 부담(29.7%) △용도 모름(29.6%) △필요성 부재(17.3%) △어려운 사용방법(15.8%)을 꼽았다. 또 이 조사에서 남성·고학력·고소득자일수록 스마트폰 사용 비율이 높은 것을 보면 반대로 여성·저학력·저소득 노인일수록 사용 비율은 낮아질 것이다.
이금룡 상명대 교수는 “노인들의 스마트폰에 대한 갈구는 그 편리함보단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잉여 소비라고 생각한다”라며 “일부는 스마트폰 등 새 기술에 적응하겠지만 대다수는 이에 부적응하거나 도태되면서 노노간 정보 양극화가 심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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