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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살해된 통영 초등생, 새벽 5시 전화해 “배가 고파요”

등록 2012-07-24 08:06수정 2012-07-24 17:01

일용직 아빠는 밤늦게야 귀가
새엄마는 한달여전 집 나가
피의자 집에 자주 드나들며
냉장고 음식 꺼내먹곤 해
어려운 환경탓 보살핌 못받고
흉악한 성범죄에 그대로 노출
열살 아이는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23일 만난 경남 통영시 산양읍 신봉마을 180여가구 500여명의 주민들은 한아무개(10)양을 ‘배곯던 아이’로 기억한다.

“친구 집에 가서 허락 없이 냉장고 음식을 꺼내 먹어서 동네 미움을 조금 사기도 했지요.” 주민 이서영(가명·62)씨 집에도 한양은 찾아왔다. “토마토 먹어도 돼요?” 이씨는 마당에 토마토를 길렀다. “먹을 걸 챙겨주는 사람이 집에 없어서, 늘 배고파서 그런 거지 싶어 ‘그러라’고 했지요.” 그 뒤 아이는 가끔 이씨 집에 왔다. 방에 들어오진 않고 마당에서 토마토만 따서 먹고 돌아갔다.

나이답지 않게 넉살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은 외로운 아이였다. “저녁 6시 전엔 집에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마을 구멍가게 여주인은 해질녘 당산나무 아래 혼자 서성이던 한양을 기억한다. “새어머니가 6시까지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대요.”

친어머니는 한양이 두살 때 이혼했다. 건설일용직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 나가 밤늦게 귀가했다. 하루 6만~7만원을 벌었다. 열살 위 오빠는 새벽까지 동네 통닭집에서 일하고 낮엔 잠을 잤다. 다방에서 일하는 새어머니를 3년 전 맞았지만 “파리채 같은 걸로 늘 아이를 때렸다”고 여러 주민들은 말했다. 그 새어머니마저 한달 전 집을 나갔다.

한양의 아버지(58)는 “먹을 쌀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진 않았다”고 힘없이 말했다. 주민들은 “쌀은 있지만, 밥 지어 먹여주는 어른이 곁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새벽 4시55분께 한양은 잠에서 깼다. 동네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는 가끔 한양에게 먹을 것을 사줬다. 한양이 전화기에 대고 “배고파요. 밥 사주세요”라고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아침 7시35분께 학교로 향하는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한양을 주민 이서영씨는 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한양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일 나간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 늦잠을 자는 편이긴 했지만 결석한 적은 없었다”고 한양의 고모는 말했다.

시골 마을의 작은 버스는 한시간 간격으로 왔다. 늦잠 자느라 마을버스를 놓치면 한양은 주민들의 차를 얻어타고 학교에 가곤 했다. 이날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한양은 김아무개(45)씨의 1t 트럭에 올라탔다. 한양은 김씨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주민들은 “아이가 김씨 집에 가서 냉장고 음식을 꺼내 먹은 적이 있는데, 김씨 아내가 아이더러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날 한양을 차에 태운 김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이날 밤 10시, 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한양에게 필요했던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친척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커서 누군가 예뻐해주고 정을 주면 매우 잘 따랐다”고 한양을 회고했다. 따뜻한 정과 밥에 굶주렸던 아이는 친절한 어른을 잘 따랐다. 배고픔과 외로움은 아이의 약점이 됐다. 이를 악용한 어느 어른은 아이에게 흉측한 손길을 뻗쳤다. 실종 엿새 만인 22일 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정국 기자, 통영/최상원 김규남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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