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공단조성 구실로 내쫓아
68년 대법원 “반환하라” 판결 불구
정부가 또다시 소송 89년엔 뒤집혀
농민들 끈질긴 재심 끝에 결국 승소
68년 대법원 “반환하라” 판결 불구
정부가 또다시 소송 89년엔 뒤집혀
농민들 끈질긴 재심 끝에 결국 승소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에 서울 구로동의 땅을 빼앗겼던 농민들이 재심의 재심 끝에 51년 만에 땅을 되찾게 됐다.
서울고법 민사30부(재판장 강일원)는 서울 구로동 일대 농민과 그 유족 265명이 “부당하게 빼앗아간 땅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 재재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예전엔 구로공단이었고 지금은 서울디지털단지가 돼 고층빌딩이 빽빽이 들어선 구로구 구로동 일대의 땅 30여만평은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수용돼 1942년께 육군성 명의가 됐다. 하지만 수용되기 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던 농민들은 해방 이후 농지개혁을 통해 1950년 땅을 분배받았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5월부터 국방부가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더니,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1961년 9월부터 이 땅에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를 조성한다는 구실로 땅을 빼앗고 농민들을 내쫓았다. 농민들은 몇몇씩 무리지어 1964년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냈고, 1968년 대법원은 “농민들에게 분배한 토지가 맞다”며 땅을 농민들에게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국가가 소송에서 지자, 검찰과 중앙정보부는 “농민들이 국가의 땅을 편취했다”며 소송사기·위증 등 혐의를 씌워 농민들을 불법 연행·감금했다. 이렇게 잡아들인 농민들에게 석방을 전제로 민사소송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탓에, 143명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석방되거나 불기소 처분됐고, 뜻을 굽히지 않았던 41명은 결국 기소됐다. 박정희 정권은 강압적인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민사소송 자체가 농민들의 사기에 의한 것”이라며, 땅을 빼앗으려고 재심을 청구했다. 이 재판은 농민들의 형사재판이 끝난 1984년 심리가 재개돼, 1989년 12월 대법원은 땅이 국가 소유가 맞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민사소송을 냈다는 이유로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했던 농민과 그 유족들은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신청을 했고, 진실화해위는 2년 뒤 “국가가 행정 목적 달성을 위해 민사소송에 개입해 공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했다”며 “농민들에게 소송사기의 책임을 묻기 어렵고, 농민들을 불법 연행해 가혹행위를 한 것은 형사소송법의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진실 규명 결정을 했다.
다시 농민들과 그 유족들은 2009년 형사 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지난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어 1989년 확정된 민사 재심 판결에 대해서도 지난 1월 재재심을 청구해 결국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재판부는 “1968년 국가가 재심을 청구해 1989년 법원이 내린 재심 판결은 농민들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것인데, 농민들의 불법행위는 이후 형사사건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1968년 국가가 청구한 재심의 사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재심 판결은 부당하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소송대리인을 맡은 이찬진 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통해 국가에 의해 부당하게 진행된 재심 판결을 취소하고 1968년 대법원 판결 상태로 돌아가게 된 것”이라며 “현재 국가 명의로 돼 있는 땅은 소유권을 이전받고, 그렇지 않은 땅의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지난 6일 저녁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의 고층 아파트형 공장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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