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현대미술관 공사장 화재
경복궁 코앞서 아찔한 ‘불길’
관광객 긴급대피 소동
경복궁 코앞서 아찔한 ‘불길’
관광객 긴급대피 소동
지하 3층 공사장서 불꽃
인화물질 많아 금세 번져
구조 복잡해 진화 애먹어
가스 질식 등 24명 부상
“MB 임기안 끝내려 속도전
현장에선 다 아는 이야기” 1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공사 현장에서 불이 나 작업중이던 노동자 4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쳤다. 준공일을 맞추려고 공사를 서두르다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인화물질 등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여러 의혹이 일고 있다. ■ 미로 같은 구조에 인화물질 가득 불은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신축중이던 건물 지하 3층에서 났다. 현장에 소화기가 비치돼 있었지만 불이 순식간에 번지는 바람에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건물 구조가 미로 같은데다 군데군데 자재가 쌓여 있어 대피와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장에 있던 하청업체 관계자는 “유증기가 가득 찬 지하 3층에서 스파크가 발생하면서 순식간에 인화물질에 불이 붙었다”고 말했다. 당시 인부들은 인화물질인 우레탄으로 방수·단열작업을 하고 있었다. 현장에는 우레탄 외에도 페인트와 시너 등 다른 인화물질이 가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전기 합선이나 용접 작업에서 일어난 불꽃이 인화성 물질에 튀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시공사인 지에스(GS)건설이 불이 잘 붙는 우레탄으로 단열 공사를 하면서 용접 작업을 병행했는지 등 안전수칙 위반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 검은 연기로 광화문 일대 마비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직후 소방차 30대와 소방대원 225명을 투입해 1시간20여분 만에 진화에 성공했지만, 검은 연기가 광화문 일대를 덮으면서 바로 옆 경복궁 경내에 있던 관광객 200여명이 긴급히 대피하는 등 소동이 일었다. 화재 직후부터 경찰은 삼청동 입구부터 금융연수원까지 차량 출입을 통제했고 현장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일대 교통은 1시간여 동안 극심한 정체를 겪었다. 검은 연기는 한강 건너 여의도에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짙었고, 매캐한 냄새는 광화문 사거리에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근처의 한 식당 주인은 “점심을 준비하다 갑자기 연기가 가게 안에 가득 차서 장사를 포기하고 도망쳐 나왔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화재 소식과 사진을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뜨렸다. 한 누리꾼은 “경복궁 인근에서 발생한 화재라는데 신도림에서 보인다”며 트위터에 사진을 게재했고, 다른 누리꾼은 “남대문에 이어 또 국보급 문화재가 소실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됐다”는 글을 올렸다.
■ 2월 완공 목표 맞추려 속도전? 이번 사고가 내년 2월 완공 목표를 지키려고 공사를 서두르다 일어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현장에서 일해온 하청업체 관계자는 “기간을 앞당기는 공사를 ‘돌관공사’라고 하는데 이 공사가 대표적인 돌관공사였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공사를 마쳐야 한다는 건 현장 직원들이 다 아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아무개(52)씨는 “처음엔 늦게까지 공사를 안 했는데 요새는 새벽 2시까지 공사를 하고, 토·일요일도 없이 공사를 했다”며 “가게에 들르는 인부들에게 ‘왜 이리 늦도록 공사하느냐’고 물어보니 ‘청와대에서 올해 안에 끝내라고 했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근처 건물 주차관리인 임아무개(38)씨도 “밤 10시가 넘도록 공사를 해 소음이 심했다”며 “주민들이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하려던 참이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대학원 교수는 “공식적인 공사기간은 1년 반이었지만 그 터에서 발견된 조선 말기 왕실 건물 ‘종친부’ 등을 발굴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쓴 것으로 안다”며 “원래 공기보다 더 짧은 시간에 맞추려고 공사가 급하게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공사현장 함께 참여한 3형제
동생 사망·형은 중상 ‘참변’ 13일 사고 현장에서는 4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모두 2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화재가 일어난 지하 3층에서만 오현주(48)씨 등 3명이 유독가스 질식으로 숨지고 12명이 부상당했다. 지하 2층에서도 3명이 얼굴과 기도에 화상을 입는 등 중상을 당했고, 이 가운데 1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다. 지하에서 작업하던 이들이 주로 피해를 당한 것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지하 3개층만 면적이 3만1000여㎡에 이르고 건물 구조가 미로 같은데다 군데군데 자재가 쌓여 있어 구조작업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숨진 4명 모두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형제가 화재 현장에서 함께 빠져나오다 동생은 숨지고 형은 중상을 입는 안타까운 상황도 일어났다. 유윤상(46)씨는 이날 동생 유문상(43)씨와 함께 지하 2층에서 작업중이었다. 불꽃을 먼저 발견한 형 유씨가 “도망가”라고 소리 지르며 동생 유씨의 손을 잡고 뛰었지만, 출구 근처에서 동생의 손을 놓쳐버렸다. 동생 유씨는 연기에 질식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혼자 밖으로 나온 형 유씨는 급히 소방대원을 불렀지만, 출구 쪽으로 불길이 치솟아 바로 진입할 수 없었다. 20여분 뒤 소방대원이 투입돼 동생을 둘러업고 나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형 유씨도 얼굴에 화상을 입는 중상을 당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공사에 함께 참여했지만 다행히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던 또다른 형 유택상(49)씨는 “사고 현장에 인화성 물질이 곳곳에 깔려 있고, 내부는 너무 어두워서 매일 들어가는 사람도 길을 잃을 정도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화재로 부상을 입은 24명은 서울대병원, 강북삼성병원, 적십자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백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미술관 터 기구한 역사 옛 기무사·국군서울병원 자리
유적 복원 논란 등 숱한 잡음 불이 난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터에는 기구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 원래 이 땅은 조선시대 왕실 친척들의 사무를 총괄하는 종친부와 언론기관 사간원, 왕실도서관 규장각이 있던 곳이다. 19세기 중엽 대원군은 아들 고종의 경복궁 중건을 계기로 이곳의 종친부 시설들을 확장했으며, 구한말에는 규장각이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그 뒤 조선을 병합한 일제는 1920년대 이곳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 병원을 세웠고, 해방 뒤엔 서울대의대 제2부속병원, 국군병원을 거쳐 70~80년대 공작정치의 상징이던 국군 보안사령부(90년대 기무사령부로 개칭)가 들어섰다. 1981년엔 경내 종친부 건물이 테니스코트장을 만든다는 이유로 뜯겨져 북촌 정독도서관 옆으로 쫓겨가는 수모를 겪었다. 기무사 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26사태로 시해된 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주도한 12·12쿠데타를 모의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2010년까지 경내에 있다 이전한 국군서울지구병원은, 10·26 당시 박 전 대통령 주검이 처음 안치됐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90년대 들어 미술계에서는 기무사 터가 화랑·미술관 등이 밀집한 인근 북촌 문화지구와 가깝다는 이유를 들어 국립미술관을 건립하자는 운동을 벌여왔다. 이런 노력 끝에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겠다고 밝혔고, 뒤이어 지난해 6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기공식을 열고 새 미술관 건립 공사를 시작했다. ‘삶과 예술의 소통’을 내세운 새 미술관은 2010년 8월 공모에서 당선된 민현준 홍대 교수팀이 설계한 작품이다. 전통문화유산의 풍경과 현대미술 전시를 잇는 열린 마당의 얼개로, 기무사 터와 국군서울병원 터를 합친 2만7303㎡의 면적에 지하 3층, 지상 3층의 전시·수장·아카이브 시설 등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올해 연말 완공을 목표로 내건 공사는 시작부터 잡음을 일으켰다. 기무사 본관 철거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고, 설계안도 사전 발굴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발표한 탓에 현장 여건에 맞게 설계를 수정하고 공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란 지적이 잇따랐다. 이런 우려에도 문화부는 현 정부 임기 안 완공을 위해 공기를 늦추지 않고 속도전을 강행해왔다. 사전 발굴 조사 과정에서 옛 종친부 터 유적이 발굴되어 복원 여론이 거세지자, 애초 계획과 달리 종친부 건물을 복원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기도 했다. 수난의 근대역사와 갈팡질팡하는 국가 문화 정책이 뒤얽힌 곳이 바로 기무사 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광화문 뒤덮은 연기 ‘MB 임기내 완공’이 불씨?
■ ‘독도수호 표지석’에 MB 이름이 왜?
■ 김문수 “나같으면 비리전력 김종인 날린다”
■ 정지영 감독 “영화가 힘들어 나가는 사람이 생길지도…”
■ 전력난 왜 해마다 반복되나?
■ 방송3사 올림픽중계 KBS 웃고, MBC 울다
■ [화보] 가을이 멀지 않았다
인화물질 많아 금세 번져
구조 복잡해 진화 애먹어
가스 질식 등 24명 부상
“MB 임기안 끝내려 속도전
현장에선 다 아는 이야기” 1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공사 현장에서 불이 나 작업중이던 노동자 4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쳤다. 준공일을 맞추려고 공사를 서두르다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인화물질 등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여러 의혹이 일고 있다. ■ 미로 같은 구조에 인화물질 가득 불은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신축중이던 건물 지하 3층에서 났다. 현장에 소화기가 비치돼 있었지만 불이 순식간에 번지는 바람에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건물 구조가 미로 같은데다 군데군데 자재가 쌓여 있어 대피와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장에 있던 하청업체 관계자는 “유증기가 가득 찬 지하 3층에서 스파크가 발생하면서 순식간에 인화물질에 불이 붙었다”고 말했다. 당시 인부들은 인화물질인 우레탄으로 방수·단열작업을 하고 있었다. 현장에는 우레탄 외에도 페인트와 시너 등 다른 인화물질이 가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전기 합선이나 용접 작업에서 일어난 불꽃이 인화성 물질에 튀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시공사인 지에스(GS)건설이 불이 잘 붙는 우레탄으로 단열 공사를 하면서 용접 작업을 병행했는지 등 안전수칙 위반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 검은 연기로 광화문 일대 마비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직후 소방차 30대와 소방대원 225명을 투입해 1시간20여분 만에 진화에 성공했지만, 검은 연기가 광화문 일대를 덮으면서 바로 옆 경복궁 경내에 있던 관광객 200여명이 긴급히 대피하는 등 소동이 일었다. 화재 직후부터 경찰은 삼청동 입구부터 금융연수원까지 차량 출입을 통제했고 현장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일대 교통은 1시간여 동안 극심한 정체를 겪었다. 검은 연기는 한강 건너 여의도에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짙었고, 매캐한 냄새는 광화문 사거리에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근처의 한 식당 주인은 “점심을 준비하다 갑자기 연기가 가게 안에 가득 차서 장사를 포기하고 도망쳐 나왔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화재 소식과 사진을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뜨렸다. 한 누리꾼은 “경복궁 인근에서 발생한 화재라는데 신도림에서 보인다”며 트위터에 사진을 게재했고, 다른 누리꾼은 “남대문에 이어 또 국보급 문화재가 소실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됐다”는 글을 올렸다.
13일 오전 불이 난 서울 종로구 소격동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공사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부상자를 업어나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공사현장 함께 참여한 3형제
동생 사망·형은 중상 ‘참변’ 13일 사고 현장에서는 4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모두 2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화재가 일어난 지하 3층에서만 오현주(48)씨 등 3명이 유독가스 질식으로 숨지고 12명이 부상당했다. 지하 2층에서도 3명이 얼굴과 기도에 화상을 입는 등 중상을 당했고, 이 가운데 1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다. 지하에서 작업하던 이들이 주로 피해를 당한 것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지하 3개층만 면적이 3만1000여㎡에 이르고 건물 구조가 미로 같은데다 군데군데 자재가 쌓여 있어 구조작업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숨진 4명 모두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형제가 화재 현장에서 함께 빠져나오다 동생은 숨지고 형은 중상을 입는 안타까운 상황도 일어났다. 유윤상(46)씨는 이날 동생 유문상(43)씨와 함께 지하 2층에서 작업중이었다. 불꽃을 먼저 발견한 형 유씨가 “도망가”라고 소리 지르며 동생 유씨의 손을 잡고 뛰었지만, 출구 근처에서 동생의 손을 놓쳐버렸다. 동생 유씨는 연기에 질식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혼자 밖으로 나온 형 유씨는 급히 소방대원을 불렀지만, 출구 쪽으로 불길이 치솟아 바로 진입할 수 없었다. 20여분 뒤 소방대원이 투입돼 동생을 둘러업고 나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형 유씨도 얼굴에 화상을 입는 중상을 당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공사에 함께 참여했지만 다행히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던 또다른 형 유택상(49)씨는 “사고 현장에 인화성 물질이 곳곳에 깔려 있고, 내부는 너무 어두워서 매일 들어가는 사람도 길을 잃을 정도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화재로 부상을 입은 24명은 서울대병원, 강북삼성병원, 적십자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백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미술관 터 기구한 역사 옛 기무사·국군서울병원 자리
유적 복원 논란 등 숱한 잡음 불이 난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터에는 기구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 원래 이 땅은 조선시대 왕실 친척들의 사무를 총괄하는 종친부와 언론기관 사간원, 왕실도서관 규장각이 있던 곳이다. 19세기 중엽 대원군은 아들 고종의 경복궁 중건을 계기로 이곳의 종친부 시설들을 확장했으며, 구한말에는 규장각이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그 뒤 조선을 병합한 일제는 1920년대 이곳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 병원을 세웠고, 해방 뒤엔 서울대의대 제2부속병원, 국군병원을 거쳐 70~80년대 공작정치의 상징이던 국군 보안사령부(90년대 기무사령부로 개칭)가 들어섰다. 1981년엔 경내 종친부 건물이 테니스코트장을 만든다는 이유로 뜯겨져 북촌 정독도서관 옆으로 쫓겨가는 수모를 겪었다. 기무사 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26사태로 시해된 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주도한 12·12쿠데타를 모의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2010년까지 경내에 있다 이전한 국군서울지구병원은, 10·26 당시 박 전 대통령 주검이 처음 안치됐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90년대 들어 미술계에서는 기무사 터가 화랑·미술관 등이 밀집한 인근 북촌 문화지구와 가깝다는 이유를 들어 국립미술관을 건립하자는 운동을 벌여왔다. 이런 노력 끝에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겠다고 밝혔고, 뒤이어 지난해 6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기공식을 열고 새 미술관 건립 공사를 시작했다. ‘삶과 예술의 소통’을 내세운 새 미술관은 2010년 8월 공모에서 당선된 민현준 홍대 교수팀이 설계한 작품이다. 전통문화유산의 풍경과 현대미술 전시를 잇는 열린 마당의 얼개로, 기무사 터와 국군서울병원 터를 합친 2만7303㎡의 면적에 지하 3층, 지상 3층의 전시·수장·아카이브 시설 등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올해 연말 완공을 목표로 내건 공사는 시작부터 잡음을 일으켰다. 기무사 본관 철거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고, 설계안도 사전 발굴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발표한 탓에 현장 여건에 맞게 설계를 수정하고 공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란 지적이 잇따랐다. 이런 우려에도 문화부는 현 정부 임기 안 완공을 위해 공기를 늦추지 않고 속도전을 강행해왔다. 사전 발굴 조사 과정에서 옛 종친부 터 유적이 발굴되어 복원 여론이 거세지자, 애초 계획과 달리 종친부 건물을 복원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기도 했다. 수난의 근대역사와 갈팡질팡하는 국가 문화 정책이 뒤얽힌 곳이 바로 기무사 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광화문 뒤덮은 연기 ‘MB 임기내 완공’이 불씨?
■ ‘독도수호 표지석’에 MB 이름이 왜?
■ 김문수 “나같으면 비리전력 김종인 날린다”
■ 정지영 감독 “영화가 힘들어 나가는 사람이 생길지도…”
■ 전력난 왜 해마다 반복되나?
■ 방송3사 올림픽중계 KBS 웃고, MBC 울다
■ [화보] 가을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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