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폭행’으로 머리를 크게 다친 박아무개 씨가 지난 10일 서울 양천구 목동연세요양병원에서 부인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RT, 소통이 나눔이다 ⑥ 식물인간 된 60대 박씨네
넉달전 동네 취객주먹에 날벼락
뇌사 판정 40일뒤 깨어났지만
말하지도 몸을 가눌 수도 없어
베이비시터·가정부 하던 잉꼬부부
병원비 천만원 없어 길 나앉을 판
“잘못도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이…”
넉달전 동네 취객주먹에 날벼락
뇌사 판정 40일뒤 깨어났지만
말하지도 몸을 가눌 수도 없어
베이비시터·가정부 하던 잉꼬부부
병원비 천만원 없어 길 나앉을 판
“잘못도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이…”
저녁바람이 선선하던 지난 4월 말,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박아무개(67)씨는 평소 ‘형님’이라 부르며 가깝게 지내는 이웃을 만나러 옆 단지에 갔다. “아기 키우는 일은 어때?” “노는 것보다는 낫죠.”
퇴직 뒤 집에서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박씨는 이웃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형님 또 봅시다. 전 마트 들러서 반찬 좀 사가지고 집에 갈게요.” 놀이터에서 이야기를 마친 박씨는 마트가 있는 놀이터 반대편 입구 쪽으로 향했다. 놀이터를 빠져나갈 무렵, 한 술취한 남자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박씨는 무심결에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주먹으로 박씨의 머리를 때렸다. 이른바 ‘묻지마 폭행’이었다. 박씨는 넘어지면서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이를 본 이웃 형님이 경찰과 119에 신고를 했다. 뇌출혈이 일어난 박씨는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 6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지만 뇌사 판정을 받았다.
아내 유아무개(58)씨는 간병인 수업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남편 박씨가 아무 이유없이 동네 사람에게 맞아 뇌사 상태가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는 듯했다.
남편 박씨는 한 유통회사에서 운전기사로 30년간 일하다 10년 전 정년퇴직했다. 그 뒤 길에서 폐지를 줍거나 베이비시터 일을 하면서 한달에 120만원가량 벌었다. 아내 유씨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정부 일을 해 생계를 도왔다.
부부는 이 아파트에서 20년간 전세로 살았다. 그 사이 아들은 결혼해 분가했다. 전세 아파트가 부부의 유일한 터전이자 재산이었다. 남편은 부인이 밖에 나가 일하는 동안 집안일을 도맡았다. “평소 말이 없는 과묵한 성격이지만 베이비시터 일을 하면서 대화도 늘었고, 일 마치고 돌아오면 부침개를 부쳐줄 정도로 자상했다”고 유씨는 말했다.
사고가 난 뒤부터 유씨는 일을 그만두고 남편 간호에 매달렸다. 병원에선 가망이 없다고 했다. 유씨도 처음엔 절망했으나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자”는 아들의 말에 마음을 추스렸다. 24시간 내내 남편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했다. 목에 구멍을 내고 끼운 호스로 가래를 제거하고 음식을 넣었다.
40일 만에 남편이 눈을 떴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남편은 정신을 차렸으면서도 말을 할 수도,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사람을 보면 눈의 초점을 모으고, 인사를 하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정도의 동작만 한다. 상대를 알아보거나 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라고 유씨는 말했다. 가족들은 하염없이 다음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 남편 사건의 재판이 진행됐다. 남편의 의식이 돌아온 뒤, 유씨는 재판을 준비하려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다. 그동안 남편을 돌봐줄 간병인도 구했다. 마땅한 벌이가 없으므로 빚을 내어 간병 비용을 충당한다.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유씨는 경찰의 소개로 한국피해자지원협회를 만나 법률상담 등 도움을 받고 있다.
석달여 동안 병원비는 3000여만원으로 늘었다. 남편 박씨가 범죄 피해자로 인정받은 덕분에 건강보험공단의 감면혜택을 받긴 했지만, 가족이 부담해야 할 치료비는 여전히 1000만원이 넘는다. 병원비 때문에 지난달 20일 집 근처 작은 병원으로 옮겼지만, 비용은 매일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남편을 집에 데려와 간호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혼자 돌보면 위험하다고 병원에서 말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전세금을 빼내야 할 상황이다. “저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유씨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신미현 사무국장은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던 중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유씨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남편 박씨뿐만 아니라 아내 유씨의 건강에도 심각한 무리가 온 상태”라고 말했다. 신 국장은 “피해 전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현재 겪고 있는 경제적·심리적 부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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