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해 큰 인명피해가 난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현장 앞에서 사고 희생자 유족인 유택상씨가 안전관리 미흡 및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등의 문제를 기자들에게 이야기하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현대미술관 화재현장 유족 단독동행 르포
수없이 왼쪽·오른쪽 방향 꺾여
매일 일하는 사람들도 길 잃어
철골·합판 튀어나와 발길 위험
유족 “유도등은 어디 있나요?”
10월말 MB참석 사전행사 예정
무리한 공사 강행이유인지 의심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는 어른 한 사람이 지나면 꽉 찰 만큼 비좁았다. 방진 마스크를 썼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덮쳤다. 지하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절반쯤 내려가자 바깥의 빛은 건물 내부를 전혀 비추지 못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등은 불이 난 직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꺼져 있었다. 1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화재 현장에서 희생자 유족들의 요구로 경찰과 시공사의 현장설명이 이뤄졌다.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 형사 3명, 과학수사반장, 유족 6명, 시공사인 지에스(GS)건설 직원 2명 등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으로 발아래를 비추며 조심조심 계단을 밟았다. 불이 난 지하 3층까지 내려가자 전날 소방대원들이 뿌린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물 위로 단열재인 우레탄폼과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미로가 시작됐다. 불이 시작된 곳까지 이어지는 길을 눈에 익히려 했지만 도저히 기억할 수 없었다. 왼쪽, 오른쪽으로 끊임없이 방향을 틀어야 했다. “여기서 매일 일하는 사람들도 하루에 두번씩은 길을 잃었어요.” 이번 화재로 동생을 잃은 유족 유택상씨가 말했다. 유씨는 동생과 함께 이 현장에서 일해왔다. 미로 같은 길을 안내해주는 유도등은 거의 없었다. “유도등은 어디 있어요?” 유족 가운데 한 명이 따졌다. 지에스건설 직원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손전등을 들고도 걸음마다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철골과 합판 등이 튀어나와 있어 발길을 가로막았다. 페인트, 스티로폼, 샌드위치 패널 등 인화물질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어디서건 불꽃이 튀면 삽시간에 큰불로 번지게 할 만반의 준비라도 갖춘 듯했다. 공사중이던 시설물이 삽시간에 장애물로 돌변했을 깜깜한 미로 속에서 노동자 4명이 질식해 숨졌다. “이런 곳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차라리 용하다”고 유족들은 혀를 찼다. 지하 3층 공사현장 한켠에 사무실이 있었다. 숨진 노동자들이 작업 지시를 받고 잠깐씩 숨을 돌리던 곳이었다. 사무실 안에 소화기가 있었다. 불이 난 작업현장에서 몇 개의 방을 지나야 닿을 수 있는 위치였다. 현장에 비치해 뒀다는 소화기는 보이지 않았다. 현장설명 직전 지에스건설은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족들이 가로막았다. 유족 최승현(37)씨는 “기자회견 전에 일단 유족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따졌다. 유족 대표로 나선 유택상씨는 “사고가 났던 지하 3층에 안전요원은 단 1명뿐이었다”며 “유도등이 설치가 안 돼 있어 지하는 완전히 미로”라고 말했다. 해명에 나선 지에스건설 김세종 상무는 “안전요원은 더 있었다”면서도 “몇 명이 있었는지는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사고 당일 용접작업은 없었다”고 말했다. 내년 2월 완공 예정일을 지키려고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다 벌어진 인재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김 상무는 “우기를 앞두고 공정을 앞당기기 위해 야간공사를 진행했다”고 답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사전개관(프리오픈) 행사가 계획됐던 사실도 드러났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14일 “오는 10월 말 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프리오픈 행사를 열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행사 내용 가운데는 전시실, 기록물보존실, 극장 등의 시설물을 살펴보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프리오픈’ 행사가 열리는 10월 말 이전까지 각 시설 공사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사전개관 행사가 현장 노동자들을 더욱 재촉하게 만든 이유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종로경찰서는 조만간 지에스건설 관계자들을 소환해 무리한 공사 강행이나 안전조처 미비 등의 잘못이 있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윤형중 조애진 기자 hjyo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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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유도등은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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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공사 강행이유인지 의심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는 어른 한 사람이 지나면 꽉 찰 만큼 비좁았다. 방진 마스크를 썼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덮쳤다. 지하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절반쯤 내려가자 바깥의 빛은 건물 내부를 전혀 비추지 못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등은 불이 난 직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꺼져 있었다. 1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화재 현장에서 희생자 유족들의 요구로 경찰과 시공사의 현장설명이 이뤄졌다.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 형사 3명, 과학수사반장, 유족 6명, 시공사인 지에스(GS)건설 직원 2명 등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으로 발아래를 비추며 조심조심 계단을 밟았다. 불이 난 지하 3층까지 내려가자 전날 소방대원들이 뿌린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물 위로 단열재인 우레탄폼과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미로가 시작됐다. 불이 시작된 곳까지 이어지는 길을 눈에 익히려 했지만 도저히 기억할 수 없었다. 왼쪽, 오른쪽으로 끊임없이 방향을 틀어야 했다. “여기서 매일 일하는 사람들도 하루에 두번씩은 길을 잃었어요.” 이번 화재로 동생을 잃은 유족 유택상씨가 말했다. 유씨는 동생과 함께 이 현장에서 일해왔다. 미로 같은 길을 안내해주는 유도등은 거의 없었다. “유도등은 어디 있어요?” 유족 가운데 한 명이 따졌다. 지에스건설 직원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손전등을 들고도 걸음마다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철골과 합판 등이 튀어나와 있어 발길을 가로막았다. 페인트, 스티로폼, 샌드위치 패널 등 인화물질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어디서건 불꽃이 튀면 삽시간에 큰불로 번지게 할 만반의 준비라도 갖춘 듯했다. 공사중이던 시설물이 삽시간에 장애물로 돌변했을 깜깜한 미로 속에서 노동자 4명이 질식해 숨졌다. “이런 곳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차라리 용하다”고 유족들은 혀를 찼다. 지하 3층 공사현장 한켠에 사무실이 있었다. 숨진 노동자들이 작업 지시를 받고 잠깐씩 숨을 돌리던 곳이었다. 사무실 안에 소화기가 있었다. 불이 난 작업현장에서 몇 개의 방을 지나야 닿을 수 있는 위치였다. 현장에 비치해 뒀다는 소화기는 보이지 않았다. 현장설명 직전 지에스건설은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족들이 가로막았다. 유족 최승현(37)씨는 “기자회견 전에 일단 유족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따졌다. 유족 대표로 나선 유택상씨는 “사고가 났던 지하 3층에 안전요원은 단 1명뿐이었다”며 “유도등이 설치가 안 돼 있어 지하는 완전히 미로”라고 말했다. 해명에 나선 지에스건설 김세종 상무는 “안전요원은 더 있었다”면서도 “몇 명이 있었는지는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사고 당일 용접작업은 없었다”고 말했다. 내년 2월 완공 예정일을 지키려고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다 벌어진 인재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김 상무는 “우기를 앞두고 공정을 앞당기기 위해 야간공사를 진행했다”고 답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사전개관(프리오픈) 행사가 계획됐던 사실도 드러났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14일 “오는 10월 말 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프리오픈 행사를 열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행사 내용 가운데는 전시실, 기록물보존실, 극장 등의 시설물을 살펴보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프리오픈’ 행사가 열리는 10월 말 이전까지 각 시설 공사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사전개관 행사가 현장 노동자들을 더욱 재촉하게 만든 이유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종로경찰서는 조만간 지에스건설 관계자들을 소환해 무리한 공사 강행이나 안전조처 미비 등의 잘못이 있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윤형중 조애진 기자 hjyo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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