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한겨레 자료사진
1976년 <씨알의 소리>에 1주기 추모글
“이럴 수가 있느냐”며 당시의 충격 전해
“이럴 수가 있느냐”며 당시의 충격 전해
“8월의 태양 아래 선생님의 육신이 대지에 묻히던 날, 저는 관 위에 흙을 끼얹으면서 속으로 빌었습니다. 건강한 몸 받아 어서 오시라고요... 금생(今生)에 못 다한 한 많은 일들을 두고 어찌 고이 잠들 수 있겠습니까. 가신 선생님이나 남은 우리들이 고이 잠들기에는, 우리 곁에 잠 못 이루는 이웃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고 법정 스님이 장준하 선생 사망 1주기에 쓴 추모글이 장 선생 37주기를 맞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씨알의 소리> 1976년 8월호에는 법정 스님이 장준하 선생의 사망 1주기를 기리며 쓴 ‘장준하 선생께 띄우는 편지’라는 글이 실려 있다.
법정 스님은 “장준하 선생님! 선생님이 어처구니없이, 정말 어처구니없이 우리 곁을 떠난 지 한 돌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다 그런 것이긴 하지만, 장 선생님의 죽음처럼 그렇게 허망한 경우는 또 없을 것 같습니다”라며 글을 시작한다.
그는 민중신학자인 안병무 한신대 교수가 건네준 신문으로 장 선생의 사망 소식을 알고 “일면 머리기사! 그 비보를 보는 순간 저는 가물가물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느냐고.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라며 당시의 충격을 전한다.
법정 스님은 당시 잡지 <사상계>를 운영하던 장 선생을 만난 뒤, <씨알의 소리> 편집회의와 ‘항일 문학의 밤’ 등에서 장 선생을 만난 일을 떠올리며 “그때까지 산에만 묻혀 살던 저에게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눈뜨게 해 주셨습니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
그는 장 선생을 “누구보다도 이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지성이었고 불의 앞에 용감히 도전하는 행동인이었습니다. 이런 선생님을 가리켜 한 동료는 “그는 금지된 동작을 맨 먼저 시작한 혁명가” 라고 말합니다”라며 높이 평가한다.
또한 “그토록 파란 많고 수난으로 점철된 일생. 50평생을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겨레의 자유를 위해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 가신 분. 서울 장안에 크고 작은 집들이 무수히 깔려 있는데도, 방 한 칸 없이 남의 셋집으로만 전전하다 가신 가난한 분. 커가는 자식들 교육을 남들처럼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시던 아버지”라며 장 선생의 희생 정신을 기린다.
법정 스님이 이 글을 쓴 1976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으로 독재 정치를 펴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시절이 잘못되어 가면서 우리들은 만날 기회가 잦았습니다”는 등 세태를 비판하는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올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더위에 안녕히 계십시오. 분향(焚香) 합장(合掌)”이라고 인사를 하며 글을 맺는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185회 제2부]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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