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찾아간 여의도 살인 미수 사건의 피의자 김아무개(30)씨가 살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은 옷과 집기 등으로 비좁았다. 사진 박아름 기자 parkar@hani.co.kr
[절망살인의 시대] 우리 안의 은둔자들 ①
돈·가족·친구도 없는 절망은둔자들 “죽고 싶다, 죽이고 싶다”
여의도·지하철 칼부림 피의자 등 빈곤·외로움 등으로 분노 쌓인채
사회적 관계망서 단절된 채 생활 인터넷 카
돈·가족·친구도 없는 절망은둔자들 “죽고 싶다, 죽이고 싶다”
여의도·지하철 칼부림 피의자 등 빈곤·외로움 등으로 분노 쌓인채
사회적 관계망서 단절된 채 생활 인터넷 카
17살 되던 해, 권아무개(39)씨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했다. 고등학교도 중퇴했다. 그 뒤 23년 동안 혼자 지냈다. 서울 은평구의 어느 고시원 작은 방에 살고 있다. 공장과 유흥업소 등을 전전하며 일했지만, 이젠 건설현장 일용직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나마 허리 디스크 때문에 1주일에 한 번만 나간다. 한 달에 40만원을 벌어 18만원을 고시원 방값으로 내고, 남은 돈으로 라면을 사 먹는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에 대해 권씨는 말했다. “그 사람 마음과 상황을 십분 이해해요.” 권씨에겐 가족이 없다. 친구도 없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유일한 공간은 어느 인터넷 카페다.
“나처럼 죽고 싶고,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권씨가 가입한 곳은 ‘은둔자’들의 카페다. 세상의 시선을 피해 은둔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라고 스스로 소개하는 곳이다. 카페 게시판에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극단적 분노와 자살·살인충동을 표현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이젠 정말 살고 싶지 않다. 사람을 찌르고 싶다’는 글이 자주 올라오지요.” 권씨가 말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권씨는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람을 찌르고 싶다’고 토로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혼자서 분노를 곱씹는 ‘절망형 은둔자’는 권씨만이 아니다.
최근 서울 여의도와 경기도 의정부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은 사회적 관계망에서 단절된 절망형 은둔자가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의도 사건의 피의자 김아무개(30)씨는 지난 4월 실직 뒤, 고시원에 혼자 틀어박혀 지냈다. 가족과도 사실상 아무 교류가 없었다. 의정부 사건의 피의자 유아무개(39)씨는 10년 넘게 공사판을 돌아다녔다. 그는 경찰에서 “친구가 없다”고 진술했다. 경기도 연천의 고향집도 2~3년에 한 번씩 찾았을 뿐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탄탄한 인간관계가 있으면 좌절이나 실패가 주는 충격이 완화되지만, 혼자 삭일 수밖에 없는 은둔자들의 스트레스는 폭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성훈 경찰대 교수(행정학)는 “여의도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가 칼을 여러 자루 사 모아 숫돌에 갈았던 것은 분노를 해소하는 나름의 행위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어딘가 마음 둘 곳이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분노를 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절망형 은둔자들은 누적된 좌절과 불만을 공개된 장소에서 표출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한 사람을 공격 대상으로 삼지만, 공격 과정에서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충동적으로 공격한다. 범행 자체를 즐기는 연쇄살인, 원한을 갚으려는 보복살인 등과도 다르다.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등장했고, 이런 범행에 공감한다는 절망형 은둔자들이 폭증하고 있는데도, 정부의 대책은 관성적이다. 정부는 지난 27일 관계장관회의에서 우범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출소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의정부와 여의도 사건의 피의자들은 초범자였다. 경찰이 관리하는 우범자나 출소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절망범죄가 기존 범죄와 다르다는 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일본형 외톨이보다 장기간 심한 빈곤
전문가들 “실업자층에서 집단적 형성” 절망은둔자들의 유형 20~40대 실업자 57만명 달해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절망형 은둔자’가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와 조금 다르다고 지적한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층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많이 발생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장기 실업 또는 장기 빈곤을 겪은 중장년층 가운데도 절망형 은둔자가 적지 않다. 일본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열악한 한국의 특성상, 빈곤의 정도가 더 깊고 고질적이라는 점도 다르다. 전문가들은 광범위한 실업자들 가운데 ‘절망살인’의 충동을 느끼는 절망형 은둔자 집단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20~40대 실업자는 57만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72%에 달한다. 20, 30대 청년 중에서 소득최하위 계층인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만 16만명이다. 빚이 많아 정상적 경제활동이 어려운 신용 최하위등급(10등급)은 지난해 5월 기준으로 약 40만5000명이다. 2010년 말 33만3000명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이는 한번 경제적 곤궁에 빠진 계층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사회경제적 궁핍은 가족 붕괴와 독거 가구의 증가로 이어진다. 1990년 1인가구 수는 102만에 불과했지만, 2000년 222만, 2010년 414만에 이르렀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1인가구가 늘어난 면이 없지 않지만, 실직·빈곤을 거듭하다 가족이 해체되어 혼자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1인가구는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지만, 지역사회에서조차 관계망이 형성되지 않는다. 여의도 사건 피의자 김씨가 살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은 전국에서 1인가구가 가장 많은 동이다. 신림동 전체 1만3023가구 가운데 9691가구가 1인가구다. 하지만 집 안에 가족이 없는 김씨는 집 밖에도 이웃이 없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실업과 저임금으로 생계가 어려워지고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절망형 은둔자’들이 늘고 있다”며 “이들이 부유층과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목도하며 사회적인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윤형중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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