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살인]의 시대
우리 안의 은둔자들 ②
우리 안의 은둔자들 ②
서울 성동구 월세방에서 홀로 지내는 이아무개(19)씨는 대입 경쟁에서 낙오했다. 식당, 술집, 커피숍 등 3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입 재수를 준비하고 있다. 입시에 실패한 뒤로 이씨는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이렇게 살다가 재수에서 또다시 실패한다면 정말 궁지에 몰릴 것 같다”고 이씨는 말했다. 한번 낙오하면 다시는 주류에 편입하기 힘든 한국 사회에서 이씨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낙오의 위협은 이어진다. 서아무개(34)씨는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를 겪었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 건설사에 입사했지만 입사 3개월째부터 월급을 받지 못했다. 월급이 다섯달째 밀리자 서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삼류회사’를 그만둔 서씨를 받아주려는 회사는 없었다. 단 한번의 실패 이후 세상이 온통 서씨를 외면하는 듯 했다.
이후 서씨는 건설 현장과 이삿짐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대상자가 되어 푼돈을 번 적도 있다. “너무 불안해서 잘 안 보던 공포영화를 자주 봤는데 살인 장면이 나오면 내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상상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다”고 서씨는 말했다. 다행히 지난 2009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재기했지만, 절망범죄의 임계점까지 떨어졌던 기억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
‘재기의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한번 낙오하면 패자부활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용재료 도매상이었던 박아무개(44)씨는 2010년 모든 재산을 한순간에 잃었다. 함께 사업하던 동업자가 13억원에 이르는 빚을 남기고 도망쳤고, 집을 비롯한 모든 재산이 그의 수중에서 빠져나갔다.
일자리 못얻거나 사업 실패땐
곧바로 궁지 몰려 좌절감 쌓여
사회적 관계 단절뒤 결국 은둔
“영화속 살인장면에 대리만족도” 박씨는 서울역 앞 쪽방으로 갔다. 월급을 받아도 곧바로 차압을 당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 없었다. 공사판에 나가 돈을 벌어 밥은 먹지 않고 술만 마셨다. 신장병까지 얻은 박씨는 쪽방 생활 1년 만에 노숙인 쉼터에 들어갔다. 그사이 박씨는 말을 잃었다. 가만히 있으면 좋지 않은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박씨는 “딴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돈이 생기면 피시방에 가서 멍하니 게임에 몰두한다. 게임 속에서 박씨는 누군가를 찌르고 죽인다. 전문가들은 절망형 은둔자의 대부분이 인생의 주요 단계에서 ‘주류’로 편입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김수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한번 낙오하면 재기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가 절망형 은둔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선 나이에 맞는 목적과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면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된다”며 “최근 안철수 교수, 법륜 스님 등 ‘사회적 멘토’에 열광하는 분위기도 절망하고 외로운 개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의 절망범죄에 대해 “누적된 좌절이 밖으로 표출된 사건이긴 한데, 그보다 더 많은 절망형 은둔자들이 자살로 이미 많이 죽어버렸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절망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절망범죄를 막는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최원규 전북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스웨덴 사회의 기본 전제가 ‘개인은 일생에서 서너번 이상 좌절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에 기초해 사회안전망을 만들었다”며 “방범을 위해 담을 높이 쌓고 무인경비시스템을 구매하는 사회적 비용으로 실직자·낙오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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