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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방과후 ‘나홀로 아이들’ 97만명…국가가 돌봄 책임져야

등록 2012-09-05 20:07수정 2012-09-05 21:24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은 아동 성폭행범 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아이의 발바닥에 ‘지켜주세요’, ‘밟지 마세요’라는 글귀를 쓴 뒤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에 올리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7월31일 개설된 이 모임의 인터넷 카페에는 한 달여 만에 4600여명이 가입했다.  ‘발자국’ 카페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은 아동 성폭행범 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아이의 발바닥에 ‘지켜주세요’, ‘밟지 마세요’라는 글귀를 쓴 뒤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에 올리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7월31일 개설된 이 모임의 인터넷 카페에는 한 달여 만에 4600여명이 가입했다. ‘발자국’ 카페
아이들이 점점 위험해지는 사회
아동성범죄 하루에 5~6건꼴
빈곤층 7.8% “피해경험 있다”
방치 아이들 ‘위험 사각지대’에

전문가 “불심검문·사형집행보다
사회안전망 마련이 근본 대책”

지난해 국내에선 2054건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다. 하루 5~6명의 아이들이 성폭력 피해자가 된 셈이다. 2002년 600건과 비교해보면, 10년 동안 3배로 늘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아동 성폭력을 조장·방치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빈곤층 아이들이 범행 대상
아동을 성범죄 대상으로 삼는 소아성애증은 정신질환이다. 소아성애증 환자들은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소심한 성향을 갖고 있다. 최승원 덕성여대 교수(임상심리학)는 “이들의 범죄는 계획적이기보다는 충동적”이라며 “충동을 제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가깝게 손을 뻗칠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충동을 일으키는 요인 가운데 아동 음란물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성범죄자들을 면담해보면 음란물에 탐닉했던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소아성애 성향이 있는 이들에게 아동 음란물이 범죄 충동의 촉매 노릇을 한 것이다.

이런 사태를 불러온 것은 정부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아동 음란물에 대한 전담기구도 없이 방치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아동 음란물이 유포되도록 방조한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지적했다.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302개 초·중·고 학생 9279명을 대상으로 벌인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조사’를 보면,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하층이라고 답한 아이들의 55%가 “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답했다. 상층이라고 답한 아이들의 경우는 28%만이 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답했다.

치안 체감도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 경험 빈도도 차이가 났다. ‘최근 1년간 성적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하층 아이들은 7.8%로, 상층 아이들(3.5%)의 갑절이 넘었다. 최근 경남 통영, 전남 나주 등에서 발생한 아동 성범죄도 서민들이 주거하는 지역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피해자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더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을 주문하고 있다.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열악한 가정·지역환경 속에 방치돼 범행 대상이 되는 아이들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는 전체 아동의 7.8%인 약 76만명의 절대빈곤(최저생계비 미만) 아동이 존재한다. 여기에 방과후 집에 돌아갔을 때 1시간 이상 혼자 또는 초등학생 아이들끼리 지내는 ‘자기 보호 아동’은 97만여명에 이른다. 잠재적 성범죄 대상인 것이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아동 성범죄가 저소득층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은 방과후 시간을 홀로 보내는 등 방치된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배은정 서울대 의대 교수도 “피해자들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아동 보호, 국가가 나서야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핵가족화에 따라 가정의 양육시스템이 붕괴한 상황에선 국가가 아동 보호를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아동 돌봄의 문제를 개별 가족에 떠넘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사회적 약자에게 사회안전망을 최우선적으로 제공한다는 현대국가의 원리로 보면, 부모가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이는 국가가 돌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불심검문 부활, 화학적 거세, 사형 집행 논란 등을 거론하며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를 돌보는 것이 문제 해결의 근본인데, 이런 문제들이 불심검문 등으로 해결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아동 성범죄 대책의 방향을 정부가 잘못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가정에서 보호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여러 정책을 만들어놓고 있다. 독일의 경우 1992년부터 ‘호르트’(Hort)라는 공공 방과후 교육제도를 운영중이다. 한부모·맞벌이 가정 아동, 고립 아동, 이상행동 아동 등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아이들 사정에 맞게 종일반, 오후반, 주말반 등으로 다양하게 운영되며, 근처 고등교육기관과 협조해 수영장 등 각종 교육·놀이·편의시설도 활용한다.

미국은 2002년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며 ‘21세기 지역사회학습센터’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개별 학습 지원부터 약물·폭력 방지, 기술교육, 미술·음악·레크리에이션 등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인근 국공립·사립학교들이 모두 참여해 시설을 공유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연방정부에서 만들고 예산은 주정부에서 지원한다. 운영 목적으로 ‘아동 보호’를 최우선으로 적시했다.

이를 본받아 국내에 만들어진 것이 ‘지역아동센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4000여곳의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국공립 아동센터는 7곳뿐이다. 그나마도 지역·학교·가정과 연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지부가 주무부서인데, 교육부·여성가족부 등과 긴밀한 정책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아 인근 학교의 시설을 활용하는 것부터 어려운 형편이다. 성태숙 아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재정을 포함한 여러 문제 때문에 지역아동센터들은 늘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며 “운영비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긴 하지만, 돌봄 교사의 인건비에도 모자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돌봄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도 방안이지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공동체 돌봄 시스템을 만드는 방안도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서울 은평구의 ‘어린이 도서관’을 예로 들었다. 2000년 학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로 생긴 이 어린이 전용 도서관은 점차 공동 돌봄 시스템으로 발전했고, 현재는 ‘마을엔(n)도서관’이란 마을기업으로 발전했다. 조한 교수는 “공동체 돌봄 시스템이 생기면, 내 아이나 남의 아이나 차별을 두지 않고 우리 마을 아이들을 전부 내 아이로 여기고 돌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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