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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쇼윈도부부의 딸 “연애? 싸우느니 헤어져”

등록 2012-09-07 15:44수정 2012-09-26 14:46

[토요판] 가족 쇼윈도 부부 딸로 산다는 건
매일 싸우는 부모를 보며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사랑조차 믿을 수 없다

의미없는 부부생활 왜 할까
엄마 대답은 “너도 살아봐라”
온 가족이 연기하는 행복
결국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우리 집 역시 마찬가지다. 멀리서 보면 행복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우리 집 안에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멀리서 보면 우리 집은 말 그대로 ‘비둘기 가족’이다. 튼튼한 중견기업에서 요직을 맡고 계신 아버지(58)는 주변사람들에게도 한없이 다정한 분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내 친구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불러다 밥도 사주시고 고민상담도 해 주시곤 하는 아버지, 친구들은 이런 아버지를 둔 나를 늘 부러워했다. 엄마(55) 역시 마찬가지다. 옆집에 늘 음식을 나눠주는 넉넉한 손, 급하면 옆집 아기도 돌봐주실 정도로 정이 많은 분이시다. 언니(29)와 나(25) 역시 비둘기 가족에 걸맞은 딸들이었다. 공부도 적당히 잘했고, 말썽 한번 피운 일이 없었다. 언니는 지금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나 역시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쓰는 착실한 대학생이다. 걱정할 게 없는 집안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멀리서 본 그림일 뿐이다. 그 속은, 겉과는 다르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내 기억 속 부모님은 항상 싸우고 계신다. 싸움의 시작은 언제나 사소한 것들이었던 듯, 너무 사소해서 무엇 때문에 부모님께서 말다툼을 하셨는지 이젠 기억조차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선 종종 큰 소리로 욕도 하셨다. 그럴 때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나 무섭다. 엄마도 처음엔 함께 언성을 높이시지만 언제나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를 하는 쪽이다. 엄마가 멈추지 않으면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일 터. 중간에서 말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른들 싸움에 끼지 말라”고 화를 내곤 하셨다. 이런 중재 노력이 싸움에 불만 더 붙이는 꼴이 되는 것이다. 싸움 끝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부부 싸움 없는 집이 어딨겠냐”고? 부부 싸움이 ‘칼로 물 베기’가 될 수 있는 건, 적어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존재할 때까지다. 그래야 감정의 끝까지 가지 않는다. 한번은 신용카드 값이 연체돼 꽤 많은 이자수수료를 물어야 했던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께 “분명 카드명세서를 넘겼다”고 하셨다. 엄마는 “받은 적이 없다”고 맞섰다. 부모님은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며 공방전을 벌이더니 급기야는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그동안 쌓아왔던 분노까지 터뜨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기보단 상대방의 책임이란 걸 입증하려고 급급한 듯 보였다.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폐휴지를 버리는 과정에서 신용카드 명세서가 나왔기 때문이다. 여러 고지서가 한꺼번에 오가면서 카드명세서가 신문 속에 끼워져 들어갔는데 미처 몰랐던 것이었다. 작은 오해의 상황에서도 툭 하고 무너질 것 같은 관계, 부모님은 서로를 믿지 못하셨던 것이다.

겉보기에만 좋은 우리 부모님 같은 부부를 ‘쇼윈도 부부’라고 한다지? 쇼윈도 부부로 사는 부모의 속은 곪고 있을 것이다. 그런 부모를 보는 자식이라고 행복할까. 마찬가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나에겐 한가지 ‘필살기’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 밥을 먹어도 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사 시간이라고 피해가지 않는 부모님의 싸움. 언성이 오갈 때도, 너무나 냉랭해 살기마저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나는 밥을 먹는다. ‘이런 상황에서 밥을 먹어도 되나’ 눈치가 보이고 불편하긴 해도 결코 체하진 않는다. 쇼윈도 부모 밑에서 터득한 생존의 법칙이랄까.

대신 결혼에 대한 로망을 잃었다. “예쁜 딸 하나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어차피 결혼하면 싸우면서 살 텐데 왜 저런 기대를 하는 걸까’ 하며, 결혼의 로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스스로 처량해서다.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으니, 연애에 대한 갈망도 사라져 간다. 연애는 ‘매일 싸우고 화해하는 지지부진한 일들을 반복’하는 것 아닌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도 서로를 이해하며 보듬지 못하는데 연애라고 별수 있나 싶다. 그래서 연애를 하다가도 사소한 일로 싸우면 두렵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부터 한다. ‘아, 이 사람과는 이제 불안한 싸움의 연속이겠구나’ 체념하면서 헤어짐을 택하곤 한다. 사소한 싸움 몇 번에 이별 통보를 받은 상대방은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헤어짐밖에 없으니. 몇 번의 연애와 헤어짐 속에서 발견한 나의 연애 패턴이다.

한번은 엄마에게 물었다.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부부 생활을 왜 유지하는 거예요?” 엄마는 “너도 살아봐라” 그렇게 답하셨다. 이 한마디는 내 가슴에 깊게 날아와 꽤 큰 상처를 남겼다. 한마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의 아픔과 슬픔이 내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경제력이 있었다면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자식들이 정착해 가정을 꾸리면 엄마는 그때 이혼을 하지 않을까.’ 경제적 원인과 사회적 시선 등 여러 가지 함수 속에서 엄마는 ‘결혼 유지’라는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다.

아버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혼이 아무리 흔해도 사회적인 시선을 무시하기 힘들다. 또한 이혼으로 반토막 되어 버린 자산은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당신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할 거다. 그저 지금처럼 숨죽이며 살면 어쨌든 삶이 무난하게 마무리되리란 의미 없는 희망을 품으실 게 분명하다.

그러나 난 이런 생각에 반대다. ‘무늬만 부부’인 가족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상처를 간직했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에 어울리는 딸로 보이기 위해 연기를 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 가족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쇼윈도 속에 서버린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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