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 전 검찰 선고통지 접수
구치소는 통지받기 전 사형집행
구치소는 통지받기 전 사형집행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2차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 당시 대법원의 사형 확정판결보다 먼저 형 선고통지서가 군 검찰에 접수되고, 서울구치소는 형 선고통지서가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사형을 집행한 정황을 담은 문건이 공개됐다. 관련 단체들은 ‘당시 대법원에서 이뤄진 재판이 사형을 전제로 한 형식적인 절차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인혁당 유족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4·9통일평화재단(4·9재단)은 1975년 4월9일 사형이 집행된 고 도예종씨의 형 선고통지서와 사형집행명령서를 16일 공개했다.
‘형명·형기’란에 ‘사형’이라고 적힌 도씨의 형 선고통지서를 보면, 이 문서가 대검찰청에서 발송돼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에 접수된 일시는 1975년 4월8일 새벽 3시다. 인혁당 대법원 판결은 이날 오후 2시께 났기 때문에, 확정판결보다 11시간 먼저 형 선고통지서가 군 검찰에 넘어간 것이다.
이상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형 선고통지서를 보면, 군 검찰로부터 서울구치소에 접수된 일시가 ‘4월8일 오후 2시’에서 ‘4월9일 오후 2시’로 고쳐져 있다. 문서에 스탬프로 찍은 접수 일시의 ‘8’을 누군가 펜으로 ‘9’로 고쳐 쓴 것이다.
고쳐 쓴 대로 9일 오후 2시 형 선고통지서가 구치소에 접수됐다면, 같은 날 새벽 4시에 이뤄진 사형 집행보다 10시간 늦게 전달된 것이다. 선고통지서를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형을 집행한 셈이다. 원래 스탬프로 찍혀 있던 8일 오후 2시가 맞다면, 대법원 판결이 나던 바로 그 시각에 이미 군 검찰부가 형 선고통지서를 구치소에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4·9재단 쪽은 “판결이 나오던 시각에 형 선고통지서가 서울구치소까지 송달되는 것도, 사형 집행 뒤에 선고 통지서를 받았다는 것도 모두 엉터리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재단은 국방부 장관 명의로 작성해 서울구치소에 송달된 사형집행명령서도 공개했는데, 형 선고통지서와 마찬가지로 구치소 접수 일시가 ‘4월8일 오후 2시’에서 ‘4월9일 오후 2시’로 바뀌어 있다.
김찬수 4·9 인혁열사 계승사업회 이사는 “당시 청와대 차원에서 대법원 판결쯤은 통과의례 정도로 보고 형식적 절차마저 무시한 채 사형을 집행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