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성범죄, 청소년 성매매]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⑥ 둥지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⑥ 둥지
거리의 청소년들 ‘마지막 선택’을
한국만 유독 ‘자발적 선택’ 편견 모든 청소년 성매수자에
‘의제강간’죄 처벌이 세계적 추세
숙식·치료 등 돌봄시설도 절실 거리의 소녀들은 폭력의 피해자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폭력은 ‘거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폭력으로부터 구조되지 못한 소녀들은 여전히 거리를 떠돌고 있다.
■ 청소년 성매매는 성폭력이다 “외국에선 청소년 성매매를 ‘강간’으로 보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이를 ‘거래’로 본다”고 정혜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연구원은 말했다. 그 배경에는 10대 소녀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선다는 한국 사회의 거대한 편견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 연구원은 “‘성인 남성-남성 청소년-여성 청소년’으로 이어지는 ‘거리의 위계’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소녀들이 성매매에 내몰린다”고 설명했다. 성매매를 하려고 가출하는 경우는 없고, 첫 가출 때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드물며, 생계를 위한 수단을 찾다가 마지막으로 성매매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정 연구원은 “이런 조건을 모르면서 ‘너희들이 선택한 것’이라고 성매매 10대 소녀들을 몰아붙이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라며 “청소년 성매매가 명백한 아동학대임을 정부 차원에서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의제강간’으로 처벌해야 청소년 성매매와 성폭력을 별개의 문제로 보는 사회적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성매수자를 성폭력범으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성매수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을 유인한 성인까지 처벌하도록 했지만, 그 처벌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지나지 않는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막기 위해 2003년 제정된 영국의 ‘그루밍법’은 성인이 만 16살 미만 청소년을 성적인 목적으로 만나려고 시도만 해도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법의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적용 기준을 확대하는 일도 필요하다. 형법 305조는 만 13살 미만의 미성년자를 간음·추행할 경우 청소년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의제강간죄로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적 잣대로는 만 14살이 넘은 소녀를 성매수한 행위는 강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가출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여중생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신하는 법체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박진영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대표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는 모두 의제강간으로 처벌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현행법의 나이 기준을 더 높이는 등 미성년자 성매수자를 성범죄자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성매매 피해 청소년 지원 절실 성매매와 가출을 경험한 아이들을 위한 사후 지원은 청소년 성매매의 재발을 막는 데 필수적이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쉴 곳’이다. 전국 곳곳에는 이들을 위한 ‘청소년 쉼터’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취재중 만난 소녀들은 “쉼터는 가봤자 감금생활이라고 들었다”며 입소를 꺼렸다. 이명아 ‘어깨동무’ 상담부장은 “밖에서 자유롭게 지내던 아이들은 규칙적인 생활과 빡빡한 프로그램 위주의 쉼터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며 “수시로 들러 간식을 먹거나 잠잘 수 있는 ‘일시보호쉼터’를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매매와 성폭력에 오래 노출된 아이들을 위한 ‘치료·주거 보호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에는 ‘하임’이라는 치료 목적의 보호시설이 8000여곳이나 있다. 5명 안팎의 아이들이 상담사·간호사·의사 등과 함께 지내면서 종합적 보호를 받는다. 당연히 정부 예산이 투입되지만, 청소년 성매매에 따른 사회적 손실을 사전에 막는 투자로 여기는 게 독일의 풍토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 돌보지 않으면 다시 거리로 나올 소녀들 취재중 거리에서 만난 소녀들은 9월 말 현재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성은(가명·14)은 친구 지민(가명·14)을 데리고 아빠가 있는 집에 들어갔다. “쉬고 싶다”고 소녀들은 말했다. 가출팸 오빠들의 강요로 조건만남을 이어가던 혜리(가명·14)는 경찰에 붙잡혀 집으로 돌아갔다. 역시 조건만남으로 거리생활을 이어왔던 선화(가명·15)는 병든 몸 때문에 이모의 손에 이끌려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의 귀가가 영구적일지는 알 수 없다. 소녀들은 이미 여러 차례 가출과 귀가를 반복해 왔다. 가출 때마다 거리생활의 기간은 더 늘었다. 소녀들의 다음 가출은 이번 여름의 가출보다 더 치명적일 것이다. <끝>
엄지원 박아름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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