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성범죄·경제범죄 양형기준 강화에…
형량 역전된 살인죄를 어찌할꼬

등록 2012-11-04 19:24수정 2012-11-04 22:34

아동대상 성폭행 ‘징역 8~12년’
‘보통동기’ 살인은 ‘징역 9~13년’
자수하면 ‘징역 6~10년’으로 줄어
법원 내부서도 “근본적 재검토 필요”
살인죄는 다른 범죄들보다 항상 무겁게 처벌해야 할까? ‘엄벌주의’라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다른 범죄들의 형량이 높아졌다면, 살인죄의 형량도 따라서 높여야 할까?

판사들 사이에서 ‘살인죄 양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들의 법감정을 고려해 성범죄·경제범죄의 양형기준이 높아져, ‘피해 회복이 불가능한 유일한 범죄’인 살인죄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던지는 판결도 최근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김상환)는 여자친구(18)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대학생 이아무개(25)씨에게 양형기준 상한보다 5년 많은 징역 15년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판결문을 보면, 올해 지방의 한 대학에 입학한 이씨는 지난 8월 어머니에게 소개한다며 여자친구를 서울 집으로 데려갔다. 이씨는 여자친구한테 ‘어머니가 초대했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여자친구가 서울에 온 사실조차 몰랐다. 이씨는 뒤늦게 여자친구에게 이를 털어놨고, 여자친구가 욕을 하고 머리를 밀치자 화가 나 살인에까지 이르렀다.

검찰은 이씨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이씨의 범행은 대법원 양형기준의 분류에 따르면 ‘보통 동기에 의한 살인’으로, 자수한 점을 참작하면 권고형량은 징역 6~10년이었다(표 참조). 살인죄에 대한 양형기준 준수율은 89%에 이른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만 19살이 되지 않았던 피해자는 자신의 존엄한 생명을 빼앗겨 그동안의 모든 꿈과 희망들이 한순간에 허망하게 사라졌으며, 유족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깊은 상실감에 빠져 도무지 치유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살아있는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 것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그 어떠한 말도 건네지 못하는 죽은 사람의 억울함을 우선적으로 헤아려 이씨에 대한 형사책임을 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최근 성범죄와 경제범죄 등 국민 법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는 범죄의 양형기준이 대폭 상향되면서, 살인죄의 양형과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피해자한테 일부 책임이 있어 ‘참작할 만한 동기’가 인정되는 살인(징역 4~6년)은 아동 대상 성폭행(징역 8~12년)의 절반가량 형량에 그친다. ‘보통 동기’ 살인의 기본형량은 9~13년인데, 이는 5억원 이상 뇌물죄 등의 기본형량(징역 9~12년)과 비슷하다.

문유석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6월 법원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려 “살인죄의 양형은 모든 범죄 양형의 암묵적인 기준점 역할을 해, 한명을 죽인 살인죄에 징역 13년을 선고하는 관행은 다른 범죄의 양형도 순차적으로 낮추는 역할을 했다”며 “성범죄에 대한 형량이 상향되면서 살인죄 형량과 역전돼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살인죄의 양형 분포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살인죄 형량이 낮으므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서울지역 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최근 성범죄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엄벌주의로 인해 양형기준이 대폭으로 상승했는데, 이 때문에 다른 범죄의 양형까지 증가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살인의 경우 모든 것의 근본인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범죄에 대한 비난 가능성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범죄임에도 양형기준이 낮다”며 “다른 범죄의 양형과 관계없이 살인죄 양형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2002년 방식으로 단일화 설문하면 안 53.2% >문 39.8%
주택채권 소비자는 ‘봉’…증권사 20곳 금리조작
전 공군장성 “다른나라 침략 식민지 만들자”
학교경비, 책임은 교장급인데 월급은 78만원
엄태웅, 깜짝 결혼발표…예비신부는 발레리나
‘뉴 SM5’ 르노삼성 구세주 될까
[화보] 내곡동 진실 밝혀질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