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지음, 한승조 옮김
삼성출판사, 1990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all against all) <리바이어던>이 출처지만 생각만큼 책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책 제목을 모르는 사람도 이 말은 자주 쓴다. 동시에 역사상 가장 독점적으로 오독된 글귀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인(萬人)의 개념이 늘 궁금했다. 만인은 모든 사람을 의미할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전통적 해석은 국가안보 논리다. 국가를 제도가 아니라 실체로 인식하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국가를 의인화하는 것이다. 주권은 ‘혼’, 관리는 ‘관절’, 화폐는 ‘혈액’, 범죄는 ‘발작’이다. 이렇게 의인화된 국가의 모임이 국제 사회이고 이곳은 무정부 상태다. 자연 상태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만인은 생존을 위해 만인에 대항해서 싸우고 살아남아야 한다. 힘의 공백이 생기면 전쟁이 불가피하다. 이것이 기존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출발이다. 이 논리는 국가, 무정부 상태, 인간 본성 등 전제 자체가 ‘가상현실’이어서, 페미니즘을 비롯한 대안적 국제관계학파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토머스 홉스(1588~1679)의 <리바이어던>(1651)은 인간 해방에 국가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매뉴얼’ 수준의 규범과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홉스는 중세가 저물고 원자화된 개인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대에 살았으며, 정신도 미세한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물론자였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믿었다. “자연은 인간을 신체와 정신 능력에 있어서 평등하게 창조했다.”(229쪽) 그의 관심사는 자연 상태가 어떻게 가부장제 사회가 되었는가였다. 가부장제가 자연(스런) 상태라는 통념과 반대로 사유한 것이다. 홉스가 분석한 원인은 “이기적인 남성들의 집단적 동의에 의한 시민법의 일종인 결혼법” 때문이다. 자연 상태가 국가의 탄생과 시민사회로 넘어오면서 결혼 제도를 통해 여성은 ‘개인’이었다가 ‘개인의 여자’로 강등되었다. 성차는 당위가 아니라 인위적 제도라는 것이다. 그는 남성 중심주의를 당연시하지 않고 의문과 분석 대상으로 삼은 드문 사상가였다. 내 의문은 풀렸다.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인간이 인간이었지만, 이후 인간의 범위는 ‘보호자’ 백인 남성으로 축소되었다. 홉스에게 결혼은 여성을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시킨 결정적 사건이었으므로 개인 간 범죄의 경중을 비교할 때(11장), “기혼녀의 정조 유린(violation of chastity by force)은 미혼녀의 그것보다 더 큰 범죄다.”(354쪽) 현대 사회의 인식과는 반대다. 성폭력은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자의 전력(sexual history)이 가해자의 그것보다 범죄 구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문제화가 되는 것이다. 피해자가 중산층 미혼 여성일 때와 성산업 종사 여성일 경우 시선 자체가 다르다. 미혼 여성과 미성년자의 피해를 기혼 여성보다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경향은, 여성의 가치가 섹스 경험 여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홉스는 기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더 큰 범죄라고 보았다. 책에 상술하지는 않았으나 기혼 여성을 존중해서라기보다는 “동일한 범행에 대해 느끼는 감성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라는 구절로 보아, 소유권을 침해당한 기혼 남성의 불쾌감을 고려한 듯하다. 홉스나 현대 남성이나 여성의 존재를 성(sexuality)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없지만 그 이유는 달랐던 것이다. 사족 1. 대영제국의 지식인 홉스에게 “식민지는 국가의 번식으로서 국가가 출산한 자녀다.”(8장, 317쪽) 그럼, 우리는 일본의 자녀였다가 미국이 출산한 나라인가? 틀린 말도 아니다. 인조인간 로봇은 서양 고전을 맨 정신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사족 2. 옮긴이의 말에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수가 번역한 책에 흔히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이마저도 표기하지 않는 번역자도 많다) “끝으로 정진오(鄭鎭午) 선생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음을 감사….” ‘절대적 도움’의 범위는 독자의 상상이다. 번역을 도운 이의 수고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적는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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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출판사, 1990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all against all) <리바이어던>이 출처지만 생각만큼 책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책 제목을 모르는 사람도 이 말은 자주 쓴다. 동시에 역사상 가장 독점적으로 오독된 글귀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인(萬人)의 개념이 늘 궁금했다. 만인은 모든 사람을 의미할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전통적 해석은 국가안보 논리다. 국가를 제도가 아니라 실체로 인식하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국가를 의인화하는 것이다. 주권은 ‘혼’, 관리는 ‘관절’, 화폐는 ‘혈액’, 범죄는 ‘발작’이다. 이렇게 의인화된 국가의 모임이 국제 사회이고 이곳은 무정부 상태다. 자연 상태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만인은 생존을 위해 만인에 대항해서 싸우고 살아남아야 한다. 힘의 공백이 생기면 전쟁이 불가피하다. 이것이 기존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출발이다. 이 논리는 국가, 무정부 상태, 인간 본성 등 전제 자체가 ‘가상현실’이어서, 페미니즘을 비롯한 대안적 국제관계학파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토머스 홉스(1588~1679)의 <리바이어던>(1651)은 인간 해방에 국가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매뉴얼’ 수준의 규범과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홉스는 중세가 저물고 원자화된 개인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대에 살았으며, 정신도 미세한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물론자였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믿었다. “자연은 인간을 신체와 정신 능력에 있어서 평등하게 창조했다.”(229쪽) 그의 관심사는 자연 상태가 어떻게 가부장제 사회가 되었는가였다. 가부장제가 자연(스런) 상태라는 통념과 반대로 사유한 것이다. 홉스가 분석한 원인은 “이기적인 남성들의 집단적 동의에 의한 시민법의 일종인 결혼법” 때문이다. 자연 상태가 국가의 탄생과 시민사회로 넘어오면서 결혼 제도를 통해 여성은 ‘개인’이었다가 ‘개인의 여자’로 강등되었다. 성차는 당위가 아니라 인위적 제도라는 것이다. 그는 남성 중심주의를 당연시하지 않고 의문과 분석 대상으로 삼은 드문 사상가였다. 내 의문은 풀렸다.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인간이 인간이었지만, 이후 인간의 범위는 ‘보호자’ 백인 남성으로 축소되었다. 홉스에게 결혼은 여성을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시킨 결정적 사건이었으므로 개인 간 범죄의 경중을 비교할 때(11장), “기혼녀의 정조 유린(violation of chastity by force)은 미혼녀의 그것보다 더 큰 범죄다.”(354쪽) 현대 사회의 인식과는 반대다. 성폭력은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자의 전력(sexual history)이 가해자의 그것보다 범죄 구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문제화가 되는 것이다. 피해자가 중산층 미혼 여성일 때와 성산업 종사 여성일 경우 시선 자체가 다르다. 미혼 여성과 미성년자의 피해를 기혼 여성보다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경향은, 여성의 가치가 섹스 경험 여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홉스는 기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더 큰 범죄라고 보았다. 책에 상술하지는 않았으나 기혼 여성을 존중해서라기보다는 “동일한 범행에 대해 느끼는 감성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라는 구절로 보아, 소유권을 침해당한 기혼 남성의 불쾌감을 고려한 듯하다. 홉스나 현대 남성이나 여성의 존재를 성(sexuality)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없지만 그 이유는 달랐던 것이다. 사족 1. 대영제국의 지식인 홉스에게 “식민지는 국가의 번식으로서 국가가 출산한 자녀다.”(8장, 317쪽) 그럼, 우리는 일본의 자녀였다가 미국이 출산한 나라인가? 틀린 말도 아니다. 인조인간 로봇은 서양 고전을 맨 정신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사족 2. 옮긴이의 말에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수가 번역한 책에 흔히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이마저도 표기하지 않는 번역자도 많다) “끝으로 정진오(鄭鎭午) 선생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음을 감사….” ‘절대적 도움’의 범위는 독자의 상상이다. 번역을 도운 이의 수고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적는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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