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전남 고흥만 앞바다에서 열린 서울고법 민사8부(재판장 홍기태)의 현장검증에서 고흥군 관계자(왼쪽 두번째)가 재판부에게 인근지역 어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고법, 고흥만 방조제 현장검증
재판부 “어민피해 어느 정도” 묻자
어민들 “담수유출로 어패류 감소”
정부쪽은 “이미 보상했잖나” 반박
재판부 “어민피해 어느 정도” 묻자
어민들 “담수유출로 어패류 감소”
정부쪽은 “이미 보상했잖나” 반박
부슬비가 내리고 초겨울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 26일 오전, 전남 고흥만을 동서로 가로막는 2870m짜리 고흥만방조제 앞에 어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서울에서 온 판사들이 진행할 현장검증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어민들은 방조제가 담수를 유출하면서 생긴 어획량 감소 등의 피해를 국가와 고흥군이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항소심 재판부가 직접 현장검증을 하러 온 것이다. 어민들은 1심 재판에서 인정된 손해배상 금액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로 얘기를 나누며 판사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심리를 맡은 서울고법 민사8부(재판장 홍기태) 재판부와 원고인 어민들, 피고인 고흥군·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들, 양쪽의 소송 대리인 등은 고흥군의 행정선인 ‘전남203호’에 몸을 실었다. 20여명을 실은 배는 1시간30분 남짓 피해를 입은 어장과 고흥만방조제 인근 지역을 둘러보며 고흥군과 국가의 환경오염 피해방지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봤다.
배 위를 비롯해 이들이 가는 곳마다 양쪽의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재판부의 질문이 나오고 시선이 옮겨질 때마다 어민들은 한마디씩 거들며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장의 피해가 어느 정도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한 어민은 “2004년부터 인공종패(씨조개)를 1년에 수억마리씩 뿌려봤지만 일정 정도 크다가 다 죽어부러요. 1년에 몇백억원어치씩 나오던 게 이제 몇억원어치도 안 된다니께요. 속상해 죽겄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농림부 관계자는 “바다의 염분 농도를 측정해 이미 제한보상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고, 원고 쪽 변호인은 “그 보상은 제방이 설치되기 전에 조사한 제한보상에 불과하다”고 맞받았다.
현장검증은 고흥군과 국가의 신청으로 이뤄졌다. 지난 7월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노만경)는 “1995년부터 방조제의 배수갑문을 통해 담수가 배출돼 해양환경과 수중생태계에 큰 영향을 초래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와 고흥군이 72억여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에 피고 쪽은 “담수는 배출된 지 30분 만에 희석돼 원고들의 어장까지 도달할 수 없고, 담수호의 오염을 막기 위해 인공습지를 조성하고 하수종말처리장을 설치했다. 소송을 낸 어민들이 방조제 건설사업 이후 어업권을 허가받았거나 갱신했기 때문에 국가와 고흥군이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며 항소했다.
어민들의 하소연은 오후 3시부터 광주지법 순천지원 고흥군법원 1호법정에서 열린 재판까지 이어졌다. 원고 쪽은 고흥만 일대에서 34년 동안 해녀로 일했던 양선희(66)씨를 증인으로 세웠다. 양씨는 “1990년대까지는 제주도에서도 해녀가 찾아와 해삼·전복 등을 캤는데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어획량이 감소했다. 2005년께부터는 바닷속에 해초가 사라지고 바위가 흰 곰팡이가 핀 것처럼 변해 어패류가 자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고 중의 한명인 정용규 남암어촌계장은 “1970~90년대에는 어패류를 양식해 한해 500억원씩 일본에 수출까지 했지만 2005년부터 바다가 죽어버려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은 법원 역사상 최초로 재판부가 현장지역 인근의 법원을 직접 찾아가 진행됐다. 덕분에 한달에 한번꼴로 재판이 열리는 고흥군법원은 지역 어민 150여명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방청석이 18석에 불과해 많은 어민들은 재판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는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심리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이 좁아 방청객들이 많이 방청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글·사진 고흥/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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