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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대, 교과서를 불태운 뒤 잘 놀고 있는가

등록 2012-11-30 20:50수정 2012-12-01 11:28

수능을 마친 고3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지난 26일 하자캠프가 연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학생들이 협력을 다짐하는 의지를 담아 손을 모으고 있다. 하자센터 제공
수능을 마친 고3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지난 26일 하자캠프가 연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학생들이 협력을 다짐하는 의지를 담아 손을 모으고 있다. 하자센터 제공
[토요판] 르포
수능 끝난 고3 교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발표된 지난 27일, 문득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미 결과는 나왔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일만 남았습니다. 수능이 끝난 지금, 고3 여러분은 어떤 겨울을 보내고 계신가요?

‘학교에 있어야 할 고등학생들이 평일 한낮에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어요.’

어딘가 낯선 풍경이 서울 대학로 틴틴홀 앞에서 벌어졌다. 지난 20일, 오전 10시30분이 가까워 오자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틴틴홀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경기도 ㄱ고 3학년 학생들이었다. 수능시험을 끝낸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가 이날 연극 <옥탑방 고양이>를 단체관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제각각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삼삼오오 극장으로 모여 연극을 관람했다. 비용은 학교와 학생이 절반씩 부담했다. 연극이 끝나자 학생들은 올 때처럼 또다시 삼삼오오 뿔뿔이 흩어졌다. 이날 ‘수업’은 이것으로 끝이다.

최고의 엄벌은 ‘집에 늦게 보내주기’

2012년 11월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고3 교실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 7시에서 밤 10시까지 계속되던 수업시간은 사라졌고, 두발·복장 단속 등 엄격했던 생활지도의 고삐도 느슨해졌다. 수능 이후 각 시·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고3 학생들의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지도·감독을 강화하라고 지시하고 있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학생들마다 준비하는 대학의 입학 전형과 일정이 다르다 보니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 ㄱ고처럼 일선 학교들이 고3 학생들을 위한 특별강연이나 현장체험학습, 문화활동 등의 계획을 세워놓았지만, 자율학습 등으로 그저 수업시간을 때우며 수능 이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서울의 한 고3 교사는 “수능이 끝난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비디오를 보거나 방치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12월 말까지의 40~50일, 전국의 고3 교실은 흡사 제대를 기다리는 말년 병장들의 집합소나 다름없다. 경북 김천시의 ㄴ고 3학년 학생들도 이런 분위기 속에 전에 없는 ‘태평성대’를 보내고 있다. 수능 이후 등교시간은 오전 7시50분에서 9시로 늦춰졌고, 밤 10시까지 계속되던 야간자율학습도 하지 않고 있다. 4교시 수업이 끝난 오후 1시15분이면 하교다. 그나마도 오전 9시 등교시간이 지나도 30명 정원인 한 반의 자리는 3분의 1가량 비어 있을 때가 많다. 결석생은 거의 없지만 지각생이 부쩍 늘었다. 9시30분쯤이나 돼야 한 반의 머릿수가 온전히 찬다. 수업 시작종이 울린 뒤 교실에 들어선 선생님들도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시험 끝났다고 풀어지지 말고 일찍일찍 다녀라. 자기 짝 아직 안 나온 사람들은 전화 한번씩 걸어보고.” 그뿐이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정재협(ㄴ고)군처럼 출석 체크만 하고 학원에 가서 실기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경남 김해시 ㄷ고에선 최근 한 반에 5~6명이 결석 또는 수업 중간 이탈을 하는 일이 벌어지자 한 선생님이 “수능 끝났다고 학교에 안 오는 학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퇴학을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은 일까지 있었다.

휴대폰 사용이나 두발·복장 규제도 비교적 느슨해졌다. 대놓고 사복 패션을 자랑하는 아이는 적지만, 교복 대신 비교적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학교에 오는 학생들도 한 반에 네댓명은 된단다. 시험 끝난 뒤 머리를 파마하거나 염색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졸업을 눈앞에 둔 만큼 선생님들도 웬만하면 “학생의 본분은 지켜라”는 말 정도로 넘어가곤 한다. 김해 ㄷ고에선 얼마 전 수능 이후 해이해진 분위기를 다잡는다며 선생님들이 생활지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한 학생은 “선생님들이 교문에서 사라질 때까지 학교 주위를 배회하다가 복장 단속이 끝난 뒤 슬쩍 학교로 들어오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해가면 된다”고 말했다. ㄱ고에서도 얼마 전 일탈행동을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복장 불량, 휴대폰 미제출자, 지각생 등에게 ‘엄벌’을 내렸다. 벌이라고 해봤자, 7교시까지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는 게 전부다. ‘벌자습’ 시간에도 학생들은 삼삼오오 수다를 떨거나 스마트폰 등으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때운다.

학생들이 책을 버리고 있는 오른쪽 사진은 ‘수능 뒤 흔한 풍경’이란 제목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것. 하자센터 제공
학생들이 책을 버리고 있는 오른쪽 사진은 ‘수능 뒤 흔한 풍경’이란 제목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것. 하자센터 제공
대입 전형 준비하는 ‘수험생형’
스펙 쌓는 ‘자기계발형’
그러나 대다수는 ‘놀고보자형’

교과서는 이미 내다버렸다
오전 9시~오후 1시 단축수업도
무늬만 자율학습으로 보내
특강·특별과목·문화활동 등
학교선 수업 정상화 안간힘 써도
학생은 겨울방학만 기다린다

밖에서 대기중인 운전면허학원 승합차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업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화를 틀어주거나 자율학습을 하라며 선생님들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생님이 교실을 떠나고 나면 종례시간까지 학생들은 말 그대로 ‘자유’다. 하기야 수업을 하려야 할 수도 없다. 수능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이 교과서며 참고서 등을 내다버린 경우가 많아서다. 홍다혜(경기 용인 ㄹ고)양은 “분리수거 하는 날, 친구들과 학교 건물 2층에서 교과서를 내던지며 수능시험을 보느라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말했다. 한 학교에선 일부 학생들이 하굣길 한 아파트 단지에서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혀왔던 교과서를 처단하는 ‘화형식’을 하기도 했다.

수능이 끝난 뒤 교실에 있는 고3 학생들의 유형은 대체로 세가지다. 시험이 끝난 기쁨을 만끽하며 별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놀고보자형’과 운전면허시험이나 토익·토플 시험 공부를 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자기계발형’, 대학면접 등 전형 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은 ‘수험생형’ 등이다. 이 중 첫번째 유형이 가장 많다. 놀고보자형의 학생들은 학교에 나와 온종일 수다를 떨거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으로 드라마나 예능 프로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박성호(ㄴ고)군도 그런 학생 중 하나다. 박군은 스마트폰으로 내려받은 액션영화를 보면서 얘기했다. “할 일도 없는데 그냥 빨리 집에 보내줬으면 좋겠다.” 이용기(ㄱ고)군에게 요즘 학교는 잠자는 곳이다. 수능시험이 끝난 뒤로 용돈을 벌기 위해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이다. 이군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밤늦게까지 집에서 게임을 하다가 학교에 와선 자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학생 대부분은 수업이 끝날 시간만을 기다릴 뿐이다. 수업이 끝난 뒤 교문을 나서면 곧장 운전면허학원으로 학생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대기중인 승합차들과 맞닥뜨리게 되곤 한다.

학교에선 특별수업을 편성하거나 특강, 현장학습, 봉사활동 등을 통해 수업을 정상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ㄱ고의 경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독서·토익·한문·한국사 등 4개의 반을 편성해 한 과목씩 수업을 듣게 하고 있다. 또 토익·한문·한국사 과목에 대해서는 수업 이후 관련 시험에 응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학교의 방침에 학생들의 만족도는 썩 높지 않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학생은 “학교의 취지는 알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시험까지 보게 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현장학습 등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ㄷ고의 한 학생은 “얼마 전 산·강 정화활동을 나갔는데 말이 정화활동이지 청소하는 애들은 몇 명 되지도 않았고, 선생님들조차 대충 시간 때우다가 집에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현장학습 하러 가는 교통비 등도 스스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공혜빈·최성민·최주희 <아하! 한겨레>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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