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남북 상속 특례법’ 적용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윤아무개(77·여)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2남4녀 가운데 큰딸인 윤씨만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윤씨의 아버지는 재혼해 2남2녀를 뒀고, 부동산 등 재산을 꽤 남겨둔 채 1997년에 숨졌다. 2008년 상속재산의 등기를 내는 과정에서 윤씨와 이복형제들 사이에서는 재산 다툼이 일어났다.
윤씨는 미국인 선교사를 통해 북한에 형제 4명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10년 북한에 있는 형제 4명이 윤씨 아버지의 친생자임을 확인하는 법원 판결도 받았다. 윤씨는 이들을 대신해 상속재산 분할 소송을 냈고, 이들이 이복형제들로부터 부동산 소유권과 현금 32억5000만원을 받기로 하는 조정을 이끌어냈다.
윤씨는 현금 가운데 6억9000만원을 소송비용으로 쓰고, 자신의 부동산을 북한 형제들한테 25억원에 파는 형식으로 매매계약을 한 뒤 23억원을 받았다. 또 북한 형제들이 직접 부동산을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이 빌려 점유하되, 임차료는 부동산을 유지·관리하는 보수로 대신한다는 계약서를 썼다.
지난 5월 북한 주민이 상속을 통해 남한 내 재산을 취득할 경우 법원에 재산관리인 선임을 청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자, 윤씨는 자신이 북한 형제들의 재산관리인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재산관리인을 윤씨와 관계 없는 김아무개 변호사로 선임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1단독 박희근 판사는 “북한에 있는 형제들이 취득한 상당한 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 재산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는 윤씨가 아닌, 중립적인 지위에 있는 변호사를 재산관리인으로 선임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30일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윤씨가 법 시행 직전에 상속재산을 분산시켜 쓰거나 숨긴 것으로 의심할 만한 행위를 한 뒤, 자신을 재산관리인으로 선임해달라고 청구했기 때문에 중립적인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라며 “법 시행 이후 재산관리인을 선임한 첫 사례인데, 이 사건이 법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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