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누명 10년형 김종태씨 무죄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청춘과 소중한 꿈을 잃어버렸던 30여년 전 한 재일동포 청년의 희생에 대해 조국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뒤 이른바 ‘재일동포 간첩 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김종태(62)씨의 재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당시 사법부의 과오를 반성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불과 17살이던 1967년 반국가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간부가 됐다는 누명을 쓰고 1975년부터 5년10개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최동렬)는 7일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때의 참상과 이를 방조한 당시 우리 사회의 과오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 참상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를 방치했고 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폭력에 순응했는지 고민하게 된다. 아무리 고쳐읽고 생각해 봐도, 당시 전체주의나 독재 정부하의 지식인과 언론, 사법부, 나아가 보통사람들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 생각이 모자란다거나 더 폭력적이었다거나 이기적이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비극의 근본적 원인이자 출발점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자리잡은 어둠, 즉 광기와 잔인성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 데에 있지 않나 여겨진다”고 말한 뒤 “개인적으로 외면하고 멀리하는 것만으로는 집단 무의식에 자리잡은 인류 전체의 비극의 원인을 결코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모두에 대한 경고이자 교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사법부의 관점에서 보면, 광기와 잔인성이 국가적 위기, 민족의 생존과 발전, 이념에 편승해 출현할 때, 국민들 절대다수의 뜻이자 시대적 소명이라는 얼굴을 지니고 있을 때, 사법부 구성원은 우리 안의 작은 목소리를 보호하고 키워내고 외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인해 김씨가 받았을 고통과 정신적 피해, 특히 법원에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하는 최후진술서를 제출했음에도 중형이 선고됐을 때 받았을 절망감을 생각해보면, 늦었지만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진실을 밝히고 공적인 사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는 “그 시대 어느 누구의 공명도 얻지 못했던 그 작은 목소리”라며 “김씨가 절망한 상태에서 누군가는 들어주리라는 마지막 희망을 담아 36년 전 서울구치소에서 작성한” 82쪽짜리 최후진술서를 인용하며 판결문을 마쳤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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