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으로 실형을 살았던 강기훈(48)씨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첫 재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년만에 법정서 목메인 호소
1991년 명지대 학생 강경대씨 사망 사건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기설(당시 25)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48)씨가 20년 만인 20일 오후 열린 첫 재심 재판에 출석했다. 재심 재판은 2009년 서울고법이 재심 개시 결정을 한 지 3년,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검찰의 즉시항고가 대법원에서 기각된 지 두달 만에 시작됐다.
최근 간암 수술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은 강씨는 수척한 얼굴에 검은색 양복을 입고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권기훈)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과 변호인이 항소 이유를 밝힌 뒤 강씨는 미리 준비해 온 글을 읽으며 재심 재판을 맞는 심정을 밝혔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분노 속에 감옥에서 보낸 3년과 그후 지금까지 내가 일관되게 말했던 것은 단 한가지,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한 뒤, “20년 전 검찰의 공소장은 참으로 한심스럽고, 법원의 판결문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 거대한 거짓과 모략, 허구, 비상식에 바탕을 둔 괴물처럼 보인다. 검찰과 법원은 실체적 사실의 규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범인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목이 메인 목소리로 “공권력의 외피를 쓰고 많은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 잠들 수가 없었다. 재심 기회를 열어준 법원에 지금 고마워 해야 하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불신이 매우 깊다. 이 재판은 나에게 매우 큰 의미이니 부디 과거 시대의 어두웠던 기억을 접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을 마쳤다.
이날 법정에서 검찰은 “지난 10월 대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이 형사소송법 420조 2호(원 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 등이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에 의한 것이므로 재심의 심리 역시 1991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인의 위증이 강씨의 유죄를 뒤집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심리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들은 대법원이 강씨의 유서대필 사실 자체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심리 역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씨의 변호인은 “대법원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규명위원회의 필적 감정 결과가 새롭게 나온 증거라는 점을 인정했으니 재판에서 충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김씨의 필적을 확인할 수 있는 공책 등 1991년 검찰 수사 당시 압수한 자료를 법정에서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내년 1월31일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증거 및 증인을 채택할 예정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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