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역3년·집유5년
총수비리 ‘법대로 선고’ 재확인
총수비리 ‘법대로 선고’ 재확인
법원이 31일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려 쓴 혐의로 최태원(53) 에스케이(SK)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함으로써 재벌 총수의 경제범죄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법원은 그동안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구실로 재벌 총수들에게 관행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해왔지만, 지난해 2월 이호진(51) 태광그룹 회장, 지난해 8월 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 등을 법정구속하면서 기류가 확연히 달라진 터다.
이날 선고를 한 서울중앙지법 이원범(48·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는 “대기업이 잘못했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더 많은 형량을 부과할 수 없듯이, 피고인을 처벌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피고인의 형량을 줄여도 안 된다”고 못박았다. 대기업 회장이라는 사실을 불리하게도 유리하게도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부장판사는 또 “양형 기준의 권고형량 범위인 징역 4~7년 중 최하한 형인 징역 4년을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정구속을 한 이유에 대해선 “대법원 재판예규에 따르면 실형을 선고할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구속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외를 인정할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과거 법원은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 총수들에 대해 관행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하고 풀어줬다. 형법상 집행유예가 징역 3년 이하의 형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재판부가 재량으로 형량을 깎아 3년 이하로 맞춘 뒤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것이다.
이런 관행에 따라 이건희(71) 삼성그룹 회장이 2009년 8월 배임 및 조세 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정몽구(75) 현대차그룹 회장도 2008년 6월 횡령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아 실형을 면했다. 최태원 회장도 2008년 5월 1조5000억원대의 에스케이글로벌 분식회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가 석달 만에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바 있다.
재벌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09년 7월 “중대 범죄와 화이트칼라 범죄의 적정한 양형에 대한 국민적 요청을 반영하겠다”며 횡령·배임죄의 경우 액수에 따라 기본 형량을 정하고 액수가 50억원 이상이면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한 4년형 이상을 선고하도록 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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