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사는 오빠네 집 근처 공원에서 자세를 잡은 나의 동지, 나의 동생 현주.
[토요판] 가족관계 증명서
나의 동지, 나의 동생 현주에게
너와 네 외동딸 찬민이에게 마음속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벌써 6년 반이 지났구나. 늦은 결혼으로 얻은 나의 딸 민이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너희 모녀와 함께했던 시간이 눈에 선하다. 민이의 마지막 시간은 사촌 언니인 찬민이와 즐겁게 놀았던 기억으로 행복했고, 네가 병상을 찾을 때마다 늘 손에 들고 오던 작고 귀여운 장난감들을 민이는 반갑게 눈으로 더듬곤 했지.
민이를 보낸 후 내가 방에서 혼자 민이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너는 그림자처럼 곁으로 와 함께 눈물 흘려주었어. 지금까지 줄곧 보이지 않게 네가 해주었던 모든 일들이 이제 하나하나 선명하게 새겨진다. 주변의 지인들이 주었던 도움에는 감사하면서도 지금껏 너에겐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구나. 가족이라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걸까? 되짚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 만일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따뜻한 옷을 빌려준 사람이 있다면 고마움을 표하겠지. 하지만 누군가 거대한 이불로 하늘을 가려준다면? 그냥 눈이 그쳤구나 생각할 거야. 네가 했던 일들이 그랬어.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필사적으로 찾아서 온몸으로 촘촘하게, 빈틈없이 막아주고 있었던 거야. 찬민이의 위로에도 난 놀라고 말았지.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고 자꾸 안아달라고 하면서 ‘민이가 애교를 부리라고 시켰어’라고 말하곤 했거든. 그 당시 여덟살밖에 안 됐지만 찬민이는 마치 내 속마음을 다 읽기라도 한 것처럼 늘 그런 식이었지.
내가 입양을 하겠다고 했을 때 너희 부부와 찬민이의 전폭적인 지지가 얼마나 큰 희망이 되었는지 몰라. 입양 상담을 위해 찾아간 보육원 마당에서 찬민이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어. ‘이모,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생명이야.’ 찬민이의 이런 보석 같은 말들을 그때 글로 다 적어두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나는 배로 낳은 딸과, 입양으로 내게 온 아들을 통해 예전엔 알지 못했던 거대한 세상을 만났어. 내가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관련하여 글쓰기를 구상한다고 했을 때, 네가 먼저 팔 걷고 나서서 너의 생각을 글로 써주었지. 명석하고 균형 잡힌 너의 사고가 나를 이끌어 주고 있구나. 나의 동생이자 동지인 정현주! 넌 이미 큰사람이야. 이젠 좀 자신감 가져도 된다는 말 꼭 전하고 싶다.
언니 은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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