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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반체제 낙인 ‘이영빈·김순환 부부’ 17년만에 귀국

등록 2005-08-15 21:56수정 2005-08-15 23:34

서울서 첫 아침 “저게 남산인가요” 이영빈 · 김순환 부부
서울서 첫 아침 “저게 남산인가요” 이영빈 · 김순환 부부
서울서 첫 아침 “저게 남산인가요”
커튼을 걷자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남산타워의 날렵한 첨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게 남산인가요?” 여든을 바라보는 노 부부는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갔다. 남산 자락의 맑은 공기는 반세기 동안 외국생활을 했던 이들의 무뎌진 감각을 하룻밤 새 조금씩 깨우고 있었다.

13일 오전 남산이 바라보이는 서울의 한 호텔. 이영빈(79) 목사와 부인 김순환(77)씨는 17년 만에 서울의 아침을 맞았다. 독일로 건너가 박정희 정권과 그 뒤로 지겹도록 이어진 군사독재에 맞서 반유신·반독재·통일운동에 앞장섰던 부부는 광복 60돌을 맞아 14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 참가를 위해 12일 한국에 발을 디뎠다.

이들 부부가 반독재 운동에 뛰어든 것은 1960년 멀리 조국에서 4·19 혁명의 벅찬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부터다. 독일 국영방송에 출연해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을 소개했던 이 목사는 이때부터 부인과 함께 꽉 막힌 조국의 민주주의를 향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목사 부부는 74년 3·1운동 55돌을 맞아 뜻있는 한국인 유학생, 광원, 간호사 등과 함께 ‘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를 만들어 본격적인 반독재 운동에 나섰다. 이 목사와 당시 유학생이었던 송두율 교수, 작곡가 윤이상 등이 번갈아 가며 민건 회장을 맡았다.

반독재 운동은 80년 5월의 ‘핏빛 광주’를 통해 통일운동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분단은 독재정권과 미국에게는 언제나 기회였던 것이죠. 민주주의는 결국 분단 상황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통일의 상대인 북한을 제쳐두고 무슨 통일을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부부는 80년 ‘조국통일 해외기독자회’를 만든 뒤 이듬해 북한을 찾았다. 그 뒤 이들 부부는 ‘친북인사’로 분류돼, 결국 한국으로 가는 길이 끊기고 만다.

이 목사 부부는 88년 ‘반짝 유화 국면’을 맞아 며칠 동안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고 문익환 목사의 초청으로 ‘통일신학회’ 참석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는 서슬 퍼렇던 5공화국이 저물고 전두환 정권에 대한 청문회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91년과 94년 수차례 한국을 찾은 부부는 ‘한국이 원하지 않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김포공항 입국심사장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목사 부부는 여전히 ‘방문객’이었다. 사실상 50년 만의 귀국이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가 아량을 베푸는 입국은 거절합니다. ‘원치 않는 외국인’이라는 딱지도 싫습니다. 6·15 공동선언이 가지는 시대정신을 거슬러서야 되겠습니까?”


 “남과 북이 함께 벌이는 큰 잔치가 시작됐어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는 홀가분한 느낌으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잔치를 계속 이어가야죠.” 노 부부는 공식 행사가 끝나면 부음을 듣고도 찾지 못한 부모의 뫼를 찾은 뒤 반세기 넘게 함께 잡아온 손을 다도해 시린 물에 적시려 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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