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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미혼 여성들에게 접근 재벌이라 속여 금품 뜯어

등록 2013-02-21 18:40

저는 말기암 걸려 진정한 사랑을 해보고 싶은 재벌 2세에요.
“나는 대기업 재벌 2세이고 서울 서초구에 있는 빌딩 건물주인 29살 남성이다. 지금 췌장암 말기여서 6개월밖에 더 살지 못한다. 강남에서는 내 돈을 보고 접근하는 여자들뿐이었는데, 죽기 전에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

지난해 3월 스마트폰 채팅 어플리케이션으로 학습지 방문교사인 ㄱ(39·여)씨에게 이런 내용의 쪽지가 날아왔다. 답장을 보내자 쪽지를 보냈던 남성은 ㄱ씨를 채팅방으로 끌여들였다. 그 남성은 ㄱ씨에게 “내일이 생일인데 시한부 인생인 내 처지가 처량하다. 죽기 전까지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나중에 서울 강남에 있는 수십억원대 건물과 함께 10억원의 돈을 주겠다”며 만남을 제안했다.

곧 둘의 만남이 이뤄졌다. ㄱ씨 앞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ㅎ(30)씨가 비싼 외제차를 타고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끼고 있는 손목시계가 1000만원짜리 명품시계라고 자랑한 뒤, 대기업 총수라고 하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얼핏 보인 ㅎ씨의 지갑에는 현금과 수표 수천만원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곧 ㅎ씨는 500만원짜리 귀금속을 선물로 요구하고 ‘술값과 카드비가 필요하다’며 돈을 빌려가기 시작했다. 많게는 한 번에 2000만원도 받아갔다.

ㄱ씨가 불안해하자 그는 “곧 10억원을 주겠다. 너에게 건물을 사줄 돈 60억원을 마련했다”며 5만원권 지폐가 가득 담긴 박스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했다. 서울로 불러 자신의 건물이라며 강남에 있는 건물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ㄱ씨가 돈이 더 없다고 하자 “곧 100억원이 손에 들어오니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하라”며 카드론 대출 방법까지 알려줬다. 결국 ㄱ씨는 연 39%의 고금리로 돈을 빌렸다. 그렇게 9개월 가까이 ㄱ씨가 ㅎ씨에게 건넨 돈은 무려 2억2000만원이나 됐다.

하지만 서서히 드러난 ㅎ씨의 정체는 그가 말한 것과 정반대였다. 재벌 2세가 아니라 자동차 정비업을 하고 있었고, 명품 손목시계는 가짜였다. 외제차는 빌려온 거였고, 재력가 행세를 하며 여성들에게 돈을 뜯다가 덜미가 잡혀 전과가 7건이나 있었다.

대구지검 형사2부(부장 이흥락)는 21일 젊은 미혼 여성들에게 접근해 자신을 재벌이라고 속이고 금품을 뜯은 혐의(사기 등)로 ㅎ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 수사 결과, ㅎ씨는 지난 1년 동안 모두 17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자신을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재벌 2세’ 등으로 속여 모두 4억여원을 받아 챙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ㅎ씨는 일부 여성을 상대로 스마트폰을 여러 대 개통하도록 한 뒤 대포폰으로 팔아넘기기도 했고, 거짓말을 알아채 돈을 주지 않는 여성에게는 자신이 조폭이라며 협박까지 일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기동 대구지검 2차장검사는 “재력을 과시하거나 말기암 환자라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등 20·30대 결혼적령기 미혼 여성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현대판 카사노바’를 방불케 하는 사기 행각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ㅎ씨의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에 채팅 친구로 젊은 여성 40여명이 더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른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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