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 밥값은 김밥 한줄 수준인 1500원
복지부 비판 많자 식비 구분 항목 없애
복지부 비판 많자 식비 구분 항목 없애
“학교에서 아이가 가지고온 안내장을 보니, 내야 할 급식비가 한끼당 3500원인데 정부에서 나오는 밥값은 1500원밖에 안돼요. 지난해보다 100원 올랐다는 게 학교 급식비의 절반도 안 되지요.”
서울지역의 한 성폭력피해자 쉼터 소장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 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3명이다. 정부에서 아이들에게 수업료·등록금·교과서 대금과 학용품비가 따로 나오지만 교통비·수학여행비·식대·피복 값 등은 아이들 1인당 한달에 16만원 정도 나오는 생계급여 안에서 모두 해결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확대를 주장하지만,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나 장애인 등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주는 현금지원이 턱없이 낮은 데다, 일괄적용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시설들은 이런 형편을 널리 알리고 급여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탐색중이다.
올해 기준 아동·노인·장애인 등 사회복지시설에 거주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들의 생계급여는 시설 규모에 따라 1인당 월 15만3861원에서 16만3147원으로 모두가 똑같이 시설의 통장으로 입금된다. 그나마 지난해에 최저생계비를 3.4% 인상했지만, 하루 생활비가 1인당 5300~5400원밖에 되지 않는다.
한끼 밥값은 고작 1500원으로 김밥 한줄 수준이고, 세끼 밥값을 빼면 하루 생활비가 800원이 남아 서울시내 청소년 버스요금 1000원에도 못 미친다. 시설에서 사는 사람들이 받는 돈은 일반 수급자의 44%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시설이 전기료와 거주공간을 부담하기 때문에 집에서 사는 일반 수급자보다 적은 돈을 주는 것이다. 올해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57만2168원, 집에서 사는 일반 수급자 생계급여액은 1인가구 기준 37만7817원이다.
2012년 8월말 현재 시설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생계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총 8만9583명이고 이 가운데 노인시설 거주자는 3만744명, 장애인시설 2만1042명, 아동복지시설(보육원) 1만5354명으로 전체의 75% 가량을 차지한다. 시설 기초수급자 가운데 가정폭력 피해자는 1271명, 성폭력 피해자는 234명이다.
처한 사정이 각자 다른데도, 같은 수준의 급여를 주는 것도 문제다.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사람들의 경우 당장 생계가 막막할 따름이다. 서울지역 한 가정폭력 피해자쉼터 소장은 “폭력을 피해 급하게 아이를 데리고 나온 피해여성이 하루 5000원을 가지고는 분유값과 기저귀값을 도저히 댈 수 없어 무작정 귀가했다가 폭력재발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무상보육이라지만 특별활동비, 차량이용비, 견학비 등 부모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돈(필요경비)을 내지 못해 쉼터에 머무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 소장은 “월 15~16만원의 생계비 중에서 월 10만원 정도 들어가는 필요경비를 내면 5~6만원으로 한달을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한 성폭력 피해자 쉼터의 소장은 “추운 날 외투는 고사하고 티셔츠 하나, 팬티 한장 제대로 사입히기 힘든 형편”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급하게 도망쳐 피신하는 이들 다수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고, 여분의 옷도 없이 맨발로 도망치거나 외투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고 나온 이들지만 한달 의류값은 2만원도 채 안 될 정도로 낮다.
문제는 이들뿐 아니라 장애인, 노인, 보육원 아동 등 모두 시설생계급여 수준이 전반적으로 너무 낮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현장사례집을 내고 “장애인에게 하루 생활비가 직장인 밥값도 안 되는 5000원의 생계비를 주고는 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보육원 아이들의 경우에도 한창 자랄 나이에 밥값 예산이 지나치게 낮다며 기부단체 아름다운재단이 캠페인을 통해 밥값 현실화 모금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설의 생계급여 수준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자, 올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와 달리 시설에 내려보낸 지침에서 생계비의 식비, 의류비 등을 따로 구분해놓은 항목을 아예 없애버렸다. 한 시설장은 “한끼 1500원의 식비가 너무 적다는 비판 탓인지 식비와 피복비 등을 나누어놓았던 ‘비목’을 없애고 긴급히 필요한 곳에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나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식으로 더 이상 다른 항목 역시 줄일 데가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적용해온 생계비의 식비와 피복비 구분은 지침상 나눠놓은 것이다. 현장에서 구분해서 쓰기도 어려워, 총액을 받으면 필요한 데 쓰라고 지침을 현실적으로 바꿨다. 생계비가 시설 거주인들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어 수탁연구 과제를 발주해놓은 상태이며, 그 결과에 따라 제도를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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