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우리는 그의 죄를 사면해주지 않았다

등록 2013-03-22 19:15수정 2013-03-29 14:26

단지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특별사면이 남용되면 사회정의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만다. 1월31일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말 특사로 풀려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몰려드는 기자들을 향해 “다 취재할 수 있게 할 테니 물러서라”고 손짓하며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단지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특별사면이 남용되면 사회정의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만다. 1월31일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말 특사로 풀려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몰려드는 기자들을 향해 “다 취재할 수 있게 할 테니 물러서라”고 손짓하며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6) 대통령 특별사면, 최시중

1·2심, 뇌물수수 유죄 판결
그는 줄곧 억울함을 호소하더니
갑자기 상고를 포기하고 수감
곧이어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리고 감옥을 나온 그날 밤
“나는 무죄야”라고 다시 외쳤다

특별사면은 특별한 경우라야 한다
비록 실정법을 위반했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용산참사 철거민들이 그렇고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 그렇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사면해준다면 그 자체가 범죄다

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법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죄’를 주장한다. 고위 공직자가 건설 인허가 청탁을 받고 8억원을 뇌물로 받은 파렴치한 범죄 혐의다. 유죄판결을 받으면 형량뿐 아니라 ‘더러운 비리 부패 탐관오리’의 낙인이 찍혀 역사에 남게 된다.

이명박의 마지막 선물, 합법적인 탈옥

1심 법정은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2년6개월 징역형을 내린다. 즉각 항소를 제기한 피고인은 거듭 억울함과 무고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항소심 법정도 유죄와 실형을 선고한다. 만약 당신이라면, 마지막 남은 대법원에 ‘상고’할 권리와 기회를 포기하겠는가? 도저히 상식을 가진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피고인이 상고를 포기한 것이다. 뇌물수수 유죄와 2년6개월 형이 확정된 것이다.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반성과 참회를 하고 죄를 인정한 것일까? 그런데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그의 얼굴은 무척 편안하다. 세상을 희롱하는 듯한 미소까지 엿보인다. 곧 그에게는 ‘대통령 특별사면’이라는 생애 최고의 선물이 주어진다. 상고를 제기해 재판이 계속중인 상태에서는 제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특별사면’을 통해 범죄자를 빼내 올 수 없다. 하지만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될 경우엔 사법절차와 정의를 무시하고 대통령의 권력으로 ‘합법적인 탈옥’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실직, 취직 실패, 박봉, 영업 부진, 치솟는 물가와 교육비로 인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 속에 생계를 이어나가도 남의 돈 훔치거나 뺏지 않으며 정직하게 살아온 서민들은 분노했다. 사소한 실수나 잘못, 순간적인 감정을 참지 못해 전과자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이 파렴치범은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는 구치소 문 앞에서 대기하던 취재진에게 “인간적인 성찰과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국민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준비된, 모범적인 멘트를 날린다. 하지만 이어지는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외면하고 ‘아프다’며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응급환자 이송차량에 숨어들어가 내빼듯 병원으로 떠나버렸다.

그날 밤, 병원의 철통같은 보호망을 뚫고 <한국방송>(KBS) 카메라가 이 사람의 병실 잠입에 성공했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나는 무죄야. 나는 무죄야. 나는 돈을 사적으로 받은 바도 없고, 그 사람들이 내 정책 활동을 도와주기 위해서 한 것이야”라며 그날 낮 구치소 앞에서 보인 반성과 참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그의 이름은 최시중.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의 고향 친구, 대학 동기로 대통령의 최측근인 ‘6인회’의 멤버다. 또다른 6인회 멤버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전당대회에서 돈봉투를 뿌린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가 이번에 함께 사면되었다. 그의 부하였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역시 또다른 대통령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과 함께 특별사면 대상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1937년 경상북도 영일 태생인 최시중은 포항과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거쳐 1963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다. 1964년 <동양통신> 기자로 입사한 뒤 이듬해 <동아일보> 기자로 자리를 옮겨 1993년 편집국 부국장에 오를 때까지 30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부국장 이상 오르지 못하고 동아일보사를 퇴사한 최시중은 1994년 여론조사 회사인 ‘한국갤럽 조사연구소’ 회장으로 취임했는데, 동아일보사에 재직하던 1992년,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정치에 기웃거렸으나 입문하지는 못한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조성사업 예정지인 옛 화물터미널 터.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조성사업 예정지인 옛 화물터미널 터.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끊임없는 정치 개입과 방송장악 논란

그러다 여론조사 결과를 손에 쥔 한국갤럽 회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본격적인 정치편향성과 불법을 마다하지 않는 행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통령 선거 기간인 1997년 12월15일, 선거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기간’임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주한 미국대사 보스워스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유출했다가 한국방송 취재에 포착되어 공개되면서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10월7일에는 공개강의에서 정부에 대한 40%대 지지율을 보인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갤럽 방식으로 재해석하면 30% 선에 그치는 지지율”이라고 강변하며 “(사람들이) 이 정도로 상황이 어려울 땐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을 타산지석으로 삼자고 얘기하지만 나는 캄보디아를 거론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등 중립을 유지해야 할 여론조사 기관 대표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결국, 2007년 대통령 선거 준비 과정에서 당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으로 그토록 오랫동안 기웃거리던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된 최시중은 이명박, 이상득, 박희태, 김덕룡, 이재오와 함께 6인회에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결국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최시중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거쳐 2008년 제1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내정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기존의 방송위원회를 확대개편한 ‘국가 최고의 방송통신 정책, 규제, 감독기관’으로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를 모델로 해 설립됐다. 5명으로 구성된 방송통신위원 가운데 위원장은 장관급이고 부위원장 및 상임위원 3명은 차관급이다. 경찰청장이 차관급인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크고 강한 조직인지 알 수 있다.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나머지 3명 중 1명은 국회 여당 또는 여당이었던 교섭단체에서 추천하고 2명은 야당인 교섭단체에서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 즉, 5인 위원 중 3명은 대통령, 여당의 몫, 2명은 야당의 몫이다. 방송 및 통신과 관련한 모든 법안과 정책을 입안하거나 심의, 의결하고 사업 인허가, 분쟁 조정, 제재 및 징계 등 광범위하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보니 위원장과 위원의 전문성과 자질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사안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 후보로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하지만 방송이나 통신에 대해서는 어떠한 전문성이나 관련성도 없는, 일간지 기자와 여론조사 회사 대표 출신의 6인회 멤버 최시중을 지명한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즉각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치도구화’, ‘방송 장악’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했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직업윤리와 도덕성, 정치적 중립성에 있어 심각한 흠결이 있다는 문제가 해소되지 못해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최시중을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2011년 제2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재임명되는 과정에서도 인사청문회에서 각종 의혹들에 대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의 추궁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투기, 증여세 탈루, 아들 병역특혜 등이 있다. 종합편성채널 선정 과정에서 특혜와 편파 심사 의혹도 일었다. 하지만 역시 최시중은 제2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된다. 위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의 ‘정치편향성’과 ‘이명박 대통령 측근’으로서의 특성은 지속적으로 드러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08년 5월에는 방송통신위원장의 국무회의 참석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해’, ‘국회에 보고한 뒤’ 해야 한다는 방송통신위원회법을 위반해가며 무단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해 “수입쇠고기 안전성과 관련한 정부의 홍보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해 정치적 중립성 위반 비판이 빗발쳤다. 같은 시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수입쇠고기 문제 등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은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정연주 사장은 석 달 뒤,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고 만다. 최시중 위원장은 종편채널 인가 과정에서 편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특정 언론사한테 유리하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야당과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는 종편채널 선정 과정에서의 부당성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특별사면의 특별한 목적은 없었나

2005년부터 서울 양재동에 대규모 복합유통센터를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던 ㈜파이시티 대표 이아무개씨는 건설 허가 과정에 애로를 겪자 ‘정권 실세’의 도움을 받아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옛 직장동료인 최아무개씨가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고 하자, 그를 통해 유력 인사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최씨는 한나라당 유력 정치인인 이명박, 이상득 의원의 최측근인 최시중 한국갤럽 회장과 박영준 당시 서울시 정무국장(이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을 소개받는다.

이때부터 시작된 로비와 유착은 2008년까지 지속되고, 정·관계 로비에 의존해 무리하게 진행되던 파이시티 건설 사업은 결국 검찰 수사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파이시티 대표의 운전기사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뇌물 받은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하고 최시중은 입막음 대가로 2억원을 건네준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권력을 믿고 뇌물수수 사실을 부인하던 최시중은 운전기사에게 입막음용 돈을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돈에 ‘대가성’은 없다며, “순수한 지원금”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해 사회적 분노를 샀다. 돈을 준 파이시티 대표는 최시중에게 건넨 돈이 수십억원에 이른다고 진술했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입증된’ 액수는 8억원이다. 그 외에도 최시중의 ‘양아들’로 불리던 측근 정용욱씨가 김학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게서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해외로 도피하는 등 최시중과 그 주변 사람들을 둘러싼 여러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시중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뇌물로 받은 돈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서 ‘여론조사용’으로 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불법자금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시사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만약 여론을 무시한 이명박 대통령의 무리한 특별사면이 ‘최시중의 입을 막기 위해서’였다면, 다음 정권에서라도 반드시 밝혀져 5공화국 비리 못지않은 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13년 1월29일,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권력 사용인 특별사면 대상자는 전 국회의장 2명(박희태, 박관용), 공직자 5명(최시중, 김효재, 김연광, 박정규, 정상문), 정치인 12명(김한겸, 김무열, 신정훈, 김종률, 현경병, 서갑원, 이덕천, 서청원, 김민호, 우제항, 임헌조, 장광근), 경제인 14명(천신일, 박주탁, 이준욱, 권혁홍, 김길출, 김영치, 김유진, 남중수, 정종승, 신종전, 한형석, 조현준, 김용문, 오공균), 교육·문화·언론·노동계, 시민단체 9명(손태희, 강기성, 윤양소, 최완규, 정태원, 김종래, 이해수, 서정갑, 이갑산) 및 용산참사 수감자 5명과 외국인 수형자 8명 등 총 55명이었다. 우리나라는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을 국가 운영의 기본으로 삼는 민주국가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의 고유 영역인 재판 결과를 뒤집어 형을 취소하거나 면제하는 조치인 특별사면은 그야말로 ‘특별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예를 들어, 실정법 위반자이긴 하지만 정치적·사회적 분쟁과 논란의 여지가 많고 사회통합 차원에서의 석방 조치가 요구되던 용산참사 농성 관련 철거민들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아울러 최근 삼성으로부터 거액의 떡값을 받아온 사실이 안기부 불법도청을 통해 밝혀진 검사들의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 같은 이가 가장 적절한 특별사면 대상에 해당할 것이다. 노회찬 대표 사례는 여야나 이념 진영을 막론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 필요성까지 제기되는 사안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최시중처럼 권력을 이용해 거액의 뇌물을 수수하고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국정을 농단한 파렴치 범죄자를, 단지 대통령과 가깝고 정치적인 이익을 안겨줬다는 이유만으로 사면해주는 것은 사사로운 정과 관계에 이끌려 국가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한, 그 자체가 권력적 범죄로 해석될 수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