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법무부 차관.
‘검찰이 수사 방해’로 비난 화살 돌리기 지적
경 “10여명 중 5~6명 출금…공표 꼼수 없어”
경 “10여명 중 5~6명 출금…공표 꼼수 없어”
고위공직자 성접대 로비 의혹을 수사중인 경찰청 관계자는 27일 밤 기자들에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포함한 로비 의혹 관련자 1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를 요청했다고 털어놨다. ‘피의사실 공표죄’를 이유로 수사 진행상황에 대해 통 입을 열지 않던 여느 때와 달랐다. 수사기관은 통상 출국금지 ‘요청’ 사실은 물론 법무부가 출국금지를 승인한 뒤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 수사 기밀을 유지해야 하고,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도 비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출국금지 요청 사실을 밝힌 경찰의 이례적인 태도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먼저 고위공직자와 건설브로커의 유착이라는 사건의 핵심보다 경찰의 출국금지 요청과 검찰의 승인 거부 쪽으로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성접대 동영상’이 등장인물 확인 불가 판정을 받으며 경찰 수사가 막힌 상황에서 김 전 차관 등의 출국금지를 받아내 수사의 돌파구를 찾거나, 출국금지가 불허돼도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나 ‘검찰의 수사방해’ 여론을 끌어내 국면을 전환할 수 있다는 노림수였다는 것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이런 의도가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차관 등의 출국금지 요청 사실이 크게 보도된 데 이어 검찰의 승인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고, 출국금지 일부 불허 결정 뒤에는 ‘검찰이 경찰 수사를 견제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검찰은 경찰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29일 “아주 상세히 출국금지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이후에 검찰이 ‘출국금지 요청을 불허해 수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얘기는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건설업자 윤아무개씨와의 접대 및 유착관계 등 주요 의혹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지난주 윤씨 등 3명의 출국금지 조처 이후 수사에 큰 진전이 없다’고 출국금지 불허 사유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자신들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강하게 부인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출국금지 요청 사실을 사전에 알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슨 꼼수가 있다는 건 음모론적 시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 간부는 “보통 출국금지를 내리는 것 자체는 까다롭지 않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고위층과 건설업자의 유착 사건에서 관련자의 출국금지를 불허한 것이 더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출국금지 불허 결정 직후 경찰은 검찰 압박에 나섰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29일 “윤씨가 검찰에서 수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2003년 서울 용두동의 ㅎ상가를 분양하면서 입주자들에게 개발비 명목으로 71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여러 차례 고소당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석연찮은 수사로 처벌을 피한 것으로 드러나 봐주기 의혹이 일고 있다.(<한겨레> 29일치 11면)
한편, 경찰은 애초 요청한 10여명 중 ㅂ씨 등 5~6명이 출국금지됐다고 이날 밝혔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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