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일대 ‘회장님’들 상대로 사기행각 벌인 일당 입건
“○○○ 정권 시절 비자금이 4000억원이 있다더라. 금괴도 꽤 있대. 영국 돈도 많고. 이걸 곧 처분한다더라고.”
유아무개(47)씨 등 2명은 지난해 6월부터 서울 일대를 돌면서 ‘회장님’들을 상대로 이런 말을 퍼뜨렸다. 자그마한 사업이나 부동산 투자로 적잖은 목돈을 쥔 ‘회장님’들은 귀가 솔깃했다.
유씨의 소개로 만난 성아무개(53)씨의 얘기는 더 구체적이었다. “내가 ○○○ 정권 시절 비자금을 만들었거든. 대통령이 호적도 바꿔준 사람이 바로 나야. 내가 원래 1954년생인데 주민등록상으론 59년생이야. 대통령이 만든 비자금은 일련번호도 등록이 안돼 있어. 5만원권으로 4000억원이나 돼. 영국 10만파운드권도 1000장이니까, 우리돈으로 1900억원이지. 12.5㎏짜리 금괴도 꽤 있어. 1억원만 내면 금괴 하나와 10억원을 줄텐데, 관심 있어?”
유혹은 치명적이었다. 성씨가 보여준 동영상엔 금괴와 5만원권 다발이 비밀창고라 불리는 곳에 산처럼 쌓여있었다. 투자금이 떼일 걱정도 없을 것 같았다. 성씨가 담보라며 건네준 ‘강철박스’엔 10억달러짜리 미국 채권이 들어있었다. “투자금보다 훨씬 값어치가 나가는 거지만 혹시나 의심할까봐 맡겨 두는 거야.” ㄱ씨와 ㄴ씨는 각각 1억원과 4500만원을 선뜻 내놨다.
봉이 김선달도 울고갈 성씨 일당의 사기 행각은 ㄷ씨가 3억3000만원이라는 거금의 투자를 앞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경찰 수사 결과, 성씨가 회장님들에게 건넨 미국 채권과 영국 파운드화는 위조된 것이었고, 금괴와 5만원권 다발을 찍은 동영상은 인터넷에 떠도는 것이었다. 물론 “대통령 비자금” “호적을 바꾼 사연”도 모두 세상에 없는 얘기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성씨 일당 11명을 사기 등 혐의로 입건하고 성씨 등 3명을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 수사 결과, 성씨 일당은 여러 나라의 화폐와 채권, 실체가 없는 금괴 등 이른바 ‘특정물’의 유통책과 연결책 등 역할을 나누고, 투자자들 역시 모집하는 역할과 성씨처럼 직접 사기를 실행하는 역할을 구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특정물의 유통 총책 등 잠적한 일당 3명을 추적하고 있으며, 비슷한 사례로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더 있다는 첩보가 있어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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