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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농성자들 밥이라도 편히 먹어야”
할아버지는 자리를 홀로 지켰다

등록 2013-04-04 19:53수정 2013-04-04 22:57

이갑상(77) 할아버지
이갑상(77) 할아버지
진주의료원 휴업 이틀째
출입문 잠기고 응급실 ‘사용중지’
입원 43명에 외래환자 발길 끊겨
“돈없는 우릴 보살펴준 병원인데
어쩌라고 없앤다는 건지…”
“가족도 없고 집도 없는 나 같은 가난한 사람에게 잘해준 병원이다. 산도 있고 공기 좋고 조용하고, 이렇게 좋은데 없애겠다고 하니….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4일 낮 12시30분 경남 진주의료원에 심장질환으로 5년째 입원하고 있는 이갑상(77·사진) 할아버지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농성하던 노동자 60여명이 점심을 먹으려고 자리를 비우자 이 할아버지는 “내가 자리를 지켜야 다들 편하게 밥이라도 먹지”라며 텅 빈 병원 본관 로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 노동자 170여명이 37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다.

로비 정면에는 ‘진주의료원 보건복지부 평가 2년 연속 최우수 응급의료 기관 선정’이라는 펼침막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에 대한 비인간적인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펼침막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다른 병원 가면 한달 입원하는 데 70만원 내라고 그러는데, 여기는 10만원이면 돼. 이 병원에 5년 있어서 직원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어.”

병원 안 정류소를 지나는 551번과 150번 시내버스는 텅 비어 있었다.

병원 곳곳에는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출입문들은 굳게 잠겨 있었다. 병원 본관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도 작동을 멈췄다. 본관 오른쪽에 있는 응급실 출입문도 잠긴 채 ‘사용중지’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입원한 어머니(79)를 보살피는 박광희(56)씨는 “어머니를 강제로 쫓아낸다면 몰라도, 그때까지는 병원에 있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월25일까지만 하더라도 진주의료원은 외래 환자가 하루 300명가량 찾았고 200명가량 입원해 있었다. 5년 전 신축·이전한 325병상의 진주의료원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는 점만 불편할 뿐, 같은 지방의료원으로서 창원 도심에 있는 마산의료원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연인원 19만여명의 환자를 보살핀 종합병원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취임 바로 다음날 홍준표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발표한 뒤로는 외래 환자가 하루 100명가량으로 뚝 떨어졌고, 퇴원 압박을 받은 입원 환자들도 하나둘 떠났다. 급기야 하루 전인 3일 경남도가 휴업을 발표하고 외래 환자를 받지 않자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로 빠졌다. 입원 환자는 전날보다 6명 줄어든 43명이 남았다.

오후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은 최정숙(75) 할머니는 “나이 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딱 좋은 병원을 없애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진주/글·사진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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