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악인이 범죄를 저질렀다. 재판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의인으로 묘사된다. ‘강한 남자’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욕망은 재판 과정에서 관찰됐다. 2007년 5월12일 김승연 한화 회장이 ‘술집 종업원 보복 폭행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중앙지검에서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8>한화 김승연 회장, 의인과 악인 사이
<8>한화 김승연 회장, 의인과 악인 사이
그 유명한 2007년 북창동 사건
거물급 전관 변호사들이 돕고
검찰의 솜방망이 구형에도
1년6개월의 실형이 떨어졌지만
동정론·의인론 피어오르며
얼마 안 살고 금방 집행유예 ‘법정 탈출’은 오래 못 갔다
2013년 4월 배임·횡령 혐의로
1심 징역4년 선고받고 입원
항소심에선 징역 9년 구형 2007년 3월8일 늦은 오후, 서울 청담동 한 술집 앞에 검은색 차량 6대가 갑자기 줄지어 들이닥쳤다. 곧이어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십여명이 술집 안으로 난입한 뒤 종업원들을 위협해 한곳에 모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남자들은 종업원들에게 “오늘 새벽 이곳에서 발생한 폭행사건 가해자들이 누구냐?”고 다그쳤다. 곧 가해자 신원이 밝혀졌다. 서울 북창동에 있는 유흥주점 임원과 종업원들이었다. 남자들은 보스인 듯한 중년 남자의 지시에 따라 몇 군데 연락을 취한 뒤 북창동 유흥주점 종업원 5명을 청담동 술집 ‘현장’으로 불러냈다. 저녁 8시였다. 일행은 다시 이들을 차량에 태운 뒤 청계산 자락에 있는 한 공사장 창고 건물로 끌고 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라이터 불을 켰다. 불은 건장한 남자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종업원 5명의 얼굴을 차례로 비췄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번갯불 같은 섬광이 일었다. 전기충격기였다. 라이터 불빛 너머로 양복 입은 남자들 손에 쇠파이프와 몽둥이 등 흉기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종업원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라이터 불빛 속으로 한 중년 남자가 불쑥 나섰다. 모자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긴 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었다. ‘한국화약(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었다. 최기문 전 경찰청장은 왜 전화를 했나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액션활극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나지막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는 종업원들에게 김 회장은 “내 아들이 눈을 다쳤으니 네놈들도 눈을 좀 맞아야겠다”며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두 팔이 붙들린 종업원들의 눈을 집중 가격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한 종업원이 울기 시작했다. “전 그냥 종업원인데, 우리 전무님이 가서 사과하고 대충 몇 대 맞고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에요. 살려주세요.” 자초지종을 캐물어 대강의 상황과 아들을 폭행한 가해자들이 누구인지 파악한 김 회장 일행은 곧바로 북창동 유흥주점으로 달려갔다. 밤 10시 북창동 유흥주점 앞, 다시 번쩍거리는 검은색 최고급 세단의 행렬이 들이닥쳤다. 김 회장과 눈에 붕대를 댄 아들,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10여명의 건장한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전자충격기와 쇠파이프 등 흉기를 들고 줄줄이 차에서 내려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검은 정장 청년들’은 술집 주변에 병풍처럼 늘어서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술집은 저항 없이 순식간에 장악됐다. 선두에 선 선글라스 차림의 김 회장이 소리질렀다. “다 나와, 이 자식들. 북창동을 다 없애버릴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다 여기서 무릎을 꿇을래, 아니면 가게 문 닫을래?” 멈칫하던 종업원들이 복도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곧 김 회장 아들 폭행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조 전무’가 김 회장 앞으로 불려왔다. 김 회장은 조 전무를 룸 안으로 데려갔다. 곧이어 고성과 함께 뺨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세 차례 들려왔다. 김 회장은 곧이어 새벽에 폭행을 당했던 아들을 불러 “네가 맞은 만큼 때려라”고 일렀다. 곧 룸 밖에서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퍽, 퍽, 퍽’ 하는 폭행 소리가 새어나왔다. 2시간여 공포의 폭행이 계속되던 밤 12시, 경찰관 몇 명이 술집 안으로 들어와 “112로 폭행신고가 들어왔는데, 신고한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곧이어 업소 사장이라는 남자가 나서 “우리 종업원끼리 잠깐 다퉜는데, 누가 오해하고 신고를 한 것 같다”고 둘러댔다. 경찰관들은 ‘조심하라’는 경고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곧이어 김 회장은 종업원들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시킨 뒤, 스스로 ‘폭탄주’를 만들어 조 전무와 폭행당한 종업원들,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함께 건배를 했다. 그러곤 ‘서로 때리고 맞았으니 이제 남자답게 화해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제안한 뒤 ‘술값’이라며 100만원을 건네고 자리를 떴다.
다음날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김 회장이 조폭을 동원해 보복폭행을 저질렀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남대문경찰서 역시 현장조사와 주변 목격자 대상 탐문수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3월12일, 한화그룹의 고문으로 재직중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이 남대문경찰서장 장희곤 총경에게 전화를 해 “한화그룹 폭행사건을 수사중이냐”고 물었다. 그 뒤 현장에 나가있던 남대문경찰서 수사 인력은 모두 철수됐다. 그즈음 홍영기 당시 서울경찰청장도 최기문 전 청장의 전화를 받았고, 이택순 당시 경찰청장은 한화증권 유기완 고문과 함께 골프를 쳤다. 한화리조트 감사 김아무개씨는 ‘폭행 피해자 관리 및 경찰 로비자금’으로 김 회장으로부터 5억8000만원을 받아서 그중 2억7000만원을 거대 폭력조직 ‘맘보파’ 두목 오아무개씨에게 건넸다. 폭력조직을 동원해 ‘입막음’을 시도한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그렇게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 같던 사건은 4월24일, 언론에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떠올랐다. ‘사건 무마 의혹’을 벗으려는 경찰은 4월26일 김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요청했지만 검찰은 혐의사실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5월10일,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고 다음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그사이 ‘조폭 동원’의 연결고리였던 맘보파 두목 오씨는 캐나다로 출국, 도피했다. 6월5일, 검찰은 김 회장과 한화그룹 경호과장 진아무개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김문수 지사까지 “너무 그러지 말자”
피고인 김 회장은 거물급 ‘전관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재판을 맡은 판사의 사법연수원 시절 교수, 직속상관인 부장판사였던 변호사, 법원장 출신 변호사 및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등 법조계 드림팀이었다. 어떻게 보면 복잡한 미스터리였던 미국의 ‘오 제이 심슨’ 사건을 연상케 했지만, 이 사건은 전혀 사실관계나 법률관계를 복잡하게 다툴 여지가 없는 ‘단순한 보복 폭행’ 및 ‘수사 무마를 위한 청탁과 압력’ 사건이었다.
물론, 쟁점은 있었다. 조폭을 동원한 혐의가 추가된다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5조(범죄단체 등 이용·지원)’가 적용돼 징역 3년 이상의 형이 추가되고, 다른 폭행 혐의에도 ‘가중처벌’ 요인이 발생한다. 이 부분은 ‘역량있는 변호사의 변론 능력’이 아닌, 판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관 변호인의 위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 회장은 이 부분에 분명한 확신을 가졌던 듯하다. 이미 피해자들과는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일부 언론은 주요 대기업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면 기업활동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이 초래될 것이라는 논조의 사설과 기사를 실었다. 이에 힘입은 김 회장은 ‘집행유예가 내려질 것’이라는 ‘스스로 재판’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개법정에서 여유만만한 태도로 “권투하듯이, 아구를 몇 번 돌렸지”, “귀싸대기를 올려붙였지”, “내가 때리다 때리다 지쳐서 애들 시켜서 대신 때리게 했거든”, “검사 양반은 술집 한 번 안 가봤어요?” 등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내뱉었을 리가 없다. 재판 도중 방청석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에는, 야간에, 흉기 등을 사용하여, 집단적으로 폭행을 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아무리 초범 등 작량감경(정상 참작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낮추는 것)을 통해 감형을 한다 해도 그 절반인 ‘2년6개월 형’이 최하 형량이다.
그런데 검찰은 제3조가 아닌 상대적으로 가벼운 제2조(두 명 이상의 공동 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그리고 징역 2년형을 ‘구형’했다. 피고인의 감형 주장에 판사가 귀 기울일 것을 고려해 가능한 한 높은 형량을 구형하는 검찰의 관행에서 벗어난 ‘솜방망이 구형’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낮은 구형량은 사실상 검찰이 ‘집행유예로 풀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2일 1심법원은 세간의 이목을 의식해 김 회장에게 집행유예 없이 ‘1년6개월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예상하고 갈아입을 평상복을 준비한 채 법정에서 대기하던 한화그룹 직원들의 표정이 머쓱해진 순간이었다.
김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이 끝난 7월7일, 캐나다로 도주했던 폭력조직 맘보파 두목 오씨가 자진귀국해 검찰에 구속됐다. 그의 진술에 따라 김 회장에 대한 추가 혐의(범죄단체 등 이용·지원)가 확인되면 김 회장은 형량이 추가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씨는 폭행사건 발생 이후 ‘개인적으로, 지인의 부탁에 따라’ 피해자들과의 합의 유도 등 ‘사건 무마’를 도와준 사실만 인정했다. 김 회장의 ‘조폭 동원’ 혐의는 기소되지 않았다. 법원의 실형 선고 직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기업에 대해 일벌백계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사람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고 더구나 큰 기업인데 약점은 분명히 있다 … 너무 그러지 말자”며 김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동료 경제인들과 일부 언론에서도 유사한 논조를 펴며 ‘동정론’을 불러일으켰다. 김 회장이 그동안 행했던 숨은 선행들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1981년 창업주인 부친의 사망으로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회장 자리에 오른 김씨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그룹을 수십배 이상 성장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에 빠졌던 ‘예술의 전당’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살아나게 해 주었다. 아마 야구와 복싱 등 스포츠 분야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특히 미국 해군정보부서 소속으로 북한 군에 관한 첩보를 대한민국에 제공해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미국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로버트 김에게 남몰래 거액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인’이라는 평가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7월12일, 김 회장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아주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9월11일, 항소심에서 김 회장은 ‘징역 1년6개월 형, 하지만 그 집행을 3년 유예한다’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으면서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추가로 받고 풀려나게 된다. 실형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지 딱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 병원 입원 기간을 제외하면 사실 실제 교도소 수감 기간은 며칠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떠돌며 ‘사법 불신’, ‘사회 불신’을 낳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다. 김 회장은 재수감될 걱정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화려한 부자들의 향연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6년 만에 더 큰 피해 본 회사·주주·투자자
김 회장의 ‘법정 탈출’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3년 4월1일, 검찰은 차명으로 소유한 개인 회사의 빚을 그룹 계열사 돈으로 메워 계열사에 300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한 채 항소심 재판을 받아 온 김 회장에게 징역 9년과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어린 시절 공격적 기업가인 부친으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고 군사독재 시절 공군장교 생활을 한 김 회장은 ‘무력과 폭력이 상징하는 남자다움’을 동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젊은 나이에 대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으며 주변의 도전과 공격, 비판에 시달리면서 더욱 공격욕구와 ‘남자다움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갔다. 복싱과 사격 등 관련 스포츠단체 회장직 등을 역임하고, 주변에 조폭과 연계된 사람들이 모이면서 스스로 ‘강한 남자’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한편에선 문화와 예술, 스포츠, 애국자 등을 통 크게 지원하며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는 보상심리도 컸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동정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범죄자치고 그 정도 ‘안타까운 사연’ 없는 이는 드물다. 더욱이 자신의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을 과신한 김 회장에게 사법당국의 선처는 ‘역시 난 아무도 못 건드려’라는 잘못된 자신감으로 연결됐고, 결국 더 큰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보게 된 회사와 주주, 투자자 그리고 우리 사회는 경찰, 검찰, 법원의 부패와 전관예우라는 망국적 폐습에 눈 뜨고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거물급 전관 변호사들이 돕고
검찰의 솜방망이 구형에도
1년6개월의 실형이 떨어졌지만
동정론·의인론 피어오르며
얼마 안 살고 금방 집행유예 ‘법정 탈출’은 오래 못 갔다
2013년 4월 배임·횡령 혐의로
1심 징역4년 선고받고 입원
항소심에선 징역 9년 구형 2007년 3월8일 늦은 오후, 서울 청담동 한 술집 앞에 검은색 차량 6대가 갑자기 줄지어 들이닥쳤다. 곧이어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십여명이 술집 안으로 난입한 뒤 종업원들을 위협해 한곳에 모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남자들은 종업원들에게 “오늘 새벽 이곳에서 발생한 폭행사건 가해자들이 누구냐?”고 다그쳤다. 곧 가해자 신원이 밝혀졌다. 서울 북창동에 있는 유흥주점 임원과 종업원들이었다. 남자들은 보스인 듯한 중년 남자의 지시에 따라 몇 군데 연락을 취한 뒤 북창동 유흥주점 종업원 5명을 청담동 술집 ‘현장’으로 불러냈다. 저녁 8시였다. 일행은 다시 이들을 차량에 태운 뒤 청계산 자락에 있는 한 공사장 창고 건물로 끌고 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라이터 불을 켰다. 불은 건장한 남자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종업원 5명의 얼굴을 차례로 비췄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번갯불 같은 섬광이 일었다. 전기충격기였다. 라이터 불빛 너머로 양복 입은 남자들 손에 쇠파이프와 몽둥이 등 흉기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종업원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라이터 불빛 속으로 한 중년 남자가 불쑥 나섰다. 모자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긴 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었다. ‘한국화약(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었다. 최기문 전 경찰청장은 왜 전화를 했나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액션활극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나지막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는 종업원들에게 김 회장은 “내 아들이 눈을 다쳤으니 네놈들도 눈을 좀 맞아야겠다”며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두 팔이 붙들린 종업원들의 눈을 집중 가격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한 종업원이 울기 시작했다. “전 그냥 종업원인데, 우리 전무님이 가서 사과하고 대충 몇 대 맞고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에요. 살려주세요.” 자초지종을 캐물어 대강의 상황과 아들을 폭행한 가해자들이 누구인지 파악한 김 회장 일행은 곧바로 북창동 유흥주점으로 달려갔다. 밤 10시 북창동 유흥주점 앞, 다시 번쩍거리는 검은색 최고급 세단의 행렬이 들이닥쳤다. 김 회장과 눈에 붕대를 댄 아들,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10여명의 건장한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전자충격기와 쇠파이프 등 흉기를 들고 줄줄이 차에서 내려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검은 정장 청년들’은 술집 주변에 병풍처럼 늘어서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술집은 저항 없이 순식간에 장악됐다. 선두에 선 선글라스 차림의 김 회장이 소리질렀다. “다 나와, 이 자식들. 북창동을 다 없애버릴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다 여기서 무릎을 꿇을래, 아니면 가게 문 닫을래?” 멈칫하던 종업원들이 복도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곧 김 회장 아들 폭행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조 전무’가 김 회장 앞으로 불려왔다. 김 회장은 조 전무를 룸 안으로 데려갔다. 곧이어 고성과 함께 뺨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세 차례 들려왔다. 김 회장은 곧이어 새벽에 폭행을 당했던 아들을 불러 “네가 맞은 만큼 때려라”고 일렀다. 곧 룸 밖에서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퍽, 퍽, 퍽’ 하는 폭행 소리가 새어나왔다. 2시간여 공포의 폭행이 계속되던 밤 12시, 경찰관 몇 명이 술집 안으로 들어와 “112로 폭행신고가 들어왔는데, 신고한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곧이어 업소 사장이라는 남자가 나서 “우리 종업원끼리 잠깐 다퉜는데, 누가 오해하고 신고를 한 것 같다”고 둘러댔다. 경찰관들은 ‘조심하라’는 경고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곧이어 김 회장은 종업원들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시킨 뒤, 스스로 ‘폭탄주’를 만들어 조 전무와 폭행당한 종업원들,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함께 건배를 했다. 그러곤 ‘서로 때리고 맞았으니 이제 남자답게 화해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제안한 뒤 ‘술값’이라며 100만원을 건네고 자리를 떴다.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징역 9년과 벌금 1500억원이 구형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4월1일 오후 항소심 결심 공판을 마친 뒤 구급차를 타고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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