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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판사님, 그 짓의 위중함에 눈을 뜨시오

등록 2013-04-26 19:05

최근 들어 형량이 높아지는 추세이지만, 지적장애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친족 성폭행에 대해 법원은 관대한 판결을 내려왔다. 사회 전체에 퍼진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 가정은 가장이 지배하는 성역’이라는 가부장적 인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친족 성폭행 문제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최근 들어 형량이 높아지는 추세이지만, 지적장애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친족 성폭행에 대해 법원은 관대한 판결을 내려왔다. 사회 전체에 퍼진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 가정은 가장이 지배하는 성역’이라는 가부장적 인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친족 성폭행 문제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11> ‘영혼 살인’ 친족 성폭행
지적장애 10대 피붙이 상대로
몹쓸 짓 한 조부와 숙부들에게
1심 재판부는 중형 내릴 듯
판결문을 읽어내려갔지만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인륜에 반하는 짓 했어도
피해자 양육한 점 참작해
집행유예 석방 일쑤인 법원
지나치게 따뜻한 관용이
성폭력 부추기는 걸 아는가

2001년 8월, 지적 장애와 생활고로 더이상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는 아홉살 김양을 충북 보은에 있는 친가에 맡겼다. 할아버지와 숙부들이 ‘피붙이’고 자신들과 달리 지적 장애 등의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 키워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순진한 부모의 바람과 믿음은 무참하게 깨져버렸다. 80살 할아버지가 그 어린 손녀딸을 강제로 성추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짐승 같은 할아버지는 손녀가 싫다고, 무섭다고, 아프다고 울며 애원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양이 12살이 된 2004년부터는 30대 작은아버지가 자고 있는 조카의 방에 들어와 강제로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부터는 40대 작은아버지가 산소에 벌초를 한다며 산으로 데려간 뒤 “작은아빠, 제발 이러지 마세요”라며 울며 애원하는 조카딸을 강간했다. 김양이 16살이 된 2008년에는 50대 큰아버지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조카를 안방으로 강제로 끌고 가서 성폭행했다. 이들은 혹시나 손녀, 조카딸이 임신이라도 하면 범행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피임기구까지 미리 준비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더 큰 충격을 주었다. 할아버지와 큰아빠, 작은아빠라는 탈을 쓴 이 4명의 성폭행범들은 가족이라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믿고 의지한 지적 장애 어린이를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자신들의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것이다.

가해자들, 집행유예도 못마땅해 항소하다

지적 장애를 앓고 있고 생계와 학업 등을 온전히 할아버지와 숙부들에게 의존하고 있어 강하게 항거할 수 없었던 김양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잔학한 성적 폭행이 죽기보다 싫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다 보니 마음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늘 마치 지금 당장 그들 중 한 명이 덮칠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감수성 예민한 아동 청소년기에, 다른 또래 친구들처럼 깔깔 웃고 즐겁게 뛰어놀 수도 없었다. 늘 불안하고 우울했다. 식사 준비와 설거지, 청소 등 마치 하녀같이 집안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것은 아무 문제 없이 견뎌낼 수 있었다. 짐승 같은 할아버지와 삼촌들의 성적 괴롭힘만 없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비로소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털어놓을 준비와 용기가 생긴 김양은 상담을 요청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상담교사는 충격을 받았지만 차분하게 김양을 안정시킨 뒤 여성단체와 협의해 산부인과 및 정신과 검진과 진료 등을 통해 피해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김양은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쉼터로 피신해 보호를 받게 됐다.

2008년 11월20일 청주지방법원. 선고공판이 열린 법정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7년 동안 손녀, 조카를 성폭행한 인면수심 범죄자들의 악행을 낱낱이 확인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피고인들의 유죄를 확인한 재판장(형사11부 오준근 부장판사)은 형량 선고에 앞서 “이 사건 각 범행은 피해자의 친할아버지, 백부 또는 숙부의 관계에 있는 피고인들이 정신지체 상태에 있는 나이 어린 피해자를 자신들의 성적 욕구 해소의 수단으로 삼아 번갈아가며 강간하거나 강제추행한 것으로서, 범행 내용 자체로 인륜에 반하는 것이고 사회적 비난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일갈했다. 방청객들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장이 말을 이었다. “또한 피해자는 다른 누구로부터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피고인들의 성폭력 범행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전문기관의 상담결과 피해자는… ‘가족’에 대해… 두려움과 적대적 감정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피고인들에게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

일부 방청객은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 뒤에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판사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한편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경제적 형편에도 불구하고 정신지체 등으로 인해 피해자를 양육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부모를 대신해 그나마 최근까지 피해자를 양육했고 피해자의 정신장애 정도 등에 비춰보면 앞으로도 피해자에게는 가족인 피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첫째 작은아버지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그리고 막내 작은아버지에게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했다. 즉 모두를 집행유예로 ‘석방’해준 것이다. 법정 안은 술렁거렸다. 큰 소리로 항의하는 여성단체 관계자에게 판사가 퇴정을 명령했다.

이 파렴치한 피고인들은 집행유예 판결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귀여워서 쓰다듬는 등 사랑을 베풀어 준 것이지 성폭행한 것이 아니다”라는 억지 주장을 하며 무죄 판결을 요구하거나 형량이 너무 높다고 항의하며 항소를 제기했다. 검찰은 이와 반대로 ‘형량이 너무 낮다’며 항소했다.

재판 결과와 항소 사실 등이 알려지자 여론은 술렁거렸다. 여성단체에선 1인시위에 나섰고 ‘장애아동 친족 성폭력 집행유예 판결 바로잡기 대책위’(이하 대책위)가 결성돼 항의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 재판부 규탄 집회를 열었다. 대책위에는 전국 성폭력상담소·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소속 단체 111곳, 충북여성연대 소속 단체 6곳,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단체 13곳,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소속 단체 12곳, 아동보호 전문기관 44곳, 충북시민단체연대회의 소속 단체 24곳 등 총 212곳의 장애인·여성·아동 관련 단체들이 참가했다. 인터넷에서는 누리꾼의 대규모 서명운동이 전개됐다. 전국성폭력상담소와 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에서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2008년 여성인권존중 걸림돌’로 선정했다.

“소녀가 합의금 노렸다”는 범죄가족의 궤변

2009년 3월19일, 항소심 재판을 주관한 대전고등법원 청주재판부(송우철 부장판사)는 어처구니없는 1심 판결 이후 들끓는 여론을 의식한 것처럼 보였다.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는 재판장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았지만 떨림이 느껴졌다. “친할아버지, 백부 또는 숙부의 친족관계에 있는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성적 욕구 해소의 수단으로 번갈아가며 강간하거나 강제추행한 범행 내용 자체로 인륜에 반하는 것이고, 또 어린 피해자가 성폭행 범행에 장기간 노출돼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아 사회적 비난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단언한 재판장은 피고인 모두에게 집행유예형을 내린 1심 판결을 깨고, 큰아버지와 첫째 작은아버지에게는 징역 3년, 상대적으로 범행 횟수와 정도가 경미한 둘째 작은아버지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이들을 법정구속했다. 하지만 가장 책임이 큰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여든살이 넘은 고령과 지병 등을 이유로 들어 1심과 같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10년 10월22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김인욱 부장판사)는 11살 어린 나이부터 수년간 지속적으로 피해자 ㄱ(17·여)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할아버지, 작은아버지 등 일가족 4명에게 징역 1~6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친아버지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함께 사는 할아버지에 이어 명절마다 찾아오는 고모부와 작은아버지, 사촌오빠까지 소녀를 성추행했고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친아버지(41살)가 성폭행해온 참담한 범죄였다. 판결은 이에 대한 처벌로 과연 충분할까?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정확하게 알게 된 소녀가 힘들게 할머니와 새엄마에게 피해사실을 털어놓자 이들은 ‘네가 참아야 가족이 행복하다. 절대로 남에게 얘기하거나 신고하면 안 된다’고 윽박지르며 범행을 방조하기까지 했다. 이 ‘범죄 가족’은 경찰의 조사로 범행이 밝혀져 재판에 회부됐는데도 피해 소녀가 ‘합의금을 노리고 없는 피해를 꾸며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해대며 피해자의 고통과 충격을 가중시켰다. 재판부가 가장 악질적이고 제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피해자의 친아버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는 ‘유일하게 남은 부양자’라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2년 전, 청주지방법원에서 손녀를 성폭행한 할아버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여론을 들끓게 했던 이유와 같았다. 여전히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 가정은 가장이 지배하는 성역’이라는 낡고 잘못된 가부장적 인습이 우리 사법부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와 사법부가 ‘친족 성폭행 가해자’에 대해 지나치게 부드럽고 따뜻한 관용의 눈길을 보내는 사이 친족 성폭행 범죄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13년 대검찰청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08년 이후 5년 동안 친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60% 증가했다. 물론 피해자들의 용기와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가 향상돼 신고 건수가 늘어난 덕도 있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최근 중학생 친딸을 자신의 승용차와 집 안 등에서 여러차례 강제로 성폭행한 피고인에게 징역 15년형이 선고되는 등 법원의 형량이 강화되는 경향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강제로 폭력이나 완력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강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행유예 등 어처구니없게 낮은 형량이 선고되고 있다. 친족이나 보호자가 그 지배력과 통제력을 무기 삼아 어린 피해자를 저항하지 못하게 하고, 성에 대한 지식과 자기결정능력을 채 갖추지 못한 피해자의 상태를 악용해 저지른 성추행과 성폭행 사건 등에서다.

아동 대상 성폭행범 중 극히 일부는 그 스스로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소아성애증’(소아기호증·pedophilia)이라는 정신성 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미 대법원 판례로 소아성애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책임이 감면되는 ‘심신미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형벌은 그 죄책에 따라 무겁게 부과하되, 긴 형기를 치르면서 인지행동치료나 약물치료 등의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학술적·의학적으로도 옳다. 스스로의 충동도 제어하지 못해 자신이 보호해야 할 어린 생명에게 짐승도 하지 않는 성폭행을 저지른 자들에게 ‘그동안 양육해온 정’과 ‘앞으로도 양육해줘야 한다는 점’ 등을 내세워 다시 사회와 피해자 곁으로 돌려보낸다는 판사들의 논리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 <도가니> 이후 권고형량 높이다

2003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법원은 자신의 8살 의붓딸을 성폭행한 패트릭 케네디(43)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제도 폐지 여론이 이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이 판결에 대해 위헌소송까지 제기됐지만, ‘보호자가 아동을 성폭행하는 범죄는 살인 등 어떤 다른 범죄보다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미국 사회와 법원의 단호함을 보여준다. 미국만이 아니다. 2009년 3월 오스트리아 법정은 친딸을 지하동굴에 감금한 채 수년간 성폭행하고 아이까지 낳게 한 혐의로 요제프 프리츨(43)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프랑스 형법도 아동 대상 성폭행은 징역 20년형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고, 영국에서도 강간 범죄는 최저형량 8년 이상의 기준 형량에 아동 대상일 경우와 보호자의 범죄일 경우 등을 추가로 가중처벌하도록 하고 있어, 친족의 어린이 성폭행의 경우 대부분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도가니>로 논란이 불거진 뒤 2012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장애인과 아동 대상 성범죄의 경우 권고형량을 높여 집행유예가 힘들도록 했다.

물론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엄한 처벌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아동성폭행의 근본 원인인 가정의 해체와 취약한 아동보호 제도의 완비, 아동학대 방지법 제정, 학교·사회에서의 성교육 강화와 올바른 성문화 정착 등 예방과 피해자 보호 및 지원책 마련이 우선이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아픔을 안겨 ‘영혼살인’이라 불리는 아동 대상 성폭행 범죄를 절도 등 ‘재산 범죄’보다도 가벼운 범죄로 인식하는 사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국가·사회적인 예방책과 피해자 보호방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인식 역시 형성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피해자의 치유는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진솔한 속죄에서 비롯된다. 판사 등 일부 법조인들이 문제의식 없이 유흥업소를 들락거리다 보니 ‘성폭력 가해자에게 동정적인 것 아니냐’는 여성단체 등 사회 일각의 날선 비판의 눈길을 엄중히 받아들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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