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알바하며 알아낸 남의 주민번호 도용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거짓 사연 올려
7년간 700여건 당첨…압수 물품만 2톤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거짓 사연 올려
7년간 700여건 당첨…압수 물품만 2톤
“군대에서 휴가나온 아들이 몰래 배달일을 하다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어제 오늘 내내 치료만 받고 있습니다. (남편과) 셋이 울기만 했습니다. 다음 휴가땐 걱정도 안 끼치고 배터지게 먹이고 보내야죠. 엄마가 미안합니다. ” -2013.01.22. 아이디 lig***
“언제까지 백수로 놀 순 없고 곧 명절이라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공장에 들어왔습니다. 친구들이나 일부 가족들이 고작 그런 데 들어갔냐고 한마디씩 날려 마음이 무거워요.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인생 투자해 땀 흘릴 겁니다. ” -2012.11.25. 아이디 love94**
지난 겨울 한 라디오 방송국에 보내진 사연들의 일부다. 각각 군대간 아들을 둔 엄마와 건실한 청년 취업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사연이 읽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하지만 모두 40대 남성이 쓴 글이다. 사연을 쓴 40대 ‘경품왕’은 2006년부터 7년여 동안 이처럼 남의 주민등록번호와 거짓 사연을 이용해 라디오 방송의 경품을 700여차례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다른 이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라디오 방송에 거짓 사연을 올린 혐의(주민등록법 위반)로 이아무개(42)씨를 불구속입건했다고 30일 밝혔다. 이씨는 2006년 4월부터 최근까지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 등 방송사 누리집에 다른 이의 주민번호로 가입한 뒤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사연을 올려 8000만원 상당의 경품을 받아 챙긴 혐의를 사고 있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씨는 모두 180명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거짓 사연 2000여건을 올렸고, 이 가운데 700여건이 백화점 상품권·압력밥솥 등 경품에 당첨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대부분의 경품을 인터넷에서 판매해 현금으로 바꾼 뒤였지만 검거 뒤 이씨의 집에서 압수한 세탁기·압력밥솥·전기요·귀금속 등 남아있는 경품의 무게만 2t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주업’인 경품 응모를 위해 ‘부업’인 전단지 부착 아르바이트를 활용하는 등 수법에 있어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아파트 단지에 전단지를 붙이면서 건물 앞이나 재활용품 보관장소에 버려진 서류 뭉치에서 다른 이들의 주민번호를 수집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또, 경품을 받는 주소가 겹치면 방송국이 이상하게 여길 것을 대비해 존재하지 않는 주소지를 경품 수령지로 적은 뒤 택배원이 확인 전화를 하면 정확한 주소를 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씨가 인터넷프로토콜(IP) 추적 등을 피하기 위해 동사무소 등 공공기관의 민원용 컴퓨터를 사용해 사연을 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7년여의 시간동안 여러 라디오 방송을 넘나들며 ‘경품왕’에 등극한 이씨는 16일 여느 때와 같이 성북구 한 주민센터에서 여러 개의 주민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두고 거짓 사연을 올리다 이를 의심한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결국 자신의 도를 넘은 ‘꼼꼼함’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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