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성폭행 미수 범인’ 3주만에 누명 벗어
지난해 폭력사건으로 집유받은 뒤
‘미제사건 혈흔 DNA와 일치’ 구속
“당시 근처에서 손 다쳤다” 주장
119 신고내역·병원기록 사실로 확인
피해자도 “범인 아냐”…결국 풀려나
지난해 폭력사건으로 집유받은 뒤
‘미제사건 혈흔 DNA와 일치’ 구속
“당시 근처에서 손 다쳤다” 주장
119 신고내역·병원기록 사실로 확인
피해자도 “범인 아냐”…결국 풀려나
첨단 과학수사가 생사람을 잡을 뻔했다.
2007년 8월19일 이아무개(44)씨는 서울 암사동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만취 상태였던 이씨는 가게 앞에 놓여 있던 아이스크림 보관용 냉장고의 유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몇걸음 더 가던 이씨는 근처 건물 1층 주차장에 쓰러졌다. 순찰하던 경찰이 이씨를 발견하고 119 구조대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다. 이씨는 피를 많이 흘렸다.
같은 달 24일 새벽 2시10분, 닷새 전 이씨가 쓰러졌던 건물과 담을 맞댄 건물 지하 1층에 살고 있던 ㄱ(30)씨는 밤늦게까지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날이 무더워 문을 열어둔 게 화근이었다. 낯선 남자가 침입해 흉기를 들이대며 ㄱ씨를 위협했다. ㄱ씨가 손으로 흉기를 잡으며 반항하자 범인은 달아났다. ㄱ씨는 피를 많이 흘렸다.
출동한 경찰은 범행 현장을 샅샅이 훑었다. 옆 건물 주차장과 담벼락에서 혈흔이 발견됐다. ㄱ씨는 집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범인의 혈흔이라고 판단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지난 2월 서울동부지검은 대검찰청으로부터 ‘2012년 11월 폭력 사건으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이아무개씨의 디엔에이(DNA)가 6년 전 성폭행 미수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의 디엔에이와 일치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 강동경찰서가 수사에 나서, 4월18일 이씨를 체포했다.
이씨는 “그 동네에 간 적이 없다”고 부인해 의심을 키웠다. 하지만 사건 현장 근처엔 이씨의 디엔에이가 분명히 있었고, 경찰은 이씨를 구속했다. ‘6년 된 미제사건을 디엔에이 대조 기법으로 해결했다’며 언론은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구속 이후 경찰은 이씨가 2007년 8월19일 서울 송파구 한 병원에서 오른 손등 수술을 받았다는 걸 밝혀냈다. 뒤늦게 이씨도 이 사실을 기억해냈고, “당시 근처에 갔었고, 손을 다쳐 피를 흘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병원 직원들에게서 “이씨가 사건 당시 입원중이었고 반깁스 상태였다”는 진술도 받았다. 하지만 경찰은 “입원 환자의 외출이 자유롭고 이씨도 외출한 적이 있다”는 병원 직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이씨가 붕대를 풀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했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이씨의 해명을 집중 검증했다. 소방서에 공문을 보내 ‘2007년 8월19일 119에 신고한 전화의 위치’를 물었다. 성폭행 미수 범행 현장이라는 답이 왔다. 이씨 주장이 맞았다.
가장 중요한 건 피해 여성의 진술이었다. ㄱ씨는 주로 고시원을 옮겨다니며 살아 소재 파악이 어려웠다. 실종자를 찾는 전문 수사관을 여러 명 투입해 ㄱ씨를 찾는 데 성공했다. ㄱ씨는 “범인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고 했고 ‘복수면접’에서는 다른 사람을 “범인과 닮았다”고 지목했다. 복수면접은 피의자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을 세워두고 편면유리를 통해 피해자로 하여금 범인을 지목하게 하는 절차다. 이씨에 대해선 “범인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부장 김충우)는 지난 2일 이씨를 혐의 없음 처분하고 풀어줬다고 8일 밝혔다.
이른바 과학적 증거에 대한 수사기관의 맹신과 ‘유죄 추정의 습관’이 무고한 죄인을 만들 뻔한 사건이었다. 피의자의 주장을 귀담아듣고 알리바이(부재증명)를 끝까지 확인한 수사의 기본이 억울한 누명을 벗긴 것이다.
김원철 정환봉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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