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이 추정될 때 공개 수사가 바람직할까, 비공개 수사가 바람직할까? 2000년 경기도 안산시 일대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살인사건에 대한 경찰의 비공개주의는 시민들에게 떠도는 ‘안산괴담’으로 귀결됐다. 2000년대 중반 안산시 도심 풍경.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13> 안산 살인마 괴담
<13> 안산 살인마 괴담
‘머리 긴 여자 노리는 살인마’
안산 괴담에 공포심 번지고
여자들은 미용실을 찾았다
경찰은 사실을 부정했지만
여자 회사원이, 주부가
돌에 맞아 끔찍하게 살해됐다 ‘비공개 수사’ 고수하는 사이
동일한 수법의 사건 이어지고
‘허름한 옷, 키 작은 20대 남성’
유일한 단서였던 수표 추적 끝
용의자 잡고 보니 우리말 서툰… 2000년 초여름, 주부와 여대생, 직장여성뿐 아니라 중고생과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안산 시내 연령과 계층을 망라한 여성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밤마다 머리 긴 여성만 노리고 뒤쫓아 살해하는 살인마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가족과 친구, 동료 등 지인들 사이에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전해지면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처럼 인터넷을 타고 언론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안산경찰서에는 ‘안산 여성 대상 연쇄살인’ 소문의 진위를 묻는 기자들의 문의가 쇄도했지만 경찰의 공식 입장은 ‘안산 괴담은 사실이 아니며 연쇄살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로서는 지나치고 불합리한 공포감이 번져 도시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지는 상황을 막아야 했다. 경찰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공포심은 마치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긴 머리가 살인마의 범행 대상’이라는 소문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모자를 쓰는 여성이 늘었고, 미용실에는 커트나 파마를 하려는 여성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부모들은 불안감에 딸들의 이른 귀가를 종용하느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과연 ‘안산 괴담’은 근거가 있을까? 태연한 살인과 성추행, 왠지 계속될 듯한 예감 안산 괴담이 돌기 두 달 전쯤인 2000년 4월28일 밤 11시께, 야근을 하고 귀가하던 회사원 남아무개(24)씨가 안산시 선부동 자신의 집 근처 골목길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자정이 넘어 길을 지나던 행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해 밝혀진 이 사건 현장은 참혹했다. 경찰 과학수사요원의 주검과 현장 조사 결과를 분석해 재구성해 본 범행 방법은 잔인했다. 늦은 밤, 인적이 없는 어두운 골목길을 불안감에 휩싸여 종종걸음으로 귀가하는 피해자의 뒤에 누군가 갑자기 다가왔다. 그는 다짜고짜 길에 뒹굴던 돌덩이를 집어 피해 여성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두피가 파열되고 두개골이 손상돼 피해자는 의식을 잃었고 다량의 혈액이 흘러나와 빨리 응급조처를 하지 않으면 숨질 위험에 처했다. 범인은 피해자의 상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해자의 가방과 주머니를 샅샅이 뒤져 총 3만원의 현금을 강탈했다. 더 훔칠 것이 없다고 판단한 범인은 뒷머리에서 다량의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진 피해 여성의 옷을 벗기고 상상하기도 힘든 변태적인 성추행을 자행했다. 심지어 화성 연쇄살인사건 등 일부 성적 이상심리를 가진 범인들이 그랬듯, 피해 여성의 성기에 이물질을 집어넣었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그 모든 행동을, 언제든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발견할 수도 있는 골목길에서 태연하게 했다는 점이 형사들의 긴장과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단순한 강도나 성폭행 혹은 피해자와 치정 등 관계가 얽힌 면식범 소행으로 볼 수 없는 특이한 요소들이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멈출 것 같지 않다’는 매우 기분 나쁜 느낌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캐나다, 미국 등에서 이런 위험한 사건이 발생하면 곧 지역 방송에 속보로 보도되고 전국 네트워크 역시 무게있게 다룬다. 사건 자체를 알리는 의미보다 유사한 공격이 감행될 가능성을 알려 주의와 경계를 촉구하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혹시 범인의 정체나 목격자가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도록 유도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능하면’ 알리지 않으려 한다. 소위 ‘비공개 수사 원칙’이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일리는 있다. 아직 미해결인 이 잔혹한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 지역 주민들, 특히 여성들 사이에 지나친 두려움과 공포감이 조성되고 이로 인한 혼란은 사건 해결에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보도된 내용을 보고 따라하려는 ‘모방범죄’ 우려도 있다. 아울러 범인이 증거인멸이나 도주를 해 버려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이 모든 비공개 수사의 장점은 ‘추가 피해 방지’라는 긴급하고 엄중한 필요성 앞에 힘을 잃는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인질이 잡혀 있는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요 강력사건의 발생은 ‘국민의 알 권리’ 영역에 속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될수록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경찰 상층부의 이른바 ‘수뇌부’는 여론을 두려워하고, 여론 때문에 불편해할 권력을 무척 무서워한다. 그래서 해결하지 못한 강력사건, 특히 추가범행 발생 가능성이 높은 ‘연쇄살인 유형’ 범죄가 발생하면 입단속을 하고 외부 공개를 극히 꺼린다. 그 결과 전혀 주의와 경계 없이, “대한민국은 한밤중에도 여성 혼자 다녀도 안전한, 최고의 치안이 유지되는 나라’라는 대통령과 정부, 경찰의 공언만 믿고 늦은 밤 홀로 귀가하는 여성이 비슷한 상황에서 유사한 공격을 당한다면, 국가와 경찰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닐까? 목숨 건 결사적 항거에 범인 도망가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선부동 사건 이후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6월19일 새벽 4시, 첫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1㎞쯤 떨어진 안산시 원곡동 한 주유소 앞길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던 주부 신아무개(41)씨가 대상이었다. 장소와 시간만 조금 변했을 뿐 범행의 본질이 같았다. 범죄의 효과적인 수행과 성공적인 도주를 위해 범인이 택하는 ‘범행수법’(MO·Modus Operandi)이 무척 흡사했다. 심야에 혼자 귀가하는 여성을, 몰래 뒤쫓다가 인적 없는 골목에서 접근한 뒤, 길가에 있는 돌을 집어들어 뒷머리를 가격하고, 쓰러진 피해자의 소지품을 뒤져 금품을 강탈하고, 옷을 벗겨 성추행한 뒤 도주한 것까지 똑같은 패턴이었다. 신씨도 너무 늦게 발견되는 바람에 과다 출혈과 쇼크로 숨지고 말았다. 빼앗긴 금품은 현금 4만원과 피해자가 착용한 금목걸이였다. 범인의 심리적 욕구나 충동의 발현인 시그니처(Signature) 행동 역시 똑같이 나타났다. 언제든 행인이나 배달원, 순찰경찰관 등이 나타나 발견되고 검거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도 시간을 지체하며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성추행을 했다는 점이다. 범인의 의식적인 범행 동기는 ‘돈’이었겠지만 범행의 이면에 ‘성적인 이상욕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이상욕구와 충동은 본인 의지로 조절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범인들은 검거 등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범행을 멈추지 않는다. 더 불안한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범행을 거듭하면서 범행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범행을 거듭하며 자신감이 높아지고 한번에 강탈하는 금품의 액수에 만족하지 않게 되며, 범행을 통해 얻는 쾌감에 중독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긴 머리 여성만 노리는 살인마가 있다’는 안산 괴담이 퍼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원곡동 범행 이후 엿새 만인 6월25일 새벽 4시, 역시 먼저 발생한 두 사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산시 신길동 한 주유소 앞길에서 귀가하던 변아무개(34)씨가 괴한에게 돌로 머리를 맞는 공격을 당하고 쓰러진 뒤 금품을 빼앗기고 성추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엔 현금 20만원과 10만원짜리 수표 3장이 없어졌다. 앞 두 사건과 똑같은 방법(MO 및 시그니처)이 사용되었다. 범행 주기도 빨라졌다. 천만다행인 것은, 범행 직후 마침 그 장소를 지나는 행인이 있어 응급구조 신고를 한 덕분에 피해자 변씨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이다. 병원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옮겨진 변씨는 잠시 의식이 돌아온 순간 온 힘을 다해 범인이 ‘허름한 옷차림, 키가 작은 20대 남성’이라는 중요한 진술을 해주었다. 이제 ‘비공개 수사’는 불가능했다. 지역 언론과 방송은 이 사건을 속보로 보도했고 인터넷엔 관련 기사와 게시글 등이 줄줄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그날 밤 10시, 범인이 안산시 원곡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또다시 혼자 귀가하는 여성 박아무개(20)씨를 공격했다. 하지만 박씨는 이미 안산 일대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사전 지식과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첫 공격이 감행될 때 위험을 감지해 움찔하는 바람에 치명타를 피할 수 있었던 박씨는 돌에 머리를 비껴맞아 고통이 극심했음에도 범인에게 반격을 가했다. 목숨을 건 박씨의 결사적인 항거에 놀란 범인은 잠시 주춤하다가 그대로 뒤로 돌아 달아나 버렸다. 박씨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범인의 인상착의는 새벽에 공격을 당한 피해자 변씨가 묘사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체구가 작고 몸이 날렵한 범인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신문, 방송은 사건을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경찰이 대처를 늦게 하고 심각한 연쇄살인 사건을 감춰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이 사건이 언론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자 안산 지역 동네마다 자율방범대도 순찰활동을 강화했다. 그러자 한동안 추가 범행은 발생하지 않았다. 키 작은 허름한 옷차림의 20대 남자, 경찰이 확보한 유일한 단서였다. 물론 독특한 범죄행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범인의 특성을 추정할 수는 있었다. ‘성적인 이상욕구가 강한’ 소득수준이 낮은 자로, 일정한 직업이 없고 학력이 낮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것 등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혼자 사는 무직자나 노숙자, 불규칙한 단순노무 종사자 등으로 수사 대상을 좁힐 수는 있었지만 목격자 제보 등으로 용의자가 떠오르지 않는 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상태였다. 강력사건 ‘비공개 수사’ 관행은 바뀌어야 단 한 가지, 아주 희미한 희망을 건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범인이 피해자 변씨에게서 강탈한 10만원권 수표 3장이었다. 범행에 자신감은 붙고, 돈은 절박하게 필요한데, 대대적인 보도와 주민들의 자율방범 노력으로 추가 범행이 힘들어지면, 수표를 사용하게 될 터였다. 역시 범죄수사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차분하게 진행하는 게 정답이다. 변씨가 강취당한 수표의 번호를 확인해 모든 은행에 경보를 발령하고 현장수사와 탐문수사, 용의선상 추적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에 ‘수배해 둔 수표가 회수됐다’는 연락이 왔다.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 지 2주일 뒤인 7월10일이었다. 수표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배서자 이름과 연락처를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사용된 슈퍼마켓으로 가 수표 사용자의 인상착의를 조사한 경찰은 놀랍게도 수표 사용자가 우리말이 서툰 중국계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근에 거주하며 슈퍼마켓에 자주 들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지문 조회 결과,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다가 도주해 불법체류자가 된 중국인 왕리웨이(24)로 신원이 확인됐다. 곧 경찰은 왕리웨이를 체포했다. 경찰 수사 결과 왕리웨이는 같은 방법으로 총 11차례의 범행을 저질러 그중 2명을 살해하고 9명에게는 중상을 입힌 것으로 확인됐다. 2000년 12월8일 수원지방법원 재판부는 “범행 동기나 죄질이 극히 좋지 않고… 범행 방법과 범행 직후의 피고인 행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피해자들 및 유족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정신·신체적 피해를 가한 한편 안산 지역의 일반 시민들에게도 정신적 충격과 강한 불안감을 주는 등 그 결과가 심히 중대한 점을 종합”해 ‘사형’을 선고했다. 왕리웨이는 변호인을 통해 즉시 항소했다. “어릴 적 물에 빠져 익사할 뻔한 사고를 당한 이래 대뇌산소결핍증으로 인한 후유증이 있었는데, 이 사건의 범행 당시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고 일자리도 없는 불안한 불법체류 상태에서 후유증이 심해져, 저녁만 되면 누군가가 자신을 때리고 벌레들이 무는 것 같아 밖으로 뛰쳐나가 타인들을 때림으로써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 들었다. 사물의 변별 및 의사결정 능력의 상실 또는 미약 상태에서 위법을 저질렀는데 재판부는 이 점을 간과했다”는 주장이었다. 2001년 6월12일 서울지방법원 제5형사부 항소심 재판부는 왕리웨이가 반복해서 같은 방법으로 피해자를 물색해 공격하고, 금품을 강취하고, 성추행한 뒤 도주한 행동의 구체적인 행위를 보면, 결코 ‘정신적 문제와 주체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한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왕리웨이는 항소심 결정에도 불복해 다시 상고를 제기했다. 2001년 9월14일 열린 대법원 최종심에서도 역시 상고가 기각돼 사형이 확정됐다. 범인 왕리웨이는 자신이 받아야 할 벌을 받았다. 하지만 미해결 강력사건을 가급적 널리 알리지 않고 비공개 상태로 수사하려는 경찰의 관행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깨닫게 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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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미용실을 찾았다
경찰은 사실을 부정했지만
여자 회사원이, 주부가
돌에 맞아 끔찍하게 살해됐다 ‘비공개 수사’ 고수하는 사이
동일한 수법의 사건 이어지고
‘허름한 옷, 키 작은 20대 남성’
유일한 단서였던 수표 추적 끝
용의자 잡고 보니 우리말 서툰… 2000년 초여름, 주부와 여대생, 직장여성뿐 아니라 중고생과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안산 시내 연령과 계층을 망라한 여성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밤마다 머리 긴 여성만 노리고 뒤쫓아 살해하는 살인마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가족과 친구, 동료 등 지인들 사이에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전해지면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처럼 인터넷을 타고 언론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안산경찰서에는 ‘안산 여성 대상 연쇄살인’ 소문의 진위를 묻는 기자들의 문의가 쇄도했지만 경찰의 공식 입장은 ‘안산 괴담은 사실이 아니며 연쇄살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로서는 지나치고 불합리한 공포감이 번져 도시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지는 상황을 막아야 했다. 경찰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공포심은 마치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긴 머리가 살인마의 범행 대상’이라는 소문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모자를 쓰는 여성이 늘었고, 미용실에는 커트나 파마를 하려는 여성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부모들은 불안감에 딸들의 이른 귀가를 종용하느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과연 ‘안산 괴담’은 근거가 있을까? 태연한 살인과 성추행, 왠지 계속될 듯한 예감 안산 괴담이 돌기 두 달 전쯤인 2000년 4월28일 밤 11시께, 야근을 하고 귀가하던 회사원 남아무개(24)씨가 안산시 선부동 자신의 집 근처 골목길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자정이 넘어 길을 지나던 행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해 밝혀진 이 사건 현장은 참혹했다. 경찰 과학수사요원의 주검과 현장 조사 결과를 분석해 재구성해 본 범행 방법은 잔인했다. 늦은 밤, 인적이 없는 어두운 골목길을 불안감에 휩싸여 종종걸음으로 귀가하는 피해자의 뒤에 누군가 갑자기 다가왔다. 그는 다짜고짜 길에 뒹굴던 돌덩이를 집어 피해 여성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두피가 파열되고 두개골이 손상돼 피해자는 의식을 잃었고 다량의 혈액이 흘러나와 빨리 응급조처를 하지 않으면 숨질 위험에 처했다. 범인은 피해자의 상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해자의 가방과 주머니를 샅샅이 뒤져 총 3만원의 현금을 강탈했다. 더 훔칠 것이 없다고 판단한 범인은 뒷머리에서 다량의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진 피해 여성의 옷을 벗기고 상상하기도 힘든 변태적인 성추행을 자행했다. 심지어 화성 연쇄살인사건 등 일부 성적 이상심리를 가진 범인들이 그랬듯, 피해 여성의 성기에 이물질을 집어넣었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그 모든 행동을, 언제든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발견할 수도 있는 골목길에서 태연하게 했다는 점이 형사들의 긴장과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단순한 강도나 성폭행 혹은 피해자와 치정 등 관계가 얽힌 면식범 소행으로 볼 수 없는 특이한 요소들이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멈출 것 같지 않다’는 매우 기분 나쁜 느낌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캐나다, 미국 등에서 이런 위험한 사건이 발생하면 곧 지역 방송에 속보로 보도되고 전국 네트워크 역시 무게있게 다룬다. 사건 자체를 알리는 의미보다 유사한 공격이 감행될 가능성을 알려 주의와 경계를 촉구하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혹시 범인의 정체나 목격자가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도록 유도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능하면’ 알리지 않으려 한다. 소위 ‘비공개 수사 원칙’이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일리는 있다. 아직 미해결인 이 잔혹한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 지역 주민들, 특히 여성들 사이에 지나친 두려움과 공포감이 조성되고 이로 인한 혼란은 사건 해결에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보도된 내용을 보고 따라하려는 ‘모방범죄’ 우려도 있다. 아울러 범인이 증거인멸이나 도주를 해 버려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이 모든 비공개 수사의 장점은 ‘추가 피해 방지’라는 긴급하고 엄중한 필요성 앞에 힘을 잃는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인질이 잡혀 있는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요 강력사건의 발생은 ‘국민의 알 권리’ 영역에 속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될수록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경찰 상층부의 이른바 ‘수뇌부’는 여론을 두려워하고, 여론 때문에 불편해할 권력을 무척 무서워한다. 그래서 해결하지 못한 강력사건, 특히 추가범행 발생 가능성이 높은 ‘연쇄살인 유형’ 범죄가 발생하면 입단속을 하고 외부 공개를 극히 꺼린다. 그 결과 전혀 주의와 경계 없이, “대한민국은 한밤중에도 여성 혼자 다녀도 안전한, 최고의 치안이 유지되는 나라’라는 대통령과 정부, 경찰의 공언만 믿고 늦은 밤 홀로 귀가하는 여성이 비슷한 상황에서 유사한 공격을 당한다면, 국가와 경찰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닐까? 목숨 건 결사적 항거에 범인 도망가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선부동 사건 이후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6월19일 새벽 4시, 첫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1㎞쯤 떨어진 안산시 원곡동 한 주유소 앞길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던 주부 신아무개(41)씨가 대상이었다. 장소와 시간만 조금 변했을 뿐 범행의 본질이 같았다. 범죄의 효과적인 수행과 성공적인 도주를 위해 범인이 택하는 ‘범행수법’(MO·Modus Operandi)이 무척 흡사했다. 심야에 혼자 귀가하는 여성을, 몰래 뒤쫓다가 인적 없는 골목에서 접근한 뒤, 길가에 있는 돌을 집어들어 뒷머리를 가격하고, 쓰러진 피해자의 소지품을 뒤져 금품을 강탈하고, 옷을 벗겨 성추행한 뒤 도주한 것까지 똑같은 패턴이었다. 신씨도 너무 늦게 발견되는 바람에 과다 출혈과 쇼크로 숨지고 말았다. 빼앗긴 금품은 현금 4만원과 피해자가 착용한 금목걸이였다. 범인의 심리적 욕구나 충동의 발현인 시그니처(Signature) 행동 역시 똑같이 나타났다. 언제든 행인이나 배달원, 순찰경찰관 등이 나타나 발견되고 검거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도 시간을 지체하며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성추행을 했다는 점이다. 범인의 의식적인 범행 동기는 ‘돈’이었겠지만 범행의 이면에 ‘성적인 이상욕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이상욕구와 충동은 본인 의지로 조절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범인들은 검거 등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범행을 멈추지 않는다. 더 불안한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범행을 거듭하면서 범행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범행을 거듭하며 자신감이 높아지고 한번에 강탈하는 금품의 액수에 만족하지 않게 되며, 범행을 통해 얻는 쾌감에 중독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긴 머리 여성만 노리는 살인마가 있다’는 안산 괴담이 퍼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원곡동 범행 이후 엿새 만인 6월25일 새벽 4시, 역시 먼저 발생한 두 사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산시 신길동 한 주유소 앞길에서 귀가하던 변아무개(34)씨가 괴한에게 돌로 머리를 맞는 공격을 당하고 쓰러진 뒤 금품을 빼앗기고 성추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엔 현금 20만원과 10만원짜리 수표 3장이 없어졌다. 앞 두 사건과 똑같은 방법(MO 및 시그니처)이 사용되었다. 범행 주기도 빨라졌다. 천만다행인 것은, 범행 직후 마침 그 장소를 지나는 행인이 있어 응급구조 신고를 한 덕분에 피해자 변씨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이다. 병원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옮겨진 변씨는 잠시 의식이 돌아온 순간 온 힘을 다해 범인이 ‘허름한 옷차림, 키가 작은 20대 남성’이라는 중요한 진술을 해주었다. 이제 ‘비공개 수사’는 불가능했다. 지역 언론과 방송은 이 사건을 속보로 보도했고 인터넷엔 관련 기사와 게시글 등이 줄줄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그날 밤 10시, 범인이 안산시 원곡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또다시 혼자 귀가하는 여성 박아무개(20)씨를 공격했다. 하지만 박씨는 이미 안산 일대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사전 지식과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첫 공격이 감행될 때 위험을 감지해 움찔하는 바람에 치명타를 피할 수 있었던 박씨는 돌에 머리를 비껴맞아 고통이 극심했음에도 범인에게 반격을 가했다. 목숨을 건 박씨의 결사적인 항거에 놀란 범인은 잠시 주춤하다가 그대로 뒤로 돌아 달아나 버렸다. 박씨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범인의 인상착의는 새벽에 공격을 당한 피해자 변씨가 묘사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체구가 작고 몸이 날렵한 범인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신문, 방송은 사건을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경찰이 대처를 늦게 하고 심각한 연쇄살인 사건을 감춰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이 사건이 언론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자 안산 지역 동네마다 자율방범대도 순찰활동을 강화했다. 그러자 한동안 추가 범행은 발생하지 않았다. 키 작은 허름한 옷차림의 20대 남자, 경찰이 확보한 유일한 단서였다. 물론 독특한 범죄행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범인의 특성을 추정할 수는 있었다. ‘성적인 이상욕구가 강한’ 소득수준이 낮은 자로, 일정한 직업이 없고 학력이 낮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것 등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혼자 사는 무직자나 노숙자, 불규칙한 단순노무 종사자 등으로 수사 대상을 좁힐 수는 있었지만 목격자 제보 등으로 용의자가 떠오르지 않는 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상태였다. 강력사건 ‘비공개 수사’ 관행은 바뀌어야 단 한 가지, 아주 희미한 희망을 건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범인이 피해자 변씨에게서 강탈한 10만원권 수표 3장이었다. 범행에 자신감은 붙고, 돈은 절박하게 필요한데, 대대적인 보도와 주민들의 자율방범 노력으로 추가 범행이 힘들어지면, 수표를 사용하게 될 터였다. 역시 범죄수사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차분하게 진행하는 게 정답이다. 변씨가 강취당한 수표의 번호를 확인해 모든 은행에 경보를 발령하고 현장수사와 탐문수사, 용의선상 추적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에 ‘수배해 둔 수표가 회수됐다’는 연락이 왔다.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 지 2주일 뒤인 7월10일이었다. 수표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배서자 이름과 연락처를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사용된 슈퍼마켓으로 가 수표 사용자의 인상착의를 조사한 경찰은 놀랍게도 수표 사용자가 우리말이 서툰 중국계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근에 거주하며 슈퍼마켓에 자주 들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지문 조회 결과,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다가 도주해 불법체류자가 된 중국인 왕리웨이(24)로 신원이 확인됐다. 곧 경찰은 왕리웨이를 체포했다. 경찰 수사 결과 왕리웨이는 같은 방법으로 총 11차례의 범행을 저질러 그중 2명을 살해하고 9명에게는 중상을 입힌 것으로 확인됐다. 2000년 12월8일 수원지방법원 재판부는 “범행 동기나 죄질이 극히 좋지 않고… 범행 방법과 범행 직후의 피고인 행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피해자들 및 유족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정신·신체적 피해를 가한 한편 안산 지역의 일반 시민들에게도 정신적 충격과 강한 불안감을 주는 등 그 결과가 심히 중대한 점을 종합”해 ‘사형’을 선고했다. 왕리웨이는 변호인을 통해 즉시 항소했다. “어릴 적 물에 빠져 익사할 뻔한 사고를 당한 이래 대뇌산소결핍증으로 인한 후유증이 있었는데, 이 사건의 범행 당시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고 일자리도 없는 불안한 불법체류 상태에서 후유증이 심해져, 저녁만 되면 누군가가 자신을 때리고 벌레들이 무는 것 같아 밖으로 뛰쳐나가 타인들을 때림으로써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 들었다. 사물의 변별 및 의사결정 능력의 상실 또는 미약 상태에서 위법을 저질렀는데 재판부는 이 점을 간과했다”는 주장이었다. 2001년 6월12일 서울지방법원 제5형사부 항소심 재판부는 왕리웨이가 반복해서 같은 방법으로 피해자를 물색해 공격하고, 금품을 강취하고, 성추행한 뒤 도주한 행동의 구체적인 행위를 보면, 결코 ‘정신적 문제와 주체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한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왕리웨이는 항소심 결정에도 불복해 다시 상고를 제기했다. 2001년 9월14일 열린 대법원 최종심에서도 역시 상고가 기각돼 사형이 확정됐다. 범인 왕리웨이는 자신이 받아야 할 벌을 받았다. 하지만 미해결 강력사건을 가급적 널리 알리지 않고 비공개 상태로 수사하려는 경찰의 관행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깨닫게 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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