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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치매 아내 4년 돌보던 80대 끝내

등록 2013-05-14 20:46수정 2013-06-18 16:24

승용차로 저수지 빠져 동반자살
“운전 가능할 때 함께 가기로” 유서
지난 13일 오후 4시20분께 수심이 3m가량 되는 경북 북부지역의 한 저수지. 둑에서 5m쯤 들어간 수면에 승용차 1대가 지붕만 드러낸 채 잠겨 있었고, 승용차에서 30m쯤 더 들어간 물 위에는 사람이 떠 있었다.

둑 위에 있던 산불감시요원(65)이 황급히 휴대전화로 112에 신고했다. 경찰과 119구조대원들이 출동해 승용차를 인양했다. 승용차 운전석에는 할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채 물에 떠 있던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아버지는 저수지 근처에 사는 ㅇ(89)씨였고, 할머니는 아내 ㅊ(84)씨였다. 부부의 집 안방에는 할아버지가 편지지에 자필로 쓴 유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유서에는 ‘미안하다. 이제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다. 너무나 힘들다. 내가 죽고 나면 아내는 요양원에 가야 하니까. 내가 운전할 수 있을 때 함께 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23만1405㎡(7만평) 되는 넓은 사과와 복숭아 농장을 갖고 있어 형편이 넉넉했다. 5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일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아내와 금슬이 좋기로 동네에서 알려져 있었고, 이웃들에게 좋은 일도 많이 해 평판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 직접 과수원을 운영하기가 힘들어지자, 막내 아들(55) 부부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과수원을 경작했다.

불행은 4년 전부터 시작됐다. 건강하던 아내가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멀쩡할 때도 있었지만, 갑자기 치매 증세가 나타나면 용변도 가리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자, 직접 할머니의 수발을 들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할머니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

할머니는 요양원에 가게 될까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절대 요양원 안 보낸다”며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내년이면 90살이 되는 할아버지가 언제까지 할머니를 돌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지난 13일 오전 11시께 마을 주민들이 본 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후 부부는 인적이 드문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저수지 둑엔 할머니의 주인 없는 신발만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이 길이 아버지, 어머니가 가야 할 가장 행복한 길이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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