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즐긴 세종은 뚱뚱했다, 연산군은 주색에 빠져 허약
서울대 김정선씨 박사논문, 조선시대 왕들 질병 다뤄
“기침이 심하고 피곤해 밤새껏 잠 못 이루네. 간관들은 종묘사직 중요함은 생각하지 않고 자주 소장을 올려 나오라 하네.”
연산군이 21살 때 지은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 이유를 담은 시다. 건강 때문이라고 하지만 연산군은 이미 30살 때 주색에 빠져 몸이 허약했다고 한다. 의원들은 그의 ‘양기’를 채워주려고 뱀과 벌레를 올리기도 했다.
이달 말 서울대 대학원 의학과에서 ‘의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김정선씨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약방일기> 등 공식 기록과 조선 중기의 방대한 생활상을 담은 유희춘의 <미암일기> 등의 개인 기록을 분석해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이란 논문을 냈다.
논문을 보면, 세종은 고기가 없으면 식사를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왕들이 즐겼던 사냥을 좋아하지 않아 비만한 체구였다.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이순신을 괴롭혀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선조는 젊은 시절부터 원기가 허약했다. 임진왜란 중에도 두통·귀울림에 시달리다 양쪽 귀가 먹고 눈까지 어두워졌다고 한다. 김씨는 “일반적으로 왕들은 풍요로운 생활로 백성들보다 장수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시대 27명의 왕 가운데 환갑을 넘긴 사람은 영조 등 6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명한 단종을 빼더라도 왕의 평균 수명은 48살이 약간 넘는 정도였다. 그는 “잘못된 보건 개념들로 인해 왕들도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아 종기나 감염증이 자주 발병했다”며 “고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기름진 음식과 과도한 주색 등이 반복되는 궁중생활도 단명에 한몫을 했다”고 지적했다.
흥미있는 것은 드라마를 통해 허준과 대장금 같은 명의·명의녀를 배출한 내의원에도 ‘가짜 한약재’와 ‘돌팔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싼 인삼이 문제였다. 중종 때에는 상품의 인삼을 구하기 어렵자 아교로 도라지와 붙여 크기를 키워 진상하기도 했으며, 의원과 의녀가 짜고 인삼을 빼돌리기도 했다. 현종 때의 한 의관은 진맥을 할 줄 몰라 벌을 받기도 했다.
‘인분’까지 약으로 썼던 왕들은 더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이 설 때는 종묘나 명산대천에 기도를 올리는가 하면, 죄수를 풀어주는 등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천지의 ‘화기’를 해칠 수 있는 중죄인은 사면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김씨는 “인삼을 즐겨 먹던 영조는 83살까지 장수를 했는데, 이러한 보양법이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약 선호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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