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최진실이 유명해질수록 그의 복수심은 커졌다

등록 2013-05-31 19:14수정 2013-06-01 18:58

1994년 12월 배병수씨를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고 최진실씨의 전 로드매니저 전아무개씨(가운데)가 경찰의 입회 아래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일요신문 제공
1994년 12월 배병수씨를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고 최진실씨의 전 로드매니저 전아무개씨(가운데)가 경찰의 입회 아래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일요신문 제공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16> ‘스타 매니저’ 배병수 살해사건
부기·회계 가르치던 강사 배병수
김학래 만나며 매니저일 시작
최진실·엄정화·최민수 발굴하며
연예·방송계 선풍을 일으켰던
그가 혈흔만 남기고 사라졌다

3820만원 뽑다 꼬리잡힌 범인은
최진실 전 로드매니저 전○○씨
배씨에게 질책받다 해고되자
집에 숨어들어가 그를 덮쳤다
무기징역형 사는 지금도 감옥서
실체없는 음모론을 퍼트리는데…

서울 전농동에서 부기와 회계를 가르치는 유명 학원강사였던 배병수(학원 예명 배석봉)씨는 1980년대 후반, 군대 동기였던 가수 김학래씨를 만나면서 가수 매니저를 시작하게 된다. 도제식으로 매니저 일을 배운 배병수씨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연기자로 대상을 바꿔 지금은 대스타가 된 신인 연기자 최민수, 고 최진실, 엄정화 등을 발굴해 데뷔시키며 연예·방송계에 선풍을 일으킨다. 기존의 주먹구구식 매니지먼트 관행에서 탈피해 작품과 배우 간의 조화,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홍보, 광고모델로 먼저 인지도를 높여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전략 등 ‘전문성’을 내세운 배씨의 전략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정·관계 인사와의 관계 역시 중요한 성공 비결이었다.

하지만 관행을 거스르고 동업자간 연대를 깬 추진력의 이면에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는 자만심과 유아독존의 오만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평을 받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과 다툼과 충돌이 잦았다. 흔히 ‘갑’으로 간주되던 방송사 피디와도 툭하면 언쟁을 벌이고, 불리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마찰을 빚기 일쑤였다. 특히 배씨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심한 굴욕과 구박을 감수해야 버텨낼 수 있었다.

룸살롱 종업원과 스키장 놀러 가다 잡힌 범인

1994년 12월12일, 갑자기 배병수씨가 사라졌다. 여기저기서 배씨와 했던 약속이 깨지고 급한 연락이 닿지 않아 발을 구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지금과 달리 스마트폰, 위성위치추적장치(GPS)는 물론 시시티브이(CCTV)도 드물던 때라 집과 사무실에 없고 지인과 연락이 닿지 않으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던 배병수씨의 가족은 결국 12월20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다. 경찰은 사건의 파장을 고려해 신속하게 수사에 임했다. 가장 집중적인 수색 대상은 배병수씨의 집이었다. 현장을 정리하고 치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여기저기에서 격투의 흔적이 포착됐다. 안방에서는 혈흔도 발견됐다. 경찰은 바로 강력사건 수사 체제로 돌입했다. 물론 격투의 흔적과 혈흔 그리고 실종이 곧 살인이나 납치 등 강력사건이 발생했음을 확인해주지는 않는다. 누군가와 다투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스스로 자취를 감췄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만약, 강력사건이라면 무작위로 피해 대상을 정한 강도의 소행일까, 아니면 원한관계에 있는 면식범의 소행일까? 혹은 또다른 미지의 이유와 동기가 있는 사건인가?

실종된 배병수씨의 소재를 확인하기 위한 경찰의 전방위 수사와 수색이 이루어졌다. 배씨가 갈 만한 곳이나 친인척 등 아는 사람은 모두 경찰의 방문을 받았다. 특히 배씨와 돈거래가 있거나 다퉜거나 소문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귀찮을 정도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동일 수법 전과자와 인근 불량배 등 우범자 역시 의심 어린 눈초리와 조사 대상이 되어야 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담배꽁초, 머리카락과 혈흔 등은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졌지만 검사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 안에 범인의 것이 꼭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사건의 단초는 의외로 빨리 잡혔다. 배병수씨 명의의 은행계좌를 조사하던 형사팀이 특이사항을 발견한 것이다. 배씨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 12월12일부터 며칠 동안 서울과 부산 등에 있는 현금인출기를 이용해 누군가 배씨의 계좌에서 총 3820만원이라는 거액을 인출한 것이다. 현금자동지급기가 설치된 은행 일부에서는 직원들이 그 ‘이상한’ 인출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고 일부 지급기엔 시시티브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돈을 인출한 사람은 20대 초반 남자로, 여자처럼 긴 머리에 특이한 인상을 한 36살의 예금주 배병수씨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목격자들이 진술한 20대 남자의 인상착의로 용의자의 신원을 추정해 가던 경찰은, 배병수씨 밑에서 ‘로드매니저’(연예인을 수행하며 운전, 일정 관리, 잔심부름 등을 해주는 사람)로 일하다가 몇 달 전에 해고당한 전아무개(당시 21살)씨에게 주목하게 된다. 은행 관계자가 기억하는 인상착의와 닮은 점이 많았고 배병수씨가 실종된 이후 종적이 묘연하고 연락이 닿지 않는 점이 의심스러웠다. 경찰은 곧 전씨에 대한 수배에 돌입했다. 특히 실종된 배씨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장소가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 고속도로 모든 휴게소와 진출입로에 형사들을 배치했다. 주변에 대한 탐문수사 결과 그가 12월11일, 당시로서는 신형이었던 ‘브로엄’ 승용차를 구입하고 지인에게서 폐차 직전의 낡은 ‘에스페로’ 승용차를 빌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이 두 차량을 집중 추적하기 시작했다. ‘브로엄’의 번호판은 ‘서울 4커 7702’, ‘에스페로’의 번호판은 ‘서울 3크 7744’였다.

전씨의 ‘잠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2월23일 오후 2시15분, 충북 음성의 고속도로 진출로에서 잠복근무중이던 경찰관의 눈에 ‘브로엄, 서울 4커 7702’ 차량이 잡혔다. 운전자는 검문을 위해 다가간 경찰관을 제치고 차량을 급출발했다.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약 2시간 뒤, 도주 차량은 충북 진천군에 있는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견되었지만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에 돌입했다. 오후 6시40분, 경찰의 압박이 조여오자 그는 경찰에 전화해 자수 의사를 밝히고 차량을 주차한 장소에 나타나 체포되었다.

그런데 도주 차량에 타고 있었던 것은 전씨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의 공범 김아무개(당시 23살)씨와 2명의 젊은 여성 등 총 4명이었다. 여성들은 배병수씨가 실종된 12일 밤에 전씨와 김씨가 찾은 룸살롱 종업원들로 거액의 팁을 받고 함께 강원도 ‘스키장’으로 놀러 가는 중이었다. 경찰은 두 여성이 도주해 숨어 있던 친지 집을 급습해 검거했다. 범인 은닉 및 도주 방조 혐의였다. 김씨 역시 다음날인 24일, 서울 서초경찰서를 찾아와 자수했다.

‘매니저 할 자격 없다’는 말에 더 커진 반감

두 사람은 배병수씨를 살해한 후 암매장한 사실을 자백했다. 세상이 축제 분위기에 빠져든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 오후, 서초경찰서 형사들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청평유원지 인근 야산 골짜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두 범인이 배병수씨 시신을 야산 오솔길까지 차에 싣고 온 뒤 쉽게 발견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골짜기 언덕 아래로 굴려 버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찾고 손상되지 않도록 힘들게 끌어 올린 뒤 살펴본 시신의 모습은 참혹했다. 평상시 집에서 입는 운동복 차림의 배병수씨 시신은 추운 겨울 날씨에 완전히 얼어 있었고 눈과 코, 입술 등 얼굴 여러 곳이 붓고 터져 있어 누군지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머리에도 심한 타박상이 있었고 팔이 부러져 있었다. 특히 목에는 선명하게 줄이 파고든 흔적(삭흔)이 남아 있었다. 시신의 모습만 봐도 12월12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만했다. 한국 방송·연예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큰돈을 벌고 최고의 스타들을 발굴해 배출한 ‘스타 매니저’의 최후치고는 너무 비참하고 참혹했다. 과연 ‘돈’이 유일한 범죄 동기였을까?

사건 발생 1년여 전인 1993년 여름,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를 다녀온 뒤 하릴없이 빈둥거리던 스무살 청년 전씨는 한 방송사 예능프로그램 야외 공개녹화장에서 매니저 배병수를 우연히 만나 현장 잡일을 도와준 것을 계기로 로드매니저로 채용된다. 체격이 왜소하고 얼굴이 곱상하며 착하고 성실해 보여 여자 연예인 보조역으로 어울린다는 판단을 한 배병수씨는 전씨를 한창 주가가 오르던 최진실씨 로드매니저로 배정했다.

처음엔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점차 독단적이고 불같은 성격의 배병수씨가 그를 혼내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사무실과 직원들, 그리고 연예인의 소지품에서 금품이 없어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자 배씨는 그를 의심했고, 그가 사소한 실수를 저질러도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가혹하게 질책하기 시작했다.

1994년 1월 전씨는 해고당했다. 그는 애초에 어떤 자격도 없고 아무 할 일도 없던 자신에게 스타들과 일할 기회를 준 은혜는 까맣게 잊고 자신의 잘못을 꾸짖고 해고한 데 대한 불만과 앙심을 품게 되었다. 자신이 보조하던 최진실씨가 점점 더 유명해질수록 복수심은 커져 가기만 했다. 복수를 할 수단이나 방법, 능력은 없었다. 그동안 벌어둔 돈으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오락과 유흥으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돈이 떨어진 뒤엔 카드 빚으로 충당했다. 독립적으로 매니저 일을 시작해 보려고 연예계를 기웃거리다 배병수씨를 만나 ‘매니저 할 자격도 없다’는 질책을 듣자 배씨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졌다.

연예계 갑을관계 착취구조 처음 알렸지만…

1994년 10월, 가진 돈도 다 떨어지고 1천만원 넘는 카드 빚마저 지게 된 그는 서울 청량리 한 성인오락실에서 절도 등 전과 5범인 김씨를 만나 친하게 지내며 ‘돈을 벌자’는 범죄 모의를 하게 된다. 그는 여러 스타들을 거느린 배병수씨에게 돈이 많다는 것과 내부 사정을 잘 안다는 점을 내세우며 김씨의 범죄 경험과 결합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차량과 범죄도구들을 마련한 두 공범은 12월11일 밤 11시, 빌려온 에스페로 승용차를 타고 배병수씨 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눌렀으나 응답이 없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들은 집 안으로 침입해 숨어 있다가 30분 뒤 귀가한 배씨의 머리를 각목으로 내리쳐 실신시켰다. 안방으로 피해자를 옮긴 두 사람은 배씨를 결박하고 깨운 뒤 칼로 위협해 예금통장과 현금카드의 위치와 비밀번호를 물었다. 배씨가 답을 거부하고 오히려 전씨를 나무라자 가혹한 폭행이 가해졌다. 결국 배씨는 다 말해줄 수밖에 없었고, 필요한 것을 모두 손에 넣은 두 사람은 함께 배병수씨의 목을 전깃줄로 졸라 살해했다. 얼굴을 아는 배씨가 신고할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복수심이 작용하기도 했다. 시신을 유기하고 증거가 묻은 차량을 외진 곳에 버린 두 사람은 새로 산 브로엄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며 돈을 마구 인출했다. 거액을 손에 쥐게 된 기쁨과 큰 죄를 저질렀다는 죄책감,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이들은 접대 여성이 있는 술집, 룸살롱을 찾았고 쾌락 속에 모든 것을 잊으려 했다. 그 광란의 유희는 결코 오래갈 수 없었다. 1995년 6월 두 사람에게 각각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었고, 형이 너무 과하다며 항소했지만 10월 항소심에서 원심 형량이 확정되었다. 전씨는 원주교도소, 김씨는 부산교도소에 각각 나뉘어 수감되어 복역중이다.

스무살 어린 나이에 저지른 범죄로 평생 감옥에 있어야 하는 처지가 억울했을까? 전씨는 마치 자신의 범행이 돈과 복수심이 아닌 ‘뭔가 다른 이유와 배후인물’이 있는 것처럼 모호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형이 확정되어 수감된 뒤 일부 정치인과 언론사에 지속적으로 ‘이제 진실을 밝히겠다’는 편지를 보내던 그는 일부 언론사와 교도소 내 인터뷰까지 하면서 전혀 ‘실체가 없는’ 모호한 음모론을 퍼트려 왔다. 그러던 중 고 최진실씨 자살과 유골 도난 사건 등이 발생하자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음모론은 ‘살인의 배후’와는 상관없는 배병수 매니저를 둘러싼 연예계 비리 문제인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입 열면 여럿 다칠 테니 알아서 도와달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의 모친은 어려운 살림에도 자식의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비싼 변호사 비용을 대다가 유일한 생계수단인 분식집마저 팔아야 했다. ‘스타 매니저 배병수’ 살인사건은 형사절차와는 별도로 언론사, 정·관계 및 방송사 인사 등 ‘절대 갑’과 기획사 대표라는 ‘갑’, 그리고 스타 연예인이라는 또다른 ‘갑’과 신인 연예인과 말단 로드매니저 등 ‘을’ 사이의 지배 복종 관계와 착취구조 등의 문제를 처음으로 알린 사건이었다. 하지만 의혹과 설만 난무했을 뿐 제대로 된 조사나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덮이다 보니 고 장자연 사건 등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연예계 비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전씨는 밝혀야 할 진실이 있다면 고인과 지금 이 시간에도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을 연예계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정확하고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서 연예계의 구조적 비리와 인권침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법·제도적 개선책 마련에 일조를 해야 한다.

<한겨레 인기기사>

‘장기이식 천국’ 중국, 그 많은 심장은 어디서 오나
변희재 “정대세 공작원”이라 하자 진중권 “정신병”
최진실이 유명해질수록 그의 복수심은 커졌다
대구 여대생 살해 '사건의 재구성'
[화보] 언니가 되어 돌아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