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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출청소년 쉼터, ‘모범생’ 지향 탈피
개별사례 맞는 자립프로그램 마련을”

등록 2013-06-05 20:43수정 2013-06-05 22:41

인권위 현장조사 용역결과 발표
지난해 경하(19·이하 모두 가명)는 동생 수희(17)의 손을 잡고 집을 ‘탈출’했다. 거리보다 무서운 건 집이었다. 경하의 가족은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이 살림을 꾸렸다. 가난은 견딜 수 있었다. “아빠가 바가지 같은 걸로 막 때리고 무서워서 (집에) 안 들어갔어요. 아빠가 성폭행도 해가지고요.” 경하는 지난해 거리에서 만난 이화여대 여성 가출청소년 인권실태 현장조사팀에 털어놨다. 동생 수희는 “그게 싫었다”고 했다. “아빠가 저한테는 ‘네가 막내라서 이뻐서 한 거’라고 했어요.” 아빠가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뒤 경하는 고모들의 타박을 못 이겨 집을 나왔다. 푼돈이 생기면 찜질방이나 모텔에 가고, 그나마도 없으면 동생을 데리고 밤새 거리를 떠돈다.

전통적인 가족의 기능이 약해지면서 청소년들의 가출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을 맡아 지난해 6~10월 여성 가출청소년 인권상황 현장조사를 벌인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5일 인권위 8층 배움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많은 가출 청소년들이 ‘가족’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한 경우 가족을 벗어나 거리로 나오게 된다. 가출한 10대들이 사회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자원만으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망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팀이 현장조사 중 만난 여성 청소년들은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나 저소득층이었다. “경제 환경이 좋지 않은 청소년들의 경우 불투명한 미래를 위한 학교 공부보다는 적은 돈이라도 당장의 돈벌이를 택하는 것이 가출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고 조사팀은 설명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해 찜질방, 친구집 등을 전전해온 미영(19)이는 “서빙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하고 동생한테 용돈을 주니까 엄마가 ‘알았다, 니 마음대로 해라’고 했다”고 말했다.

가출을 일탈·비행이 아니라 발달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정 문제를 겪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이나 물적 기반 등을 마련한 경우 ‘가출 청소년’보다는 ‘탈가정 청소년’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사에 참여한 영호(18)는 “철거민 운동과 청소년 인권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탈가정’의 계기”라며 “부모님께 나도 하나의 주체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들에게 집은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니다.

조사팀은 “새로운 방식의 가출 청소년 쉼터가 마련돼야 한다”며 “쉼터가 ‘모범생’ 아이들의 행동 양식에 맞춰 설계돼선 안 되며 가출한 10대에게 맞는 자립 프로그램을 마련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동체 구실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전국에는 청소년을 위한 일시쉼터 10곳, 단기쉼터 46곳, 중장기쉼터 25곳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엄격한 규율과 통제 탓에 가출 청소년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인권위는 이날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여성 가출 청소년을 위한 정책 권고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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