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농사짓기·뜨개질·문화공연도 시위…공동체 관심 넓힌다

등록 2013-06-12 21:40수정 2013-06-12 22:19

두물머리에서 수확한 채소와 부들가지를 손에 든 청년들이 지난해 7월18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인디 뮤지션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노래를 따라 춤을 추며 두물머리 유기농단지 철거 중단을 촉구하는 ‘세계 최초의 유기농 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두물머리에서 수확한 채소와 부들가지를 손에 든 청년들이 지난해 7월18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인디 뮤지션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노래를 따라 춤을 추며 두물머리 유기농단지 철거 중단을 촉구하는 ‘세계 최초의 유기농 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구호·피켓 들썩이는 집회 대신
다양한 방식에 참여 문턱 낮아
호기심 끌어 운동 외연 넓히기
“자본권력 등과 우회적인 싸움”
2011년 봄 신해진(가명·33)씨는 젊은 농부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유기농단지를 찾았다. 서울의 생업도 마다하고 농사를 지으러 다녔다. 그저 흙을 일구고 싶었을 따름이다. 그해 12월 마지막 4대강 사업지인 두물머리 팔당지역에서 공사가 본격화됐다. 전국 곳곳에서 환경운동가들이 모여들었고, 신씨의 일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함께 농사를 짓는 이웃이었는데 그분들이 땅을 빼앗기니 거들 수밖에 없었어요.” 4대강 반대 농성에 재미가 붙은 건 그다음이었다. “투쟁이나 그런 게 아니라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강요당하거나 몸을 던져 매달리거나, 그런 느낌이 아니었죠.”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한 신씨는 ‘정치적’ 이슈에 목소리를 높여본 일이 없다. 구호 대신 그림을 그리고 피켓 대신 모를 심는 시위는 낯설었지만,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여름 팔당에서는 농사짓는 일이 곧 저항이고 예술이었다.

구호와 피켓만 들썩이는 집회 현장은 요즘 흔치 않다. 농사짓기, 뜨개질, 소규모 문화공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주장하는 방식이 번지고 있다. 점거농성의 새로운 유형이다. 콜트·콜텍 악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 장기농성 현장에서 실험적으로 시작된 ‘직접행동’은 호기심 많은 청년들을 끌어들이며 ‘운동’의 외연을 넓히는 중이다.

직장인 정아람(26)씨는 좋아하는 밴드를 좇아 2010년 ‘두리반’을 찾았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자리잡은 칼국수집 두리반은 ‘홍대 앞 작은 용산’으로 불리며 재개발에 맞섰다. 인디음악가들이 모여들어 음악 공연을 벌이며 젊은층의 관심을 모았다.

일단 참여하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확장되고 변주된다. 정씨는 올해 3월 서울 중구 대한문 옆 쌍용차 농성촌도 거듭 방문했다. 뜨개바늘과 실뭉치가 무기였다. 불탄 농성촌을 농성정원으로 꾸민다는 소식을 트위터에서 봤다. 거리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뜨개농성’이라고 했다. 그는 도심의 땡볕 아래서 보내는 휴일이 기꺼웠다. 트위터로 소식을 접하고 몰려온 이들이 길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함께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뜨개농성의 역사는 이미 깊다. 동상·가로수 등 공공시설물에 뜨개 덮개를 허가 없이 씌우는 ‘얀 바밍’(뜨개질 폭탄)은 유럽·북미 등지에서 10여년 전부터 유행한 거리예술이다. 다양한 색채와 패턴으로 이어붙인 손뜨개는 생태·참여·공동체 등의 의미를 환기시키며 메마른 도시의 시설물들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2011년 미국 뉴욕의 ‘오큐파이’(점령) 시위에선 또 달랐다. 월가의 탐욕, 실업, 빈곤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점거 시위 당시 뉴욕의 할머니들은 뜨개바늘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반년 가까이 점거가 이어진 주코티공원에서 젊은 시위대를 위해 목도리를 뜨는 노인들의 모습은 평화 시위의 상징이 되었다.

뜨개농성을 기획한 문화연대의 신유아 활동가는 “강경한 투쟁방식은 오히려 호소력 약한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농성장은 당사자들 위주였고 외부인들에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부분도 있었죠. 거리에 천막 치고 앉은 노동자들을 구경하는 행인들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시민들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을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즐거움에 이끌려 농성장을 찾은 젊은이들의 관심은 일회적이라는 시선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임정희 연세대 인문예술대 겸임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임 교수는 “직접행동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은 즉흥적이긴 하지만 자의적이진 않다. 종전의 사회운동처럼 노동, 생태 등 의제가 확고하진 않지만 각 개인이 산발적으로,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재능교육 농성장에도 가고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도 가며 그 안에서 공유와 소통을 배우고 공동체 윤리를 만들어 간다”고 풀이했다.

결국 이것은 소소하지만 질긴 일상의 정치일 터. 정아람씨는 스스로의 경험을 일컬어 “은유적이고 우회적인 싸움”이라고 했다. 과연 싸움을 은유하는 이들의 몸짓은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는 필사적으로 목숨을 다해 거대 권력과 싸워야 했지만 절 비롯한 20~30대의 경험은 다르잖아요. 대신 우리에겐 ‘문화’라는 새로운 도구가 있으니 그를 통해 우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자본 권력과 싸우는 거지요.”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의문의 73억, 전두환 비자금 밝힐 ‘비밀의 문’ 끝내 안 열려
[한겨레 날뉴스] ‘김한길 긴급 회견’ 기사가 신문에서 사라진 이유는?
‘벤치 클리어링’ 매팅리 감독의 분노, 7승 사냥 류현진에 ‘보약’ 될까?
‘박정희 기념공원’ 조성, 주민들이 열렬히 원한다고?
[화보] 주인 잃은 마이크…남북회담 무산에 ‘허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