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추심업체들, 채권 싸게 사
대법원 전자독촉시스템 악용
이자까지 붙여 184억원 챙겨
대법원 전자독촉시스템 악용
이자까지 붙여 184억원 챙겨
2011년 6월 윤아무개(34·부산)씨에게 법원에서 보낸 지급명령문 한 통이 날아들었다. 18년 전 고등학생 때 샀던 교재비 130만원과 이자 170만원 등 300만원을 채권자에게 갚으라는 독촉이었다. 이어 교재 대금 채권을 넘겨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로부터 독촉 전화가 밤낮 가리지 않고 걸려왔다. 윤씨는 “당시 교재를 바로 돌려줬다”고 말했지만, 지급명령문을 근거로 “월급을 압류하겠다”는 협박이 돌아왔다. 대응 방법을 몰랐던 윤씨는 결국 300만원을 보냈다. 돈을 갚아야 할 시효(3년)가 한참 지난 시점이었다.
이렇게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 등을 헐값에 사들인 뒤, 대법원 전자독촉 시스템으로 지급명령 결정을 받아내어 184억여원을 챙긴 불법 채권추심업체 22곳이 검찰에 붙잡혔다. 대구지검 서부지청 형사3부(부장 박흥준)는 불법 채권추심업체를 차려놓고 전자독촉 시스템을 악용해 소멸시효가 지났거나 불분명한 채권을 받아낸 혐의(변호사법 위반 등) 등으로 양아무개(40)씨 등 11명을 구속 기소하고 2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대법원 전자독촉 시스템은 누리집에 채권자·채무자의 정보 등을 입력하고 신청서를 내면 사건이 접수된다. 지급명령이 결정되면 채무자에게 지급명령문이 우편으로 보내지고, 2주일 안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지급명령이 확정된다. 2007년 신속한 채무분쟁 해결을 위해 도입했다.
양씨 등은 ‘○○자산관리’ ‘××대부’라는 불법 채권추심업체를 차려놓고 소멸시효가 만료된 채권을 채권가액의 1~10% 헐값에 사들였다. 전자독촉 시스템에 신청하면서 10년도 지난 빚을 갚으라고 하거나, 여러 차례 양도돼 원채권자가 불분명한 채권은 엉뚱한 이를 채권자로 내세웠다. 이의신청이 없으면 실질적 심사를 하지 않는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한 것이다. 원금에 몇 배가 넘는 이자까지 붙여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이어 법원의 지급명령문을 받은 사람들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특별감면 기간이니 돈을 바로 내면 10~30%까지 감면해주겠다’고 속이기도 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겁을 먹거나 관련 법 지식이 부족해 이들의 협박에 넘어갔다. 압류를 당하거나 합의금을 건넨 이들도 있었다. 이들이 2007년 이후 전자독촉 시스템으로 지급명령을 받아낸 것은 18만4289건이나 됐다. 전체 채권 금액은 2897억원이 넘었다.
법률 지식이 있는 이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지급명령을 취소했다. 전자독촉은 일종의 소송이어서, 채권자 자신이나 변호사가 아닌 남이 채권 상환을 요구하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박흥준 부장검사는 “법원 지급명령문을 받으면 이의를 제기해야 피해를 면할 수 있다. 전자독촉 시스템에서 이의신청을 인터넷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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