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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보육교사 10명중 8명 스트레스로 생활에 지장

등록 2013-06-20 16:42

원장·학부모에 일상적 인권침해 시달려
응답자 44.9% ‘학부모 불쾌한 언행’ 꼽아
만성적 장기 노동에 평균 월급은 112만원 수준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는 ㄱ(44)씨는 지난해 원아의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이 목걸이가 없어졌어요. 아침엔 분명히 하고 있었는데….” 이동차량과 교실을 구석구석 뒤졌지만 목걸이는 나오지 않았다. ㄱ씨의 말을 듣고도 원아의 엄마는 화를 내며 다시 말했다. “다시 찾아보시라고요. 분명히 어린이집에 있어요. ”

명령하는 듯한 말투에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아이 엄마의 항의 전화는 며칠간 이어졌다. 결국 목걸이 값을 물어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ㄱ씨는 “그 일이 있고부턴 아이마저 미워지더라. 어미니들이 종종 교사를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운영 비리 등 어린이집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아이들의 보육을 맡고 있는 교사들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보육교사는 ‘제2의 부모’로 아이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충분히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인권위 인권교육센터별관에서 ‘보육공공성 증진 및 보육노동환경 개선 토론회’를 열고 “영유아 어린이집에 종사하는 보육교사 10명 중 8명 꼴인 75.5%가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김연 아동발달연구소에 연구용역을 맡겨 지난해 8월부터 4개월 동안 보육교사 1634명의 노동과 인권침해 실태에 대해 ‘보육교사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보육교사들은 원장과 학부모들로부터 일상적인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응답자의 44.9%(732명)는 ‘학부모의 불쾌한 언행’을 대표적인 인권침해로 꼽았고 ‘정해진 업무 외의 지시’(36.5%), ‘상사의 언어폭력’(16.1%)도 문제라고 답했다. 한 어린이집 교사(34)는 “아이들이 우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울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런 상황은 무시된 채 원장으로부터 ‘(무조건) 어린이집 밖으로 아이들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라’는 지시를 받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고 털어놨다. 또다른 보육교사(29)는 “아이를 돌볼 뿐 아니라 일지 작성, 행사, 견학 등 다양한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은 한정돼 있고 일의 분량은 많아 힘들다”고 호소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의 특성상 다치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응답자 가운데 64.7%(951명)는 ‘지난 1년 간 업무를 수행하다 아프거나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정신적 스트레스 질환이 40.6%로 가장 많았고 무릎 등 관절 질환(34.9%), 요통·디스크 질환(32.1%), 위장병(29.%), 근육통(28.2%)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병원에 갈 짬을 내기는 어렵다. 응답자의 71%는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한 조사 참가자는 “교사들은 모두 자기 반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만 자리를 비워도 정신이 없다. 아파서 결근하면 원장님이 짜증을 많이 내니 병원 가기 꺼려져 약을 사먹고 만다”고 전했다.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도 문제다. 영유아보육법은 보육교사의 근무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하고 있지만 보육교사 10명 중 8명(81.3%)은 초과근무를 하고 있었고, 이 중 초과근무 수당을 받는 이는 5%에 지나지 않았다. 91%의 보육교사가 점심시간 또는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했고 67.2%는 ‘연월차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실태조사에서 보육교사들의 평균 월급은 112만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140만원도 못 받는 보육교사가 전체 보육교사의 90%를 차지했다.

이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대체교사 제도’도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 대체교사로 투입될 인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홍보가 덜돼 현장에서의 이해도 부족하다. 한 민간어린이집 교사(26)는 “맹장수술을 받아야 해서 대체교사를 쓰겠다고 했더니 원장님이 하루에 1만원씩 비용을 부담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당연히 내가 결근을 해서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보육교사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단순한 노동인권의 문제만이 아닌 보육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개선되지 않을 문제”라며 “보육공공성을 제고하고 보육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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