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거불응…공공질서 명백한 위험”
“질서문란 아니다” 2심과 어긋나
“옥내집회 자유 봉쇄하나” 비판
“질서문란 아니다” 2심과 어긋나
“옥내집회 자유 봉쇄하나” 비판
구체적인 폭행이나 협박 행위 없이 실내에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질서를 해치는 집회이므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해산명령 대상이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옥내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판결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30일 부산지방노동청 로비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다 경찰의 해산명령을 따르지 않은 혐의(집시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예선노조 울산지회 지회장 윤아무개(53)씨의 상고심에서 집시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윤씨는 2009년 8월7일 시작된 파업이 장기화되자 2009년 10월13일 노조원 122명을 이끌고 부산지방노동청 1층 로비에 진입했다. 다음날 이곳에서 열릴 예정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회사와 노동청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로비에 앉아 부산지방노동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노동가요를 부르고 “노동청장은 각성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집시법에 따라 해산명령을 내렸다. 집시법은 집회가 신고한 목적·일시·장소·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거나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질서를 문란하게 할 경우 경찰이 해산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집시법상 사전신고가 필요없는 옥내 집회라 해도 집회의 목적, 참가인원, 집회 방식, 행태 등으로 볼 때 공공질서에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때에는 해산명령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부산지방노동청에 무단 침입한 후 로비를 점거한 채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등으로 장시간 옥내 집회를 강행하면서 퇴거 요구에 불응한 것은, 그로 인해 청사의 평온과 시설관리권 등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여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집회로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민원인들의 통행에 지장이 컸고 일부 부서가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전혀 다른 판단을 했었다. 울산지법은 “노동가를 부르고 구호를 제창하는 것은 집회 본래의 모습이다. 이를 두고 ‘폭행·협박·손괴·방화’에 준하는 질서문란 행위로 볼 수 없다. 건조물 침입의 위법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질서문란 행위가 있다고 본다면 옥내 집회 대부분이 곧바로 해산명령 대상이 돼야 한다. 이럴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게 된다”고 밝혔다. 원심은 집시법 위반에는 무죄를 선고하고 공동주거침입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옥내 집회를 금지할 때에는 집회 장소가 어느 정도 개방된 장소인지, 집회를 통해 업무를 방해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엄밀히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기차역 같은 개방적인 옥내였다면 판단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집시법은 옥내·옥외를 가리지 않고 집회를 금지하려면 폭행·협박·손괴 행위에 이르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란을 피운 정도를 가지고 집회를 금지한다면 옥내에서 어떤 집회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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