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판자촌 빈민 구호 활동으로 ‘청계천의 성자’로 알려진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운데)가 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문 앞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농성장을 찾아 김정욱 사무국장(왼쪽)에게서 설명을 듣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4인 영정앞 고개숙인 노무라
경찰 손 잡고 “평화해결 기대”
용산참사 규명위 사무실에선
‘한국사회 보수화’ 우려 전해
경찰 손 잡고 “평화해결 기대”
용산참사 규명위 사무실에선
‘한국사회 보수화’ 우려 전해
24개의 이름 모를 영정 앞에서 팔순을 넘긴 노인은 비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눈을 감고 영령을 위로했다. 20여명의 경찰이 그 주위를 지키고 서 있었다.
1970~80년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청계천 판자촌 빈민운동에 몸을 바쳤던 노무라 모토유키(82) 목사가 한국을 찾아 7일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용산 철거민 등 한국의 소외계층을 만났다. 1968년 선교사로 한국에 첫 발을 내딛은 노무라 목사는 서울 성동구 마장동·사근동 일대 판자촌에서 빈민 구호와 목회 활동을 펼쳐 ‘청계천의 성자’로 불린다.
이날 오전 노무라 목사는 먼저 서울 중구 대한문 앞 농성장을 찾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났다. 대한문 앞 한켠에 펼쳐놓은 돗자리의 의미를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숨진 해고노동자들의 영정을 모신 곳이라고 들었다”며 그는 분향소 앞에 섰다. 노무라 목사를 맞이한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2009년 3000여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되면서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고 일부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게 됐다. 정부는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국가전복 세력’이라고 낙인찍었다”고 말했다.
노무라 목사는 “권력자들은 항상 그렇게 말한다”며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의 시대와 한국의 체질은 변한 것이 없다. 나도 과거 청계천의 철거 현장을 봤지만 (빈곤 문제를 다루는) 한국 정부의 자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한문 농성장을 떠나기 전, 그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을 막기 위해 24시간 대한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경찰의 손을 잡고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노무라 목사는 한국 사회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마음도 나타냈다. 서울 중구의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사무실을 찾은 그는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용산참사에 대한 설명을 전해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노무라 목사는 “나는 정치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니고 이름없는 할아버지에 지나지 않지만 지금의 한국 정치가 어떤지 알 것 같다. 지난 정부 때 (보수적 경향이) 심해졌는데 앞으로 한국 정부가 더 보수화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해온 노무라 목사는 이번 방문에선 한·일 양국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공개 발언을 아꼈다. 지난해 2월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평화비’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플루트로 <봉선화>를 연주한 그는 이후 한밤에 협박전화를 받는 등 일본 우익들의 테러 위협에 시달려 왔다. 대신 그는 앞서 6일 서울 종로구 푸르메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6·25전쟁의 참상을 노래한 ‘비목’을 플루트로 연주하며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6·25전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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