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 어떻게 변해왔나
다수에도 의결수 6명에 미달 ‘합헌’
사형제·수형자 선거권 제한도 문턱
시대변천·재판관 바뀌면서 ‘진화’
교원 정치활동 금지 등도 재도전
다수에도 의결수 6명에 미달 ‘합헌’
사형제·수형자 선거권 제한도 문턱
시대변천·재판관 바뀌면서 ‘진화’
교원 정치활동 금지 등도 재도전
* 5대4 : 위헌 대 합헌
1일로 창립 25돌을 맞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변천사는 우리 사회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진화한 과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한때 ‘별종’ 취급을 받던 소수의견이 세월이 흐르고 재판관 구성이 바뀌면서 다수의견이 돼 위헌 결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5(위헌) 대 4(합헌)’ 결정을 주목해야 한다. 한때의 소수의견이 과반을 넘는 다수의 지지를 얻게 됐지만 여전히 위헌 결정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위헌 결정을 받기 위해선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위헌 불선언’으로 불리던 이 결정은 ‘어정쩡한 합헌’으로 사회 분란의 씨앗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위헌 초읽기’로 불리기도 한다. 언젠가 헌재 문을 다시 두드릴 ‘5 대 4’들을 보면 헌재의 미래가 보이는 이유다.
■ ‘5 대 4’는 헌재의 미래다 위헌 정족수(6명)에 한명 모자라 위헌 결정을 받지 못한 대표적 법률은 ‘간통죄’ 조항이다. 2008년 10월30일 헌법재판소는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의견을 냈고 4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간통은 법이 개입할 수 없는 순수한 윤리·도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질서 해체를 막기 위한 사전예방 조처로 형사처벌하도록 한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법률 조항도 2009년 11월3일 재판관 5(위헌) 대 3(기각) 대 1(각하)로 가까스로 합헌 결정을 받았다. 과반수 재판관이 “1개월 이상의 금고형을 받은 사람부터 사형 확정자까지 다양한 형기를 선고받은 재소자들뿐 아니라 가석방된 사람까지도 선거권을 제한하고 있다. 수긍하기 어렵다”고 위헌 의견을 냈지만, 해당 조항은 유지됐다.
4(위헌) 대 5(합헌)로 합헌이 된 결정들도 위헌 문턱에 닿아있기는 마찬가지다. 사형제는 2010년 3월25일 이 비율로 합헌 결정을 받았다. 앞서 헌재는 1996년 11월 재판관 2(위헌) 대 7(합헌)의 의견으로 사형제에 합헌을 선고했었다. 14년 만에 ‘위헌 의견’이 둘이나 늘어났다. 군대 내 동성애 처벌도 4(위헌) 대5(합헌)로 위헌 결정 8부 능선에서 멈춰섰다.
이들 결정이 단박에 위헌 결정 코앞까지 다다른 건 아니다. 간통죄는 1990년, 1993년, 2001년, 2008년 네 차례 심판대에 올라 5 대 4까지 ‘발전’했다. 1990년과 93년에는 재판관 3(위헌) 대 6(합헌)으로, 2001년에는 1(위헌) 대 8(합헌)로 합헌 의견이 우세했다. 지난한 세월을 거쳐서야 ‘간통죄는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사형제도 2010년 3월25일 4(위헌) 대 5(합헌)로 합헌 결정을 받았지만, 1996년 11월엔 재판관 2(위헌) 대 7(합헌)로 합헌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5 대 4’를 넘어 위헌을 노리는 재수·삼수생들도 헌재의 미래를 두드리고 있다.
2009년 11월3일 재판관 5(위헌) 대 3(기각) 대 1(각하)로 가까스로 합헌 결정을 받았던 수형자 선거권 제한 조항도 재수 중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홍아무개씨 등 3명은 지난해 4월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법률 조항도 재도전 중이다. 서울행정법원 제4부는 2011년 2월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재판 도중 “일체의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원노조법 3조에 대해 “학교 내에서 학생에 대한 당파적 선전교육, 정치선전,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원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까지 제한하고 있다”며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2004년 3월 같은 사안에 대해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종교적 신념 등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이들에게 대체복무 기회를 주지 않고 처벌 조항만 둔 향토예비군설치법도 6년 만에 다시 위헌법률 심판을 받고 있다. 수원지법 형사12단독 임혜원 판사는 지난 2월27일 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김아무개(29)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이 법 15조 9항 1호에 대해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재판관 2(위헌) 대 7(합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간통죄도 헌재의 다섯번째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 10번 찍은 나무, 넘어가다 재수·삼수생들이 헌재 문을 다시 두드리는 건 선례를 뒤집은 ‘성공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93조 1항이 대표적이다. 헌재는 2009년 5월 재판관 5(위헌) 대 4(합헌) 의견으로 해당 법률 조항의 합헌을 결정했다.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칠 내용의 문서나 이와 유사한 것의 배포를 금지하는 조항이 문제였다. 당시 헌재는 ‘기타 유사한 것’이란 표현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2년6개월 뒤 헌재는 6(위헌) 대 2(합헌)로 선례를 뒤집는다. 재판부는 “‘기타 이와 유사한 것’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글이나 동영상을 올리거나 전자우편을 전송하는 방법’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던 조항도 마찬가지다. 헌재는 1999년 1월 “재외국민에 대하여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그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공공의 필요와 침해되는 기본권 사이 균형을 갖췄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8년이 지난 2007년 6월28일 헌재는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재외국민의 선거권과 평등권을 침해하고, 보통선거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기존 결정을 뒤집었다. 혼인빙자간음죄, 야간옥외집회금지 조항 등도 재수 끝에 기존 결정을 뒤집는 데 성공한 사례다.
정종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을 개정하거나 없애려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이 든다. 헌재가 없거나 있어도 제 역할을 못하는 나라들은 정치세력간 이견 조정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했다. 우리는 헌재가 ‘위헌 결정’을 통해 이해관계 조정 역할을 하면서 민주화 정착 비용을 많이 줄여줬다”고 평가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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