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대학터 주로 산자락…짧은 치마 여학생 한숨
88계단·138계단 ‘악명’…눈비오면 벽잡고 설설
한양대에 다니는 임종빈(23)씨는 오늘도 ‘행당산 등반’을 시작했다. 인문대 건물에 가기 위해서다. 얼추 45도로 기울어진 ‘진사로’를 올라, 평평한 ‘한마당’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138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다. 정문에서 인문대까지 해발 고도 차이는 45m. 임씨는 “4년째 다니고 있지만 적응이 안 된다”며 숨을 몰아쉬었다.
동국대에 다니는 양흥무(26)씨는 지난겨울 등굣길에 눈에 미끄러져 넘어지며 망신을 당했다. 양씨는 “공대생이 주로 이용하는 쪽문 길은 경사가 매우 심해 비나 눈이 오면 양옆 벽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은 건국대 등 몇몇 학교를 빼고는 대부분 산자락에 터를 잡고 있다. 그런 탓에 학생들은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려야 한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74계단(중앙대), 88계단과 138계단(한양대) 등 계단은 여학생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는 계단 밑에서 여학생의 속옷을 보았다는 남학생들의 짓궂은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비탈길을 걷다 보면 구둣굽도 금방 망가진다. 여학생들은 다리가 굵어질까 걱정도 된다.
이러다 보니 학교마다 ‘한 많은’ 비탈길을 가리키는 이름도 하나씩 있다. 이화여대에는 올라갈 생각만 해도 한숨부터 나온다고 해서 ‘후윳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 있는가하면, 올라갈 때 고민이 많다고 해서 ‘진사로’(한양대), 힘든 만큼 성공한다는 ‘대성로’(성균관대)처럼 원래 있던 이름에 원망 섞인 뜻풀이가 따라붙은 길들도 있다.
서울대 토목담당 김현수 주사는 “서울대는 정문과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신공학관 사이의 해발 고도차가 60m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런 탓에 봄철과 가을철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계곡풍’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대학가에 자전거가 잘 안보이는 것도 비탈길 때문이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조진희(24·연세대)씨는 “힘이 부치는 언덕길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을 용기가 도저히 안난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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